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이 아름답지만은 않더라

중학교 시절을 떠올리며...

by 모니카

중학교 동창 4명이 모였다.

우리의 공통분모는 무엇일까?

자주색 티셔츠와 재킷, 남녀 한 반이었던 교실, 코스모스가 우거진 등굣길...

우리는 특별히 친하지 않았고 1반, 2반으로 반도 달랐고 고등학교도 다 다른 학교로 진학했다.

한 명은 모교로, 두 명은 인근 여상으로 진학했고 나는 군인자녀들을 위한 학교가 있는 다른 지방으로 유학했다. 그러니 서로 공유할 기억이 그리 많지 않다.

중학교 졸업 후에도 만난 기억이 뚜렷이 안나는 걸 보면 일부러 약속을 하고 만난 것 같지는 않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자식들도 성인이 되었다

어느 날 그중 나와 친했던 친구가 우연한 기회에 내 연락처를 알게 되었다고 전화가 와서 우리는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그녀는 또 다른 동창인 Y과 J도 나를 보고 싶어 한다고 같이 가겠다고 했다.

셋도 나만큼은 아니지만 자주 만나지 못해서 서로 오랜만의 만남이긴 마찬가지였다.


어릴 때 친구들을 몇십 년 만에 만난다고 생각하니 긴장되고 설렜다.

모두들 어떻게 변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가는 길에 여러 가지 지난 일들이 떠올랐다.

군인 가족이었던 나는 아버지의 근무지를 따라 자주 이사를 해서 고향의 개념이 없다.

커다란 군용 트럭에 짐을 다 싣고 밤새워 강원도에서 경기도로 이사한 기억부터 시작해서 아주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과 희미한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그곳 경기도 양평군 용문이라는 지방은 우리 가족 이사 여정의 마지막 종착지로 내가 국민학교 3학년 2학기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다닌 곳이다.


그곳에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더 이상 이사할 일이 없어진 것이다.

자식들이 성장하고 결혼을 해서 뿔뿔이 흩어져 살아도 엄마는 홀로 그곳을 고집하셨고 요양병원에서 돌아가실 때까지 엄마 집이 있던 곳이다.


추억도 많지만 나에게는 나를 힘들게 했던 기억들이 남아 있어서 굳이 그 시절 친구들과 연락을 취하고 싶지 않았다.

그 시절보다는 그 후의 고등학교 대학교 사회에서 맺어진 인연들이 더 많아 이렇게 우연히 만날 기회가 없었더라면 잊고 살았을지도 모를 친구들이다.



걱정과는 달리 어릴 때와 변함없이 Y의 붙임성 있는 성격으로 금방 서로 붙들고 반가워하며 어색함을 조금은 씻어주었다.


점심을 먹고 인사동의 분위기 좋은 찻집에 마주 앉았다.

서로 사는 이야기며 아이들 이야기를 나누다 자연스럽게 학창 시절 이야기로 넘어갔다.

까마득히 잊고 었었던 기억들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새록새록 떠올랐다.


서로 가장 공감하고 크게 웃게 했던 건 선생님들의 별명이었다

송주접, 왕코, 미스 김...

선배 들 때부터 대대로 전해오는 별병들이라 중학교 1학년 입학할 때부터 그 선생님들은 그렇게 불렸다.

그 선생님들 이름은 기억도 안 나지만 별명만으로 그분들의 얼굴과 수업 분위기가 어제 일처럼 떠올랐다.

그분들은 한결같이 수업 시간에 우리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분들이다.


특히 사회 선생님이었던 송주접 선생님한테는 귀싸대기를 안 맞은 학생이 없을 거다.

나 또한 조회 시간에 줄이 비뚤어졌다는 이유로 귀싸대기를 맞은 여러 명 중에 한 명이었다.

우리 넷 모두 송주접 선생님한테 귀싸대기를 맞은 경험이 있기 때문에 깔깔 거리며 이야기하면서도 그때의 아픔과 수치심이 생생하게 전해왔다.


그 송주접 선생님은 진작에 돌아가셨다고 했다.


한문 선생님이었던 왕코 선생님은 그때도 꽤 연세가 있었다.

한문시간이면 얼마나 공포스러웠는지 오줌을 지린 애도 있었다고 했다.

100원짜리 동전이 들랑달랑한다 해서 별명이 왕코였는데 맨 앞자리 밑에서 보면 콧구멍이 정말 컸다.

회초리를 옆에 끼고 느릿느릿 들어와 뱀처럼 주위를 훑다 조금이라도 거슬리면 뒤로 나가라고 까딱까딱 손짓했다.

그때의 숨 막히는 고요와 공포가 우리를 맹수 앞의 초식동물 같게 만들었다.


왕코 선생님도 돌아가셨다고 했다.


선생님들 별명 이야기를 시작으로 급속도로 한마음이 되어 마치 줄곳 만나왔던 친구들처럼 친근해졌다.


그러나 이야기 꽃을 피우면서도 그 선생님들의 이야기는 마음 한구석을 자꾸만 아프게 했다.


오랜 공백의 어색함을 순식간에 없애버린 역할을 훌륭하게 해 주었지만

14살 소녀들의 기억 속에 아름다운 추억이 아니라 공포와 두려움을 남긴 그분들이 참 원망스럽기도 했다.


돌아오는 길,

잊고 지냈던 그 시절의 기억들이 떠오른 것이 그리 유쾌하지 않은 것을 보면

아름답고 그리운 어린 시절로 기억되기 위해서는 당연하지만 선생님들의 역할과 책임도 참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의 대전 하늘이 사건도 그렇고

나 또한 내일부터 방과 후 늘봄학교 교사를 하게 되어서 생각이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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