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토, 일, 월까지 3일의 연휴 마지막 날,
그냥 보내버린 연휴가 아까워 어딜 갈까, 뭘 먹으러 갈까, 남편과 옥신각신하다 그냥 푹 쉬자고 결론을 내렸다.
아들이 '바람 쐬러 갈까요?' 한다.
주말에만 시간이 나는 엄마의 휴일을 지가 더 아까워한다.
아들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일산 호수 공원으로 갔다.
방대한 호수가를 아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걸었다.
주로 엄마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리액션을 보이고, 엄마의 발걸음에 보조를 맞추며 걸어 주었다.
아들도 친구 얘기, 연애 얘기, 군대 얘기....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아기자기 자기 얘기를 해 주었다.
엄마를 생각하고 배려해 주는 다 큰 아들의 마음씀이 고맙기도 하지만 귀중한 휴일을 빼앗은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다.
둘 다 얼큰한 순댓국이 생각 나 먹고 들어왔다.
아마 성인이 된 아들과 단 둘이 온전히 하루를 보낸 첫 경험이었던 것 같다.
#2
"엄마, 심심하면 저녁에 먹자골목 일본 라면 드실래요?"
대체 공휴일 저녁나절에 아들이 물었다.
심심하긴~ 밀린 집안일을 했구먼... 화장실 청소, 이불 빨래, 옷 정리...
하지만 냉동실에 밥도 많겠다, 끓여 놓은 김치찌개도 있겠다, 어머니와 남편 저녁거리는 있으니 걱정은 안 해도 되겠고,
언제 한 번 가보고 싶었는데 반가운 소리였다.
'신짱과 후쿠마루'
체인점 인지는 모르겠지만 주방과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테이블이 일렬로 나 있는, 손님이 앉으면 그 뒤로는 간신히 지날 수 있는 좁은 공간의 아주 작은 식당이었다. 너무 어두워서 어둠에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걸렸다.
맛집이라고 했는데 손님이 한 팀만 있었다.
"엄마는 시그니처 드셔 보세요. 저는 그거 먹어 봤으니 진한후쿠라멘 먹을게요."
몸집 좋은 주인 겸 주방장은 어두컴컴한 주방에서 키오스크 주문을 말없이 요리했다.
먼저 온 팀이
"사장님, 밥 주세요!" 하니까
"두 공기요?"
하고 딱 한 마디 했다.
아들이
"깍두기 좀 더 주세요."
해도 대답 없이 주었다.
너무 무뚝뚝하네 싶으면서도 필요 이상 친절한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고 소문대로 맛만 있으면 되지 하고 기대했다.
시그니처인 '신짱라멘'은 우리 보통 라면처럼 빨간 국물에 간 돼지고기와 구운 것 같은 계란이 올려 있었다.
아들 것은 팔도 꼬꼬면처럼 맑은 국물이었다.
맛을 기대하며 다진 고기와 국물을 한 숟갈 먹어봤다. 첫 맛에 고기 냄새가 혀에 확 돌았다.
'음... 아니군' 속으로 불합격을 내렸다. 면도 그냥 소면 같았다. 그것도 쫄깃쫄깃하지 않은...
별 말이 없는 나를 보고 아들이 눈치채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제 것 드셔 보세요. 이건 호불호가 갈리긴 해요. 저는 맛있는데..."
국물을 먹어보니 그것도 내 입맛은 아니었다.
아들은 서비스로 주는 밥을 한 공기 시켜 국물에 말아 다 먹었다.
나도 입맛에 맞진 않았지만 남기진 않았다. 속이 반숙인 구운 것 같은 계란은 그래도 특이했다.
중간에 주방장이 나가자 아들이 말했다.
"별로예요?"
"돼지 냄새가 나~"
"아~ 엄마 힘드셨겠다."
"그래도 계란은 맛있었어."
"주인이 바뀌었어요. 어쩐지 그 뒤로 후기가 안 좋긴 했어요."
"너는 괜찮았어?'
"저는 다 잘 먹잖아요, 괜찮았어요."
음악을 하고 생김새도 야리야리한 게 예민할 것 같은데 아들은 아빠 식성과 똑같다. 비계, 닭껍질.. 이런 것들을 좋아하고 맛에 그리 민감하지 않다.
나는 고기를 먹다 냄새가 나면 더 이상 먹지 못하는데 오늘은 정말 잘 참고 먹었다. 그렇지 않으면 말없는 주방장이 좌절할 것 같다는 쓸데 있는 걱정으로...
오는 길에 아들이 말했다.
"엄마 다신 안 가겠네요. "
"그럴 것 같아."
아들만 둘이라고 하면 꼭 하는 말이 있다.
나와 자주 외출을 하는 아들은 큰아들이다.
작은 아들은 말이 엄청, 대단히, 몹시 귀하다.
엄마 생신 때 온 가족이 노래방에 간 적이 있다.
그때도 노래 한 곡 부르지 않은 것은 물론, 노래책 한 번 들쳐 보지 않고 앉은자리에서 자리가 파할 때까지 처음 그 자세로 앉아 있었다. 물론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기업에 취직해 사회생활을 아주 잘하고 있다.
엄마가 '어깨가 아프네' 하면 말없이 안마기를 사 오고,
'목이 너무 아파' 그러면 뿌리는 성대 완화제를 사 온다.
특히 요리는 쉡 수준이라 2주마다 집에 오면(독립 3년째이다) 나는 복잡해서 엄두가 안 나는 희한한 요리를 맛보게 해 준다.
주변에는 세상 무뚝뚝한 딸들도 많고, 엄마를 껴안고 하트를 뿅뿅 날리는 아들도 있다.
친정 엄마도 나한테 항상 '너도 딸 하나 있으면 좋을 텐데...' 하고 아쉬워 하셨으니
내가 딸이 엄마한테 얼마나 좋고 필요한 존재인지 몰라서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