거스름돈

부끄럽지 않게 살기

by 모니카

큰 사거리 횡단보도에 지하철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탑 옆에서 토요일마다 채소를 파는 할머니가 계시다. 80이 넘었지만 손수 농사지은 거라고 볼 때마다 얘기하시는데 할머니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정정하셔서 다 들 아주머니, 아줌마라고 부른다. 근처에 큰 재래시장과 대형마트가 있지만 채소는 굳이 여기 와서 사는 이유는, 상추며 배추 파 호박 등 제철 채소와 토마토까지 모두 갓 따온 것이어서 싱싱하고, 아주머니 손이 저울이라 마음 내키는 대로 풍성하게 집어 주시고 꼭 덤도 얹어 주시기 때문이다.

거기다 된장찌개, 아욱국 끓이는 법 등을 옛날 할머니 식이라고 즐겨 알려주시며, 넣으면 더 맛있다고 청양고추 몇 개까지 더 집어주신다.

나도 주말에 장을 볼 때면 카트를 끌고 우선 대형마트에서 공산품 같은 것을 사고, 돌아오는 길에 그 아주머니께 들러 채소를 산다. 그래서 장 보러 가는 길에 아주머니가 나오셨나 확인부터 하게 된다.

가끔 단속이 있어서 못 나오신다고 하는데 그런 날은 많은 사람들이 서운해한다.


그날도 단속이 있었는지 보통 나오시는 5시가 넘어도 보이지 않았다.

할 수없이 마트에서 채소까지 다 사서 카트에 싣고 오는데 오다 보니 뒤늦게 나오셨는지 그 자리에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그냥 지나가려다 오늘따라 풋고추 호박 상추 아욱 배추까지 종류도 다양하고 아주 싱싱해 보여서 저녁에 아욱국이나 끓여야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늦게 나오시는 바람에 해가 져서 어둑하고 사람도 더 모여서 아주머니는 물건을 파느라고 정신이 없으셨다.


"아욱 좀 주세요."

"아욱? 이천 원어치?"


아주머니가 아욱을 대충 듬뿍 집으니앞에 있던 손님이 아주머니 대신 검은 비닐에 넣어 주었다.

오천 원짜리를 내자 아주머니는 돈주머니에서 거스름 돈을 꺼내 나를 보지도 않고 내미셨다.

지폐 세 장이라 당연시 3천 원이라 생각하고 어서 복잡한 그곳에서 빠져나오려고 하는데 다시 보니 5천 원짜리 1장과 천 원짜리 두 장이었다.


"어?"

잠깐 당황한 사이 나는 사람들한테 밀려나고 내 앞으로 사람들이 몰려 들어왔다.


"칠천 원을 주시면 어떻게 해요, 오천 원짜리 냈는데"

사람들을 비집고 내가 말하자 아주머니는 그제야 쳐다보고 환하게 웃으시며


"고마워~"


하시며 아욱 한 움큼을 크게 더 집어 주셨다.

거스름 돈 3,000원을 챙겨 넣고 있는데 누군가 뒤에서 내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줌마 참 양심적이다~"


뒤돌아 보니 한 젊은 할머니가 웃으며 내 등을 계속 토닥이고 있었다.

쑥스러워서 목례를 하고 가려하자


"참 양심적이야~ 아줌마 딸 있어?"


아주 친근한 듯 반말로 물었다.

순간 무슨 뜻인지 잘 몰라서 "아들만 둘 있는데요."

하고 웃으며 그 자리를 떠나려고 하니 그분은 나에게 잘 가라고 손까지 흔드셨다.


오면서 생각했다.

'딸이 있으면 며느리 삼고 싶다는 얘긴가?'


그분은 내가 거스름돈을 4천 원이나 더 받고 그냥 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솔직하게 돌려준 내 행동을 칭찬한 것일 거다.

양심적인 엄마이니 그 밑에서 자란 딸은 틀림없겠구나 생각했으리라.


상황을 되짚어 생각해 보니

갑자기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사실 찰나이긴 하지만 거스름돈이 더 온 것을 봤을 때 그냥 갈까 생각했었다.

날도 어둡고 사람들도 붐벼 내가 얼마를 내고 얼마를 거슬러 받았는지는 아무도 모를 수 있었다.


그런 순간들,

이를테면 오늘 같이 잘못된 유혹의 순간이라던가, 누구를 도와야 할 순간, 더 넓게 선과 악의 갈림길에 있을 때, 나는 내 옆에 계실 하느님을 의식하고 '아차!' 한다.

그리고 내 맘 속에는 항상 악도 도사리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항상 웃는 얼굴이라 좋아요.'

'내 얘길 잘 들어줘서 고마워요.'

'절대 그런 일을 못할 것 같아.'

'도와줘서 고마워요, '

.

.

이렇게 나를 좋게 보는 시선과 말을 들을 때면

내가 정말 그런가, 그것이 나의 진심이었나, 나는 항상 솔직한가,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가!

하고 나 자신을 들여다보게 된다.

그 속엔 거짓 웃음도 있고, 귀찮음도 있고, 불평도 원망도 같이 도사리고 있을 때가 많다.

타인에게 보다 나 자신에게 부끄럽게 느낄 때는 더 수치스러움을 느낀다.


카트를 끌고 돌아오면서 혼잣말을 해본다.


'작은 경험이지만 나를 돌아볼 수 있었어. '선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기 위한...'


그날 저녁 아욱이 풍성해서 더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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