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새로운 친구들

한 가지 목적을 가지고 모인 너무 다양한 친구들의 끈끈함

by 모니카

시작이 반이라더니 240시간의 이론과 실기 수업이 끝나가고 있다.

이제 다음 주부터는 3~4명씩 조를 짜서 현장으로 실습을 나가게 되고 80시간의 현장실습 후, 3월 초에 자격시험을 보게 된다.

요양보호사 시험은 국가고시로서 요양보호사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에서 소정의 교육과정을 이수해야만 볼 수 있다.

가족요양에 대한 관심과 퇴직 후 일자리로서 관심이 높아지면서 요양보호사 자격증 시험 응시자는 해마다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내가 다니는 교육원도 요즘 상담자가 많이 오는 것 같다.


이번 기수는 가족요양을 목적으로 온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가족 요양에 대한 관심과 정보 공유가 유독 많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생각보다 가족 중에 요양보호를 받아야 할 사람이 있는 가정이 많았다.


50대인 H씨는 아내를 케어하기 위해 등록을 했는데 교육을 받는 동안 요양병원에 계신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케어받아야 할 사람이 어머니이기도 했지만 아내도 돌봐야 할 입장인 것 같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아내는 H씨가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도 가족 요양비를 받으며 케어를 받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요양보호사로부터 돌봄 받을 수 있는 대상자, 이른바 장기요양급여 대상자는
'일상생활을 혼자서 수행하기 어려운 65세 이상이거나 65세 미만이지만 치매, 뇌혈관성질환, 파킨슨병 등 노인성 질병을 가진 자로서 6개월 이상의 기간 동안 혼자서 일상생활을 수행하기 어렵다고 인정되는 사람'
이라는 조건을 갖춰야 한다.


그의 아내는 아직 50대이고 노인성질병이 아닌 심장병을 앓고 있는 것 같다.


전체 인구 대비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20% 이상인 국가가 초고령 사회 국가인데, 우리나라는 2025년인 올해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노인복지와 노인부양은 큰 사회문제가 아닐 수 없다.


나도 90세인 시어머니가 계시고 앞으로 우리 부부도 서로 돌봄을 필요로 할지 알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요양보호에 대한 배움은 매우 잘 한 선택이라 생각한다.


우리 기수는

연말연시에 시작한 그룹이라 30~40명 되는 다른 기수보다 반밖에 안 되는 인원이라 그런지 더 쉽게 어울리게 되었다.

나를 포함해 집이 가까운 3명만 점심을 집에 가서 먹고 나머지는 도시락을 싸 오기 때문에 같이 점심을 먹으며 더 가까워졌다.


12월 30일에 시작했으니 이제 40일 정도 지났다.

하루 8시간씩 매일 만나다 보니 처음의 어색함은 사라지고 서로 너니나니하며 허물없이 지내는 사람도 많게 되었다.


낯선 그룹의 경직된 분위기에서 윤활유 역할을 하는 사람은 항상 존재한다.


K씨는 내가 만난 그런 사람 중에서 탑이다.


첫 만남부터 서로 아는 사이인가 할 정도로 스스럼없이 말을 잘 걸더니 수업 중에도 교수님 한마디에 그녀의 리액션이 꼭 따라와 심심치 않게도 하지만 때론 짜증 나게도 했다.


그러면서도 주변을 잘 챙기고 예쁘장한 얼굴에 예의가 없지는 않아 밉지 않았다.


며칠 전 K씨가 말했다.


"내일은 내가 찰밥을 해 올게요~ 집에 가서 점심 드시는 샘들도 내일은 같이 먹어요~"


강사님과 직원들까지 합하면 20인분도 넘을 것 같은데 좀 무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들 환영했다.


다음날 커다란 보냉가방과 큰 가방을 들고 택시를 타고 온 K씨를 몇몇 선생님들이 마중 나갔다.

9시부터 수업 시작이라 그 많은 음식을 장만하려면 새벽부터 준비를 했을 것이다.


드디어 점심시간이 되어 차려진 음식은 상상 이상이었다.

넉넉히 30인분이나 되는 오곡 찰밥은 물론이고 고소한 들깻가루 시래깃국에 다양한 나물 반찬은 먹기도 전에 그 수고에 미안함이 먼저 들었다.

특히 나물은 내가 알고 있는 나물 종류가 아니었다.

무나물, 머위, 죽순나물 이외에도 이름을 모르는 나물들이 열 종류 가까이 되어 보였다.

거기다 그 희귀한 나물들은 생 것이 아닌 말린 것이어서 오늘을 위해 며칠을 불리는 수고를 했을 것이었다.

나물뿐만 아니라 김도 준비하고

밥그릇 국그릇 젓갈 수저까지 완벽하게 준비한 K씨 덕에 미안한 마음에 어찌할 줄 모르면서도 모두 맛있게 먹었다.


쏟아지는 감사 인사에 K는 웃으며 말했다.


"다들 예쁘게 말해줘서 기뻐요. 다 재밌자고 한 일인데요 뭐~ 그렇게 힘 안 들었어요~"


그런 헌신적인 수고를 과감히 베푼 K씨가 존경스럽게 느껴졌다.

나에게는 그런 수고를 낼 능력도 없지만 베풀 아량도 없었다.


교수님도 처음엔 같이 먹기를 사양하시더니 나중에는 '식당 하세요?' 하시며 감탄하셨다.


찰밥 파티 후

'우린 찰밥으로 차지게 똘똘 뭉친 기수!'

라며 앞으로도 흩어지지 말고 시험도 찰밥처럼 철썩 붙자고 의기투합했다.


연령대는 다양하지만 이렇게 하나로 뭉친다는 것이 너무 좋았다.

두 분 남자분도 스스럼없이 잘 어울려 주는 것이 보기 좋았다.


반장도 뽑고 처음부터 만 원씩 회비를 걷어 간간이 간식을 먹긴 했지만

그동안 여러 분이 고구마도 삶아 오시고 달걀도 쪄 오시고 과자 사탕 등을 가져오셔서 나도 늘 뭔가 대접하고 싶었다.


97세 치매 시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려고 하신다는 73세의 어른은 항상 겸손하고 인자하게 대해주셔서 언니처럼 의지하고 싶어진다.

내 앞에 앉은 조선족 J씨는 중국에서 어린이집 선생님이었다고 하는데 중국어를 배웠다는 한 선생님의 중국어 선생님 역할도 톡톡이 하고 있다.

J씨는 같이 얘기할 때는 유머도 있고 매우 적극적이지만 앞에 나가 사람들 앞에서 혼자 말해야 할 경우에는 얼굴이 빨개지며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그녀는 늘 '한국 사람들은 대중 앞에 나가서 자신 있게 말을 잘한다'고 칭찬인 듯 아닌 듯이 말한다.

같이 도시락을 먹을 때 다른 사람들이 너무 밥을 빨리 먹어서 조금 남은 밥을 그냥 꿀꺽 삼켰더니 체했다고 하면서 왜 그렇게 빠른지 모르겠다고 푸념할 때는 중국말 억양이 절로 나온다.

그럴 때는 '중국동포'라는 말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조선족이라는 것이 낯설지 않고 스스럼없는 친구가 될 수 있었다.


또 O씨는 교수님이 수업 중 스크린에 띄워주는 핵심 요약과, 휴식 시간에 담소하는 우리의 모습을 사진을 찍어 배경 음악과 함께 오픈 채팅방에 올려 주기도 한다.


이제 다음 주 목요일 수업이 끝나면 쫑파티를 하자고 하고, 다음 날 금요일에는 모두 모여 3월 5일에 가야 할 시험장을 미리 답사하고 점심을 같이 먹자고 만장일치로 결의했다.


소극적으로 따라가기만 하지만 아이들하고만 북적댔던 나로서는 정말 새롭고 흥미로운 경험이다.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에 나는 무엇을 대접할까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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