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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길 Jun 06. 2024

행복의 증명

형태만 다를 뿐이야.

 소박한 행복, 아마 모든 사람들이 한번 쯤은 생각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소박한 행복은 절대적이지 않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고, 어떤 삶을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다르게 나타난다. 누군가에게는 새벽에 책을 읽는 것이 소박한 행복일 수 있을 것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아침 일찍 일어나 맞이한 푸르고 화창한 하늘이 행복을 가져다 줄 수도 있다.

 기숙사에서 살아가는 내게 있어서는 아침에 일어나 아침 운동을 하고 밥을 먹고 기숙사 침대에 누워서 휴대폰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소박한 행복이었다. 기숙사에 들어와서는 스마트폰 사용에 제한이 생기다 보니 우리에게 스마트폰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편리한 존재이고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중요한 존재인지를 실감하게 되고, 매일 아침 기숙사 침대에 누워 겨우 유튜브를 시청하는 것이 내게 있어서는 소박한 행복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기숙사에서는 오후 7시부터 12시 까지 자습 시간이고, 자습 시간이 지난 후에는 사감 선생님께서 종례를 진행하신다. 그리고 사감선생님이 종례 시간에 앞으로는 등교하는 순간에만 핸드폰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고 하셨다.

 사감 선생님이 말씀 하시기를, 아침에 바로 핸드폰을 나눠주니 대부분이 기숙사 침대에서 핸드폰만 사용하는 모습이 보기에 좋지 않아서 교복으로 갈아입고 책가방까지 맨 다음 등교를 하기 바로 직전에만 핸드폰을 나눠줄 것이라고 하신 것이다.

 당연히 이러한 통보에 기숙사생들의 대부분은 탄식을 했다.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아침 시간에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잠시나마 핸드폰으로 안식을 취하는 것으로 소박한 행복을 챙기던 것이었다. 또 등교 시간 전에 잠을 조금이라도 더 자기 위해 자는 사람들 중에는 핸드폰으로 알람을 맞춰놓고 자는 사람이 많았기에 나는 사감 선생님의 결정이 고등학생인 우리의 소소하며 소박한 행복 중 하나를 가져간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다음 날부터 등교를 것이라고 확인을 받아야만 핸드폰을 가져갈 있었다.


 처음에는 내가 가질 수 있던 행복을 위한 시간을 뺏기게 된 것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기에 계속해 불만을 품게 되었고, 기숙사 침대에 누워 있어 보았자 잠을 청하는 것 이외에는 등교 시간 전에 기숙사에서 할 것이 없었다. 굳이 꼽자면 창문 밖으로 우중충한 건물들을 보는 정도.

 그러한 까닭에 나의 등교시간을 앞당겨졌다. 평소 밥 먹고 학교를 갈 채비까지 끝마치면 8시 5~10분 정도의 시각이 되는데, 그러면 나는 보통 8시 20~30분까지 핸드폰을 사용하다가 등교한다. 어차피 일찍 등교해봐야 학교에서 핸드폰을 사용한다면 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등교하는 순간이 되어야 휴대폰을 챙겨갈 수 있기 때문에 등교할 준비를 끝내자마자 등교를 하게 된다. 그러면 보통 8시 5~10분 쯤에 등교를 하여 학교에 8시 15분 전에는 도착하게 된다.

 아침에 핸드폰 사용이 허락되었을 때에는 반에 들어가면 거의 대부분이 이미 등교해 있었고, 내가 도착하고 머지않아서 조회까지 시작했지만 기숙사에서 아침 폰 사용이 금지된 이후에는 등교를 일찍하다보니 반에 2~3명 정도만 있다. 꽤나 한적함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아침에 일찍 오는 사람들은 거의 매번 같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반에 들어가자마자 그들과 인사를 나누는 것이 벌써 일상이 되었다.

 또한 학교에 일찍 등교하여 창문을 본다면 정문에서부터 학생들이 걸어오는 모습을 볼 수가 있는데, 마치 개미 떼처럼 보이는 학생들의 등교 모습을 보는 것이 기숙사에서 핸드폰을 하던 것과는 다르게 나의 마음에 안식을 주었다.


 어느덧 나느 벌써 익숙해져 있었다. 일찍 등교를 하게된 나의 상황에. 그리고 나는 벌써 그 상황에 적응이 되어 다른 형태의 행복을 즐기고 있었다. 아침에 몇 안되는 친구들과 소소한 담소를 나누며, 해가 뜨기 시작하며 만들어내는 초여름 아침 특유의 시원함과 개미 떼처럼 등교하는 학생들의 모습. 그것들이 내게 벌써 소박한 행복으로서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렇구나, 내 삶이 어떻게 바뀌든, 그게 큰 변화이든 작은 변화이든 간에 행복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단지 형태가 다를 뿐이었겠지. 뮤지컬 '영웅'에서 '동양평화'라는 곡에 가사에는 이러한 가사가 들어있다.

 "작은 평화, 큰 평화가 어찌 다를 수 있겠는가"

 마치 이 가사처럼, 행복의 크기가 어떻든, 형태가 어떻고 내가 그걸 느끼는 방법이 어떻든 그것은 결국에는 행복이다. 그렇다면 그걸로 된 것이다. 내가 어떻게 살아가든 간에 행복은 존재한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겠지. 어차피 우리는 행복을 찾을 터이니, 막 그렇게 인생사를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뭐가 어찌되는 간에, 난 행복해질 것이다. 이러한 것을 나는 믿음이 아니라 진실로 여기며 살아갈 것이다. 그것 또한 내게는 행복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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