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아픔을 잊어서 슬프다

by 모니카

집으로 오는 길

하늘하늘 눈송이가 떨어지고 있었다.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보니

아! 늘 그 자리에 있던 것이 보이지 않았다.

5층이나 6층쯤 높이의 앙상한 나뭇가지에 걸쳐있던 것!

차가운 눈바람 다 맞고 비바람에 휘날리고 뜨거운 햇살 다 받고

겨우 무성한 나뭇잎에 몸 가리고 있었던 것!

그것은 그 자리에서 몇 년을 그렇게 서서히 낡아가고 있었다.


'나 좀 내려주세요~'


소리치는 것 같아 지날 때마다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베란다 창을 열고 옷을 털었다.

앗!

옷을 놓쳤다.

아들이 몹시 아끼는 후드티였다.


이리저리 흔들리며 급하게 내려가다 땅으로 떨어지지 못하고 얼키설키 엉켜있는 나뭇가지에 걸렸다.


때는 한겨울을 잘 견딘 나무가 새 순을 다투어 피우던 때였다.

연초록 작디작은 이파리 사이에 진네이비색 후드티가 오도 가도 못하고 걸려버렸다.

그것이 아들인양 안타까움이 몰려와 급히 내려갔다.

땅에서 올려다보니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보다 훨씬 더 높이 있었다.

5~6층 높이까지 닿는 장대가 있거나 나무를 타고 오르지 않는 이상 내 힘으로는 도저히 내릴 수 없었다.

나무를 탈 것 같은 용기도 생겼지만 실행에 옮길 용기는 아니었다.


급히 경비실로 갔으나 아저씨도 방법이 없으니 관리실에 물어보라고 하셨다.

내 이야기를 들은 관리실 직원도 사다리차가 오기 전에는 힘들겠다고, 아주 고가가 아니면 잃어버린 셈 치라고 했다.

아예 눈에 안 보인다면 아쉬운 대로 놓아버리겠지만 손에 잡힐 듯 그 자리에 있으니 포기가 쉽지 않았다.

사다리차라도 부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상황은 점점 포기하도록 내 마음을 몰고 갔다.


아들은 '괜찮다'고 했지만 아들이 즐겨 입는 옷인 줄 알기 때문에 더 안타깝고 미안했다.


'좀 더 꽉 잡고 흔들걸.'


아쉬움이 크면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이 다시 돌아올 것처럼 후회도 크다.


그렇게 세월이 갔다.

오다가다 눈에 띄는 그것을 애써 외면했다.


하지만

모습을 다 감출 수 있는 한여름의 성한 나뭇잎 속에서도 사이사이로 얼굴을 내밀어 존재를 알려주었다.


정기적으로 행해지는 나무 가지치기에서도 거둬들여지지 않고 겨울이면 여전히 헐벗은 나뭇가지에서 빛바래고 헤어진 모습으로 걸쳐 있었다.


그러나

마음을 모질게 붙잡고 있던 것도 시간이 가면 시들어지는 법.


그것을 쳐다보지 않는 날이 더 많아지게 되었다.





살다 보면

죽을 것만큼 고통스럽고 마음을 아프게 하는 순간들이 불현듯 찾아온다.


그 순간들은 아무리 애를 태워도 계절이 가듯 흘러간다.

'기억하는 것만을 그리워할 수 있다'고 하지만 때론 기억하는 것조차 그리워지지 않을 때도 있다.

그 망각 때문에 마음이 아프기도 하다.


이별, 죽음, 실패, 좌절, 분노, 실망, 우울....

다시 회복되기 힘들 것 같던 그 순간들도 어느새 덤덤하게 다가온다.

그것이 더 놀랍고 슬플 때도 있다.



엄마의 임종을 떠올린다.

가뿐 숨을 몰아 쉬며 자는 듯이 누워있던 엄마!

우리는 엄마의 얼굴을 쓰다듬고 손을 잡으며 끝없이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때는 청력이 마지막까지 유지된다는 것과 마지막까지 신체적 접촉이 중요하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돌이켜 생각하는 것조차 힘들었던 순간들이 차분히 다가오고

하잘 것 없는 티 셔츠 하나의 모습이 아프게 기억나는 것은

고통을 견디지 못해 깨어질까 봐, 삭막함에 마음이 굳어질까 봐 신이 우리에게 베푼 사랑이라 여겨진다.


때론 아픔이 망각되어 슬프기도 하지만

아픔과 고통은

맑은 여름 안갯속에 싸이고, 함박눈의 고요함에 묻히듯 새로이 씻기고 포근하게 안기는 자비를 동반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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