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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맘유하맘 Sep 18. 2020

도시가 만들어낸 기후위기는 시골로 향한다-1

[유하네 농담(農談)]

올해도 망했다

“엄마 언제 비가 그쳐?” 2주의 짧은 방학을 맞은 유하가 매일 아침 물어봅니다. 비가 그쳐야 마당에 수영장을 설치하고 친구들을 불러 놀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수영선수가 꿈이었던 유하는 코로나가 터지고 수영장에 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마당 수영장만 오매불망 기다렸습니다. 근데 비가 그칠 생각을 하지 않으니 “올해는 망했어” 유하가 뾰로통합니다. 엄마도 속으로 “올해도 망했어”합니다.

6월 중순 장마가 시작된다는 소식에 사실 신이 났었습니다. 원주로 이사 오고 나서 유하네는 계속 물 걱정을 하며 살았거든요. 원주로 귀농 첫해였던 2018년, 유하네는 이른바 마른장마를 만났습니다. 야심차게 600평의 밭을 빌렸었습니다. 참외도 심고 콩도 심고, 들깨도 심을 생각이었죠. 6월 중순 장마가 오기 전 미리 키워 놓은 콩 모종을 잔뜩 심었죠. 비가 오면 푸릇푸릇 콩이 잘 자라겠구나 하면서요. 근데 웬걸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물과의 싸움을 시작했습니다. 물이 나오지 않는 밭이라 물지게를 지듯 양손에 조리개를 들고 물을 날랐습니다. 600평 밭에 물을 주기에는 부족했습니다. 결국 콩 모종이 타들어 가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했습니다. 가래침만 뱉어도 산다는 들깨도 모조리 타 죽었습니다. 작년에는 그나마 비가 조금 와서 들깨를 키울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제대로 된 장마가 오려나 기대했었습니다. 6월 말 장마 초기만 해도 이상하게 우리 동네만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매일, 매시간 날씨앱을 들여다봤지만 비는 오지 않았습니다. 비가 온다는 소식에 얼른 콩 모종을 들고 나섰습니다.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유하엄마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습니다. 콩을 심다 호미를 던지고 “하늘이 우리를 버렸나. 성당에도 열심히 나가는데”하고 소리를 쳤습니다. “물 주면 되지. 그래도 이렇게 함께 밭에 있으니까 난 좋다” 호스로 콩에 물을 주며 유하아빠가 웃습니다.

남쪽 지방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던 장마전선이 중부지방으로 올라왔습니다. 유하엄마의 원망을 들은 듯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한 달 동안 비가 왔습니다. “나랑 한번 해보자는 거야?” 끊임없이 내리는 세찬 비에 고추가 넘어가고, 들깨가 녹아내려도 보고만 있어야 했습니다. 달렸던 대추도 다 떨어지고 벌이 날지 못하니 피었던 대추꽃도 그냥 다 떨어져 버렸습니다. 밭 곳곳은 물길로 파헤쳐지고 밭 한 쪽에서는 물이 뽀글뽀글 계속 흘러나오는 샘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말 함부로 하지 말아야지” 비가 잠시 그친 사이 넘어진 고추나무를 세우며 다짐합니다.

북극곰의 불행이 우리의 삶으로

이번 길고 긴 장마는 환경오염에 따른 기후위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인간이 아무렇지도 않게 써왔던 많은 것들 때문에 지구의 온도가 1도 이상 올라갔고, 빙하들이 녹아내리고 찬 공기들의 세력이 강해지면서 이번 역대급 장마를 만들어냈다고 뉴스가 떠들어 댑니다.

“엄마 북극곰들이 얼음이 없어서 헤엄을 치다가 지쳐서 물에 빠져 죽는데요” 유하가 들려줬던 북극곰 이야기가 퍼뜩 떠올랐습니다. 다큐멘터리에서 보던 북극곰의 불행이 우리에게도 오는 것 아닐까 무섭기도 했습니다. “유하야, 우리가 쓰고 버린 쓰레기들이 우리 눈에 안 보인다고 사라진 게 아니야. 지구 밖으로 나가지는 못할테니 어딘가에 또 모여 있겠지. 그러니까 뭐든지 아껴쓰고 되도록 쓰레기를 덜 만드는 사람이 되자” 뉴스를 보던 유하파파의 일장 연설에 유하도 고개를 끄덕입니다.


(다음 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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