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미국 워싱턴 디씨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다.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참여해서였다. 미국으로 떠나기 전, 나는 여느 교환 프로그램을 앞둔 대학생답게 기대에 부풀어있었다. “워싱턴의 인종은 얼마나 다양할까, 그곳 사람들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미국 문화를 많이 경험할 수 있을까,” 이런저런 궁금증을 가지고 비행기에 올라탔던 기억이 난다.
기대와 달리, 미국에서 첫 달 동안 느낀 감정은 ‘무기력’이었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어야 하는 부담감, 영어로 스스로를 표현해야 하는 어려움 등의 다양한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내가 살게 된 도시, 워싱턴 디씨 속 분리된 사람들이었다. 이방인인 내가 바라본 워싱턴은 백인과 유색인종의 영역이 철저하게 분리된 도시였다.
워싱턴 디씨의 블루칼라 종사자들은 대부분 흑인이거나 히스패닉이었다. 청소부, 경비, 우체부 중 백인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반면 수업에서 만나게 된 교수님들 중 흑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의아한 마음에 다른 친구들에게도 흑인 교수님을 본 적이 있냐고 물었을 때, 단 한 친구만이, 한 분의 흑인 교수님의 수업을 듣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심지어는 마트 종류에 따라서도 만나게 되는 인종이 달랐다. 가격대가 높은 마트인 홀푸드에서보다 가격이 저렴한 편인 월마트에서 훨씬 더 많은 흑인을 만날 수 있었다. 이 외에도 디씨의 어느 곳에 가든 나는 인종에 따라 분리되어 있는 사람들을 관찰할 수 있었다.
21세기에, 그것도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 디씨에서 이처럼 선명한 인종 불평등을 마주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당시는 Black Lives Matter 운동이 일어나기 전이기도 했다.) 그러나 머지않아 알게 되었다. 워싱턴 디씨 속 인종 분리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뿌리가 깊고 심각하다는 것을 말이다. 디씨에서는 인종 별 주거 구역이 확연하게 분리되어 있었다. 인구의 70% 이상이 백인인 1구역과는 달리, 7구역과 8구역에서는 전체 인구 중 90% 이상이 흑인이었다. 알고 보니 이 두 구역은 60년대 도시 재개발로 인해 디씨의 중심부에서 쫓겨난 이들이 살게 된 지역이었다. 7구역과 8구역의 실업률은 약 10%로, 디씨의 평균 실업률인 5.8%보다 월등히 높은 수치를 자랑하기도 했다.
‘무기력’이었다. 어린 아시아계 여성인 내가 피부색에 따라 사람들이 나눠져 있는 것을 바라보는 마음은, 다름 아닌 무기력이었다. “백인과 흑인의 위치가 저렇게 확연하게 구분이 되어 있다면, 나같이 작고 어린 동양인 여성은 어디에 속할까,” 계속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되고 불안해졌다. 모두가 서로에게 웃으며 친절하게 대했지만, 유색인종과 백인 사이에 거대한 벽이 존재하는 것을 나는 느꼈다. 모두가 그 벽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너무 익숙해졌다는 듯, 마치 숨 쉬듯이 그 벽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내가 미국에 대한 너무 큰 환상을 가졌던 것일까. 우리 모두가 같은 위치에 서는 것은 아직도 너무 먼 일인 걸까. 스스로에게 몇 번이고 되묻게 되는 나날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