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이 나를 찾기 위해 선택한 시간
새벽 4시 20분.
오늘도 알람이 울렸다.
어둠 속에서 손을 뻗어 알람을 끄고, 이불을 겨우 걷어냈다.
아직 세상은 잠들어 있었고, 이렇게 고요할 수가 없다.
남편도, 아이들도, 창밖의 세상도. 이 시간만큼은 오롯이 내 것이다.
2017년 겨울, 첫 아이를 낳고 복직한 지 3개월째였다.
회사에선 마케터였고, 집에선 엄마였다. 아침 7시에 집을 나서 저녁 8시에나 돌아왔다.
퇴근하면 아이를 안고, 밥을 먹이고, 재우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개고, 쓰러지듯 잠들었다.
주말엔 밀린 집안일과 육아로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석 달을 살았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나는 '나'로 살고 있지 않다는 것.
마케터도, 엄마도, 아내도 모두 나였지만,
정작 내 이름으로 살아본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예전의 자유롭던 '나'는 어디로 갔을까.
"시간이 없어."는 핑계일 뿐,
워킹맘에게 자기 시간은 사치라고,
나를 위한 시간을 내는 건 이기적인 거라고 스스로를 설득하기도 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시간이 아닌 우선순위.
밤 9~10시, 아이를 재우고 나면 아무 생각 없이 TV를 보며 시간을 보냈었다.
그리고 아침 7시에 일어나 또 허겁지겁 하루를 시작했다.
피곤하고, 짜증나고, 공허했다...
어느 날 문득 생각했다.
'이렇게 살다가 10년 뒤에도 나는 여전히 나를 모를까?'
'나를 위한 시간이 없다고 불평하다가 끝날까?'
그날 밤, 나는 결심했다.
새벽에 일어나자.
처음엔 새벽 5시를 목표로 했다.
그냥 일어나 있기만 해도 성공인거 같았다.
그땐 아이가 어렸기 때문에, 조그만 소리에도 아이가 깰 수 있으니 조심스럽기도 했다.
그리고 5시는 생각보다 금방 지나갔다.
혼자만의 2시간을 확보하려면 더 일찍일어나야 했다.
4시 30분? 너무 이른가?
4시? 너무 무리인가? 고민 끝에 4시 20분으로 정했다.
이유는 없었다. 그냥 4시는 부담스럽고,
4시 20분이라는 어정쩡한 시간이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10분정도 여유를 가지고 4시반부터 무엇이든 해보려고~
누구도 정해주지 않은, 나만의 시간.
그렇게 어느 월요일, 새벽 4시 20분에 처음 일어났다.
첫날 새벽, 나는 책상 앞에 앉았다.
책을 읽어보려 일어났지만, 역시나 책은 읽히지 않았다.
그보단, 이렇게 일찍 새벽에 일어났으니,
오늘 회사에서 너무 피곤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부터 들기도 했다.
평소엔 TV 소리, 아이 울음소리, 남편 코 고는 소리...
뭔가 소리가 항상 있었는데. 이 정적이 오히려 불편했다.
그리고 그런 고요함에 익숙하지 않았기에.. TV를 틀었다.
홈쇼핑 채널이 나왔다.
누군가 열정적으로 주방용품을 설명하고 있었다.
조금 지나니 정규 방송 시작 전, 애국가가 나왔다.
새벽에 애국가를 보게 될 줄이야..
눈꺼풀이 무거웠다. 너무 졸렸다.
피로에 대한 불안감이 다시 밀려왔다. '이러다 오늘 하루 망하는 거 아냐?'
하지만 한편으론 뿌듯했다. 일단 새벽에 일어나긴 했으니까.
책은 못 읽었지만, TV만 봤지만,
그래도 새벽 4시 20분에 일어나는 것 자체를 해냈다.
뭘 하든, 일단 이 새벽 2시간에 익숙해지는 게 먼저였다.
그렇게 첫 새벽이 지나갔다.
그날 이후, 나는 매일 새벽 4시 20분에 일어났다.
정확히 말하면, '매일'은 아니었다. 실패한 날도 많았다.
알람을 끄고 다시 잔 날, 야근하고 새벽 2시에 들어와서 포기한 날,
아이가 아파서 밤새 간호한 날.
하지만 다시 시작했다.
하루 쉬었으면 다음 날 일어났고, 일주일 못했으면 다음 주에 다시 시작했다.
10년이 흘렀다.
그 10년 동안, 많은 것이 바뀌었다.
둘째가 태어났고, 아이들은 자라서 초등학생이 되었다.
이사도 두 번 했고, 부모님도 연세가 드셨다.
하지만 변하지 않은 게 하나 있었다.
새벽 4시 20분.
10년간 새벽마다 나는 책을 읽었다.
수많은 책들을 읽고 네이버 블로그에 기록했고, 공동 저자로 책도 한권 출판했다.
책을 통해 소설 속 인물들을 만났고, 그들에게서 삶의 방법을 배웠다.
육아와 건강에 대한 팁도 얻었고, 일상의 다양한 고민들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운동도 시작했다.
새벽엔 책을 읽고, 출퇴근시간, 점심시간, 주말을 활용해 틈틈히 운동을 시작했다.
출퇴근길 걷기로 시작해서, 지금은 발레핏, 필라테스, PT까지 하고 있다.
문학으로 마음을 채우고, 운동으로 몸을 채웠다.
그렇게 나는 다시 '나'를 찾았다.
물론 완벽하지 않았다.
아이가 아픈 날, 회식 다음 날, 야근으로 새벽 2시에 들어온 날...
새벽에 일어나지 못한 날도 많았다.
알람을 끄고 다시 잠들며 '오늘은 포기'라고 중얼거린 날도 수없이 많았다.
겨우 일어난 날에도 책을 10분 읽다가 책상에 엎드려 잔 적도 있었다.
신청해둔 PT를 캔슬하고 죄책감에 시달렸고, 필라테스 결석하며 '돈 아깝다'고 자책했다.
아이들 앞에서 소리 지르고 후회한 날도, 회의 중에 졸아서 상사에게 지적받은 날도 있었다.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좋은 엄마", "좋은 직원"이 되지 못했다.
늘 무언가 부족했고, 늘 어딘가 미안했다.
하지만 괜찮았다.
완벽하지 않았지만, 나의 내면이 단단해지고 있었다.
10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달랐다.
그동안 나만의 주관이 생겼고, 타인의 말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나를 발견했다.
새벽 4시 20분은 그걸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나로 살고 있구나.'
새벽 4시 20분이 아니어도 괜찮다.
어떤 사람에겐 밤 10시일 수도 있고, 점심시간 30분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시간이 아니라, '나를 위한 시간'을 만드는 것이다.
워킹맘이라서, 바빠서, 시간이 없어서 포기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시간은 만드는 것. 우선순위를 바꿔보자.
10년 전 그날 밤, 나는 TV를 안보고 아이와 함께 일찍 잤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4시 20분에 일어났다.
그게 시작이었다.
누구나 자신만의 새벽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난 정말 누가봐도주변에 많이 볼 수 있는 흔하디 흔한 평범한 직장인이다.
자신만의 시간이 고픈 사람이라면,
꼭 새벽에 책이 아니어도 좋다.
일단 자신만의 무언가를 시작해보자.
10년간 새벽마다 읽은 책들,
그 기록은 '새록초록한 독서' 블로그에 하나하나 남겨두었습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해보세요.
그리고 혼자 시작하기 어렵다면, 새벽독서 모임과 함께해보세요. 함께 읽으면 더 즐겁습니다 :)
[다음 편 예고]
다음 주에는 '워킹맘에게 새벽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이야기해볼게요!
왜 하필 새벽이었는지, 밤과는 무엇이 달랐는지, 이야기해볼게요.
매주 목요일 저녁 8시, 새로운 이야기로 찾아오겠습니다.
<새벽 4시 20분, 10년의 기록>은 매주 목요일 연재됩니다.
#워킹맘 #새벽루틴 #시간관리 #새벽독서 #자기계발 #워킹맘일상 #10년의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