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보호사 실습 중에 만난 할머니
이불을 들추는 순간 너무 놀랐다.
깡마른 진범순 할머니의 몸이 완전히 니은자로 굽어있었다.
고개를 든 채로 몸이 굳어서 굽은 등 뒤로 커다랗고 단단한 베개 2개가 받쳐있었는데 눕지도 못하고 그런 상태로 주무신다고 했다.
직각으로 구부러진 무릎은 서로 맞닿아서 두 무릎 사이에 작은 쿠션을 끼워 놓았다.
그야말로 앙상한 나무 가지 같은 몸에 옷을 입혀 놓은 모습이었다.
능숙하게 기저귀를 가는 요양보호사들의 손길에 가느다란 할머니 다리가 부러질 것 같아 옆에서 지켜보는 나는 속으로 비명을 지를 지경이었다.
물인지 소독약인지 어떤 액체를 회음부에 붓고 수건으로 닦고 채 마르기도 전에 일자 기저귀 두 개를 겹쳐 대고 커다란 바깥 기저귀 접착면을 붙였다.
할머니는 몸을 이리저리 돌리고 엉덩이를 들고 해도 아무런 반응 없이 온몸을 맡겼다.
그녀들의 동작이 너무 빨라 나는 동작 하나하나를 다 따라갈 수가 없었다.
할머니는 100세가 넘으셨다고 했다.
침대 앞에 진범순 이름 석 자와 옆에 놓인 서랍장에 생년월일과 입소 일, '낙상 위험 매우 높음'이라고 적혀 있는 것이 할머니를 알 수 있는 정보였다.
요양원 실습 첫날,
그곳 요양보호사들에게 나의 짝꿍은 눈치 100단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빠릿빠릿했는데 시키는 일만 쫓아다니는 나는 잔소리를 꽤 들었다.
'이거 할까요?' '이제 뭐 할까요?' '시키실 것 있어요?'....
나의 짝꿍이 쫓아다니며 붙임성 있게 물어봐도 눈도 마주치지 않고 아주 메마르고 간단히 대답들을 했기에 묻지 않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도 섰다.
대신에 시키는 일은 최선을 다해하려고 노력했다.(사실 위험할 수 있으니 시키는 일만 하라고 교육도 받았다)
실습할 때 가장 힘든 것은 별로 할 일 없이 여덟 시간을 보내는 것이라고 하더니 휴대폰도 없이 제대로 앉지도 못하고 여덟 시간을 견디기가 고역이었다.
그래서 둘째 날부터는 가장 돌봄이 필요한 분을 찾아 그분을 도와드리기로 작정했다.
물론 둘째 날부터는 복도와 방 청소, 화장실 청소, 창 틀 닦기, 목욕 도와드리기 등 수시로 할 일이 주어졌지만
점심시간 1시간, 휴식 시간 30분 빼고 하루 여덟 시간을 보내려면 내가 주로 할 일이 있어야 했다.
내가 있었던 4층은 대부분 치매가 심한 분 들 이어서
밥을 일일이 먹여 드려야 하고 온종일 누워만 계시는 분들이 많았다.
내가 진범순 할머니를 택한 것은 온 몸이 뒤틀린 상태로 굳어버린 것에 대한 놀라움과 안타까움도 있었지만 아무도 그분의 말 벗을 해 주지 않는 것 같아서였다.
한 요양보호사가 비교적 의사소통이 되는 방의 어르신들 얘기를 들어주고 있는 나를 향해
'그분들은 혼자서 알아서 하니까 있을 필요가 없으니 다른 방으로도 가 보라'라고 잔소리를 했다.
증세가 상대적으로 가볍기는 하지만 그분들도 말 벗을 만나 이야기가 한창인데 떨치고 나오기가 미안했지만 틀린 말은 아니어서 시키는 대로 하기로 했다.
진범순 할머니 곁으로 가서 손을 잡아 드리자 그분은 화들짝 놀라며 경계하는 눈빛으로 쳐다보셨다.
해골처럼 푹 꺼진 볼에 한쪽 눈은 수정체가 하얀 구슬처럼 혼탁해져서 거의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계속 팔과 손을 주물러 드리자 할머니는 내 손을 꼭 잡으셨는데 그 힘이 생각보다 세었다.
아무 말씀도 안 하셨지만 그렇게 있는 것이 좋으셨는지 손을 놓지 않으셔서 나는 낮은 침대로 계속 구부리고 있는 바람에 허리가 몹시 아팠다.
그때 할머니가 뭐라고 말씀하셔서 귀를 갖다 대니 작은 소리로 말씀하셨다.
"힘들어~ 다른 데 가봐~"
인지가 전혀 없으시다고 생각한 분이 상황 파악을 정확히 하셔서 깜짝 놀라 나도 모르게 말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식사 도와드리려고요~"
그날부터 5일 실습 중 첫날을 제외한 나머지 4일 동안 진범순 할머니 점심과 저녁 식사 수발은 내 담당이 되었다.
할머니 식사는 평범한 쌀밥에 모두 으깬 네 가지 반찬과 국이었다.
이빨이 하나도 없으신데 쌀밥을 어떻게 드시나 걱정도 됐지만 더 큰 걱정은 고개가 앞으로 숙여진 채 굳어진 상태에서 음식이 식도로 제대로 넘어갈까였다.
그러나 할머니 식성 때문에 나는 계속 놀랐다.
가르쳐 준 대로 한 공기의 밥(내가 먹는 양보다 많았다)에다 모든 반찬을 섞어서 국을 넣어 질척하게 비빈 다음 한 숟갈씩 입에 넣어드렸다.
고개도 한쪽으로 기울어서 큰 앞치마와 휴지를 받치고 각도를 잘 맞춰 조심스럽게 넣어드리면 입을 크게 벌리고 받아 드신 후 몇 번 우물우물하시다 꿀꺽 삼키셨다.
그 꿀꺽 소리가 너무 커서 체할까 봐 내가 호들갑을 떨었더니 옆에 있던 요양보호사가 아무 일 아니라는 듯 알려주었다.
"괜찮아요. 입을 또 벌리면 넣어드리고, 아직 아니면 고개를 흔드시니까 잘 보고 넣어드리면 돼요."
그렇게 매 끼니마다 한 그릇을 다 드셨다.
식사뿐 아니라 중간에 나오는 우유나 간 바나나, 팥죽 등 간식도 남김없이 드셨다.
반 일으킨 윗 몸, 완전히 직각으로 굽은 다리, 양손은 침대 난간을 잡고 있거나 90도로 꺾여 팔꿈치가 바닥에 닿은 상태로 24시간 계신다는데 고개는 안 아프신지, 팔과 다리는 안 저리신지 걱정스러웠다.
마침 간호사가 왔을 때 조심스럽게 물어보면 그게 편한 자세라 괜찮다고 담백하게 대답했다.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자 진범순 어르신 외에도 내가 손잡아 드리고 말 벗을 해 드린 어르신들은
하루 일을 마치고 인사를 하는 나를 향해 내일 보자고 빠이빠이를 해 주시는 분도 계셨고 대부분 무표정하시지만 다음 날 만나면 웃어주는 분도 계셨다.
할머니들 손은 하나같이 몹시 찼다.
평소에 내 손은 그렇게 따뜻한 편이 아닌데 이상하게 할머니들 손을 잡을 때는 후끈후끈 열이 나서 난로 같다고 좋아하셨다. 아마 일을 한 후이거나 찬기가 느껴질까 봐 사정없이 비비고 나 후라 그런가 보다.
할머니들 얼굴과 손은 파란 실핏줄이 보이도록 하얗고, 팔다리는 너무 가늘었다.
창백한 얼굴이 예뻐 보여서
'어르신, 예쁘세요~"
하고 귀에다 대고 얘기하면, 무표정했던 얼굴이 환하게 활짝 폈다.
진범순 할머니,
그곳에서는 어르신이라고 불렀지만 왠지 할머니라고 부르는 게 더 정겨워 그렇게 부르고 싶다.
내가 다가가면 고개를 돌려 웃어 주시고 열린 출입문을 통해 보이는 오가는 사람들을 손가락으로 세시며 한참 이야기를 하셨다. 무슨 이야기인지는 잘 몰라도 가끔 정확히 들리는 단어에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쳐 드리면 굳었던 얼굴에 미소가 환하게 피셨다.
예쁘다고 하기엔 너무 마르시고 수많은 검버섯과 굵은 주름이 가득한 얼굴이 고목의 껍질 같아서 마주 보면 안쓰러운 마음이 컸다.
심하게 휘어진 채로 굳어버린 몸, 잘 때 눕지도 못하시는 몸, 고개가 아프거나 팔다리가 저린 것도 느끼지 못하시는 몸, 할 수만 있다면 쫙 펴드리고 싶은 몸, 더구나 아무하고도 얘기하지 않고 보내는 많은 나날들...
그분도 그런 삶을 지속하고 싶지 않을 것이지만 어쩌면 그런 의지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인지 모르겠다.
정말 죄송스러운 말씀이지만
그분의 놀랍도록 왕성한 식욕이 오히려 슬프게 느껴진다.
진범순 할머니가 기억에 남는 것은 간신히 알아들은 할머니의 이 한마디 때문이기도 하다.
P.S 요양원 실습을 마치는 날,
간호부장님이 말씀하셨다.
누구나 노인이 됩니다.
이런 시설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이런 시설에 들어오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무릎 조심하세요.
무릎 망가지면 다 멀쩡해도 이런 데 들어올 수밖에 없어요.
무릎?
의외였지만 걷지 못해 스스로 대소변을 해결 못하면 어쩔 수 없다는 말씀일 것이다.
스쿼트를 하고 있지만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