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실력 없는 디자이너
안녕하세요. DDON 입니다.
다들 주말 푹 쉬셨나요? 주말 내내 오랜만에 1도 일하지 않고, 인스타와 유튜브 숏츠, 카카오 페이지 소설만 줄곧 읽다가 드디어 더 이상 쉴 게 없다- 뭐라도 하자! 하는 마음으로 돌아온 DDON입니다.. (민망하네요.)
오늘은 조금 민감한- 하지만 제가 요즘 많이 드는 얘기를 조심스럽게 꺼내보고자 합니다.
바로 실력 없는 시니어 디자이너에 관한 얘기입니다. 제가 요즘 많이 신경 쓰이는 주제거든요..
사실 줄곧 마음속에 품고 있던 내용이긴 했습니다. '내가 시니어를 달아도 되는 걸까.. 팀에 폐만 끼치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요. (울컥하네요) 여기서 말하는 시니어는 10년 차 20년 차 시니어가 아닌 '이제 막 주니어를 벗어난' 디자이너 이긴 합니다.
너무 자신감이 없는 것 아니냐고 하실 수 있습니다. 첫 프로젝트에서 한창 힘들어할 때 에이전시를 권한 선배가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회사에서 너를 뽑을 때 네가 당장 첫 프로젝트부터 퍼포먼스를 발휘할 것이라 기대 안 한다. 니 입으로 먼저 못하겠다는 말만 하지 마라'
그때 정말로 진지하게 이직한 지 딱 3개월- 수습이 종료되는 분기점이었습니다. 팀에서 뭔가 제 역할을 못 찾는 것 같아 심란해하는 도중- 제 실수로 팀 전체가 새벽까지 야근하는 일이 생겼었습니다. 그때 너무 죄송해서 숨이 턱턱 막혔었죠.. (죄송합니다. 당시 팀원분들..) 새벽 1시.. 2시.. 넘어가면서 들리는 앞자리 팀원분들의 한숨소리가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분을 탓하는 게 아니라 다들 정말 프로젝트가 힘들어서 매일매일 야근 했었는데 제 실수로 새벽을 넘겨버리니 정말 죄송해서 미-촤버리는 줄 알았습니다.
다들 괜찮다고, 그럴 수 있다며- 한 마디도 질책하지 않으셔서 오히려 더 죄송했습니다. 다음 날 퇴근하면서 선배한테 거의 울다시피 하며 통화를 했던 게 아직도 생생하네요. 저 때 정말 '더 이상 폐 끼치지 말고 퇴사할까..' 이 생각을 정말 많이 했습니다. 물론 그때 어찌어찌 시간이 지나고 겨우겨우 요령이 생겨서 프로젝트를 마무리 하긴 했지만, 당시에는 정말 내가 못하면 팀원들이 다 같이 야근을 하는- 일종의 연대 책임이 생긴다는 것에 대한 공포가 굉장했습니다. 지금까지는 내가 못하면 순순히 내가 책임을 지면 끝이었는데- 이제는 내가 못하면 그게 '회사'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는 것에 대한 공포 또는 책임감을 처음 느꼈던 순간 이었던 것 같습니다.
시간이 지나서 현재 프로젝트로 오게 되니 첫 프로젝트와는 또 완전히 다른 공포- 또는 책임감이 엄습했습니다. 이 전에는 그래도 내가 못하면 다른 시니어 디자이너님이 도와주실 수 있었는데, 이제는 저와 주니어 디자이너 분들 외에 디렉터님 밖에 안 계셨거든요. 지금까지 내가 맡은 것만- 똑바로 파악해도 그나마 다행이었는데 이제 다른 팀원 분들의 작업까지 같이 확인하면서 제 작업을 진행하려고 하니 부담감에 토할 것 같았습니다. (실제로 살도 더 빠져서 뭐... 나쁘지 않은 결과 같습니다.)
팀원분들이 굉장히 많이 도와주셨지만, 스스로 지레 겁먹기도 했고 들어왔던 업무- 파악해야 되는 History 등등- 그리고 매일매일 야근함에도 늘지 않는 퀄리티나 속도 등, 너무 많은 것들에 짓눌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시간이 쌓이고 저를 포함한 팀원 분들도 업무에 조금씩 익숙해져 갈 때쯤- 팀원 분들과 업무적인 부분에서 부딪침이 생기고 음- 뭐랄까 저에 대한 업무적 신뢰가 좀 떨어져 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무래도 업무 진행 중 생긴 이슈들 (부족한 업무 퍼포먼스, 업무 상 실수 등)을 계속해서 옆에서 지켜보시다 보니 많이들 답답하셨던 것 같아요. 팀원들에게 고객사 - 디렉터님 사이에서 커뮤니케이션 내용에 전달할 때 누락되는 내용들이나 오 전달되는 내용들이 한층 더 그렇게 만드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서 요즘은 팀원들과 다 같이 디렉터님의 전달 내용을 듣거나 고객사분들이 보내온 내용을 다 같이 공유해서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걸로 조금 일단락되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스스로 꼼꼼하지 못한 게 이런 곳에서 전체적으로 피해를 주게 되는구나- 싶어서 많이 불편했습니다.
그러다가 며칠 전 팀원 분들과 작업을 하던 도중 유독 제가 맡은 부분에서 펑크가 많이 나는 일이 생겼었습니다. 조금씩만 더 신경 쓰면 되었을 부분들이 누락되면서 종합사고같이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다행히 디렉터님이 발견하고 수습해 주셨지만- 자신감이 곤두박질치는 느낌이었습니다. '조금만 더 신경 쓸걸-' 하는 후회가 들었지만 후회는 후회고 일은 일이죠. 최대한 티를 내지 않고 빠르게 팀원들과 수습해서 정리했지만 이후로도 계속 찜찜했습니다.
팀원들과의 삐그덕거림, 중복해서 발생하는 업무적 실수
이런 것들이 나 스스로가 시니어감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들게 했습니다. 오히려 저희 팀원분들이 저보다 더 업무적으로나 일을 잘 처리하는 모습을 볼 때 최대한 티는 안내지만 제 역할을 못하는 것 같아 씁쓸했습니다. 의욕만 넘치고 일은 잘 처리 못하는 것 같아서요.
뭐- 시간이 좀 지난 지금은.. 사실 지금도 ㅎㅎ 뼈아프게 신경 쓰이는 문제이지만, 예전처럼 멘털이 막 부서지거나 그러지는 않도록- 노력 중입니다. 사실 이런 일들을 곱씹는 게 가장 멍창한 짓- 해결방법을 빠르게 찾는 게 가장 현명한 행동이겠죠.
[해결책]
1. 발생했었던 기존의 이슈사항들을 재 체크하여 현재 업무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지 꼼꼼하게 2차 확인
2. 팀 전체 업무에 관한 상세 내용 공유 및 명확한 R&R 정리
요 2가지가 현재는 가장 명확한 업무에 관한 현실적인 해결책인 것 같습니다.
한창 풀이 죽어 있을 때 디렉터님이 하셨던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남네요.
"잘하는 것보다 실수하지 않는 게 중요해."
요즘 들어 더 깊이 각인되는 말인 것 같습니다. 잘하는 건 어렵죠.
그 기준도 모호하고. 하지만 원래 하던 업무를 실수하지 않는 것이 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기본이라는 걸 요즘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요번 주의 목표는 '덤벙거리지 않고- 꼼꼼하게 살피는 것'을 목표로 해야겠습니다.
못한다고 도망갈 수도 없고, 또 이런 것들을 고쳐나가면서 실력이 좋아지는 것이겠죠.
어렵지만 너무 깊게 담아두지 않게 노력해야겠습니다.
다들 한주 마무리 잘하시고 새로운 한 주 맞이하시길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