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철입니다. 심했던 봄가뭄이 끝나고 비가 온다는 소식에 유하네는 설렙니다. 작물이 뿌리를 내리고 자라기 시작할 때 오는 봄가뭄은 유하네 마음도 태웁니다. 뜨거운 태양아래 반나절이면 밭에 흙은 바짝 말라버립니다. 연신 스프링클러를 돌리고 물이 닿지 않은 곳에는 직접 호스를 들고 물을 줍니다. 봄가뭄 동안 농부의 일과는 물주는 일이 시작이고 끝이고 하지요. 초보 농부 유하엄마는 물주는 일을 잘 하지 못해 기껏 심어놓은 작물을 죽이기 일쑤입니다. 이런 와중에 하늘이 비를 내려주면 이래서 농부는 땅을 밟고 하늘을 이고 산다고 하는구나합니다.
봄가뭄이 지나가고 장마가 오면 이제 풀과의 한판 싸움을 시작합니다. 유하엄마는 매년 풀과의 전쟁을 선포합니다. 전쟁을 선포할 것까지야 하지만 올해는 반드시 풀을 몽땅 뽑아 내가 심은 작물들을 지켜보겠다는 의지의 표명입니다.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풀에 싸움을 걸지만 유하엄마는 어느새 풀과의 평화선언을 하며 풀을 이기겠다고 한 어리석은 생각을 반성하죠. 땡볕에 자라는 속도가 느려졌던 풀들이 수시로 내리는 비에 본격 활동을 시작합니다. 장마가 한차례 지나가고 뒤돌아보면 어느새 밭에는 작물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풀들이 자라납니다. ‘쑥쑥’하고 풀들이 자라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열심히 풀을 매보지만 돌아보면 다시 풀들이 고개를 듭니다.
풀을 키우는 거야? 고구마를 키우는 거야?
유하네는 약을 치거나 비닐을 깔아서 풀이 자라는 것을 막는 농법을 하지 않습니다. 풀과 꽃이 어울리고 작물과 풀이 서로를 의지하며 자라길 바라죠.
한창 가문 날 고구마밭에 물을 주고 있으니 앞집 할머니가 “왜 물을 주는 거야? 풀 잘 자라라고 물을 주는 거야?”하고 유하엄마 가슴에 화살을 콱 박고 가십니다. 이랑은 물론 고랑에도 풀하나 나지 않게 제초제를 뿌리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밭을 기어 다니며 풀을 매던 부지런한 할머니 농부에게 유하네 밭이 엉망으로 보이는 게 당연합니다. 영양분도 많지 않은 유하네 밭을 보시며 작물이 먹어야할 양분을 풀들이 다 먹어버릴 거라는 걱정이시기도 합니다. “여기 고구마 있잖아요. 고구마 잘 자라라고 주는 거죠”하고 웃었지만 유하엄마도 이 많은 풀을 언제 뽑나 한숨이 절로 납니다.
고추밭 풀을 매주던 날, 커다랗게 자란 개비름을 보며 “얘는 언제 이렇게 자랐데”하며 낫으로 베려는 순간 개비름 줄기에 하얗게 진딧물이 앉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바로 옆에 있던 고추에는 진딧물이 하나도 없는데 말이에요. ‘개비름으로 진딧물이 모이나보다’하고는 그대로 두었습니다. 개비름을 자르면 고추로 진딧물이 옮겨 갈테니 말이죠. 풀하고 작물하고 어울리며 산다는 것이 이런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