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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셔의 손 Oct 31. 2021

"남자는 울면 안 돼."

진짜 안 될까?

“남자는 울면 안 돼.” 이 세상의 남자들이 평생동안 듣는 말이다. 일본의 남자들은 어렸을 때부터 “남자는 울지 않는다”라는 말을 들으면서 자란다고 한다. 미국이나 호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어른들은 종종 울먹이는 남자아이들에게 “don’t be such a girl.”이라고 꾸중한다. 한국 남자들에게는 태어나서 단 세 번, 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태어날 때,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그리고 나라를 잃었을 때. 참으로 야박하지 않을 수 없다.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정말 여성스러운 것일까?
남자가 우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것일까?


필자의 친구 A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26세 남성이다. A는 감수성이 무척이나 풍부하고 아주 예민하다. 음악을 사랑하고, 소리지르며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한다. 필자는 A가 사춘기 이후부터 말수가 적어지고 무뚝뚝해지는 것을 보았다. 몇 년 전부터, 그와의 대화는 오 분을 채 넘기기 힘들어졌다. 그는 본인의 생각과 감정을 감추기 시작했고, 아주 심하게 화를 내는 잠버릇을 갖게 되었다. 지금의 A는 여전히 풍부한 감수성과 예민미를 자랑하지만, 동시에 극심한 우울증을 겪게 되었다.


A와 비슷한 증상을 겪는 남자아이들은 바다 건너 미국에도 존재하는 듯하다. 뉴욕 대학의 웨이 교수는 많은 사춘기 남자아이들이 성장과정에서 타인과 대화하거나 감정을 표현하는 일이 줄어드는 것을 발견했다. 이 중 연구에 참여한 한 학생은 ‘여자아이들이 부럽다. 감정적이 될 수 있으니까.’라고 말했다. 그렇다. 이 세상은 알 수 없는 이유로, 남자들의 감정과 눈물을 환영하지 않는다. 그리고 남자아이들은 어른으로 자라나면서 감정을 오롯이 느끼고 표현할 권리를 잃어간다.


그러나 감정을 억제하는 사람은 아프기 쉽다. A의 사례가 보여주듯, 자연스러운 감정을 억제해서 쌓인 감정들은 적절치 못한 순간에, 보다 극대화된 형태의 분노와 폭력으로 표출되곤 한다. 실제로 워싱턴포스트에서 한 심리치료사는 남자아이들에게 ‘울면 안 된다’라고 가르치는 것이 우울증과 폭음 등 정신적 문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밝힌다. 오랜 세월 동안 남자아이들이 울지 못하도록 강요했던 이 세상은, 알게 모르게 수많은 사람들을 병들게 해왔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최근에 A는 상담을 받으면서 그동안 억눌러왔던 감정들을 때로는 격하게, 때로는 눈물을 흘리며 표현한다. 자신이 느끼는 것들, 사랑하는 것들, 미워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스스로를 설명하기 시작하는 그이다. 치료를 받는 그를 보며 다행스럽기도 하고, 동시에 “A가 조금 더 어렸을 때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배웠더라면 조금 덜 아플 수 있었을까?”하고 종종 생각하게 된다. A가 아프게 된 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감정 표현의 중요성에 대해 배우지 못한 것도 하나의 원인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그동안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세상의 수많은 남자아이들의 감정에 귀 기울일 때가 아닐까.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묻고 싶다.

남자가 우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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