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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길 May 15. 2020

국민 '썅놈' 승민의 망상

영화 건축학개론



 영화《건축학개론》은 삼류 남성향 포르노 영화이다. 영화는 시작부터 결말까지 철저히 남성의 관점에서 여성을 규정하고 대상화함으로써 남성의 성적 판타지를 충족시킨다. 영화는 주로 승민의 시점에서 진행되어 관객은 승민의 감정에 이입하도록 강제된다. 이로 인해 관객은 승민과 더불어 첫사랑인 서연을 한 명의 인간이 아닌 성적 대상으로 인지하게 되고 다른 관점에서 서연을 인지할 가능성을 박탈당한다. 또한, 영화에서 주요 여성 인물은 오로지 서연이다. 서연은 주체적인 특성을 가진 인물이 아닌, 한 남성의 첫사랑으로서의 정체성만을 지닌다. 유일한 주요 여성 인물이 한 남성의 성적 대상으로 기능화된 것이다. 따라서 영화는 철저히 남성의 욕망을 충족한 남성향 포르노 영화이다. 한편, 영화는 오랜만에 나타난 첫사랑과 젊은 약혼녀가 자신을 사랑하는 신파적인 코드를 바탕으로 한다. 이러한 보편적인 성적 판타지를 소재로 삼음으로써 영화는 전형적인 삼류 포르노 영화로 전락한다. 결국, 이 남성향 포르노 영화는 첫사랑에 걸맞는 ‘순수한’ 이미지의 여자 연예인과 추억의 가요로 치장하여 ‘국민 첫사랑’ 영화로 둔갑한 것이다. 따라서 영화는 포르노 영화를 관객으로 하여금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도록 유도하고 잘못된 젠더 관념을 양산하였다는 점에서 비판된다.


 

 영화에서 여성은 남성의 의식에 의해 파편화되고 성적 대상화된다. 여성은 남성의 성적 욕망을 야기하는 신체 부위로 표상되고 남성을 위해 기능하는 도구로 전락한다. 이는 서연에 대한 묘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영화의 첫 부분에서 서연이 등장할 때 카메라는 서연의 다리 클로즈업으로 줌인한다. 또한, 승민이 몰래 서연한테 입맞춤을 시도할 때 카메라는 서연의 입술 클로즈업샷을 보여준다. 더 나아가, 서연이 승민과 대화할 때 카메라는 서연의 결혼반지를 끼고 있는 손가락의 클로즈업샷을 보여준다. 이러한 카메라의 움직임은 관객으로 하여금 서연의 다리와 결혼한 손가락에 집중하게 함으로써 서연을 성적 대상으로 전락시키고 결혼의 여부가 서연의 유일하게 유의미한 특성으로 인지하도록 한다. 이는 영화가 승민의 시점에서만 진행되는 구성방식에 기인한다. 승민이 서연을 이성으로 인식하고 성적인 대상으로 인지하기 때문에 이러한 묘사가 진행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승민과의 서사 이외에도 서연은 아픈 아버지를 돌보는 ‘효녀’로서의 기능을 수행한다. 영화 전체에서 서연이 남성의 시선으로부터 탈피하여 온전히 자기 주체성을 발현하는 장면은 존재하지 않는다. 철저하게 서연은 남성의 시선에 종속되어 있으며 이들의 욕구와 필요에 따라 존재할 뿐이다. 이는 서연의 대사로부터 확인할 수 있다. 승민이 서연의 이혼 사실을 알고 난 후, 서연은 승민한테 혼자 사는 것이 쪽팔려서 말을 안 했다고 말하며 먹고 살 길이 없어서 이혼하는 것을 버텼다고 말한다. 또한, 서연은 “나 썅년이지?”, “삶이 매운탕같다. 속에 아무것도 없고 맵기만 해서.” 라고 말한다. 이러한 서연의 대사에서 감독의 수동적인 여성상을 확인할 수 있다. 감독은 서연을 직업 없이 남편의 수입에 의존하는 결혼한 여성이었지만 이혼한 후 다시 찾아온 첫사랑으로 묘사하여 남성에 ‘기생’하는 여성상으로 전락시킨다. 이렇게 감독은 서연을 무능력한 여성으로 설정하여 남성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대상으로서만 기능하도록 의도한 것이다. 이러한 가부장적인 시점에서 서연은 ‘썅년’인 것이며 ‘속에 아무것도 없는’ 성적 대상으로 묘사되는 것이다. ‘썅년’은 서연의 대표 수식어이다. 서연 스스로 자신이 썅년이라고 자조하고 승민의 친구인 납뜩이가 썅년이라고 서연을 비난한다. 

 그러나 실상은 남성 인물들이 ‘썅놈’이다. 납뜩이는 성인임에도 불구하고 미성년자인 고등학생과 연애를 하며 승민한테 중3 여학생과 소개팅을 하라고 권유한다. 또한, 이 영화의 명장면으로 일컬어지는 납뜩이의 키스 강의는 난잡한 손행위로 키스를 감정이 전무한, 단순한 성적인 행위로 전락시킨다. 승민의 선배인 재욱과 승민, 친구는 서연이 없는 자리에서 서연의 외모와 남자친구의 유무에 관하여 이야기한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승민은 서연이 잠든 줄 알고 몰래 입맞춤을 하여 성추행을 하였으며 재욱에 의해 강간당하려고 하는 서연을 목격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방관하고 문 앞에서 소리를 엿들었다. 


 

 승민의 성폭행 방관 행위는 승민의 실연으로 포장되어 성폭행 피해자인 서연은 납뜩이와 승민의 찌질함에 의해 ‘썅년’이 된다. 서연이 재욱과 합의 하에 성관계를 가지었더라도 승민은 자신의 마음을 서연에게 고백하지 않은 상태이고 서연과 연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서연을 욕할 근거와 지위를 가지고 있지 않는다. 자신이 찌질하기 때문에 서연에게 고백하지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성폭행 방관 행위를 실연으로 포장하는 것은 승민이 극도로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이기적인 인간임을 증명한다. 마지막으로, 승민은 약혼할 여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첫사랑인 서연과 키스한다. 승민과 약혼한 은채는 젊고 아름다운 미모와 승민을 지원할 수 있는 아버지를 가진 인물로 묘사된다. 승민은 자신의 자존심 때문에 은채의 아버지의 도움을 거절하고 은채와 관계하면 자신은 늙고 무능력하기 때문에 하위자로 전락한다는 것을 인지한다. 한편, 서연은 자신과 나이가 같고 경제적 배경이 없어 자신의 지위를 위협하지 않는 존재이기 때문에 승민은 서연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킨다. 영화에서는 이러한 행위를 첫사랑을 잊지 못한 두 남녀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장면으로 묘사한다. 결국, 영화에서 승민의 ‘쌍스러운’ 행위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는 것이다. 

 따라서 영화《건축학개론》은 남성향 삼류 포르노 영화인 것이다. 사회적 지위와 부가 없는 승민은 결혼할 여성인 은채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자신이 이전에 정복하지 못했고 자신을 아직 사랑하는 서연과 바람을 핀다. 젊고 아름답고 부를 가진 여성과 자신의 첫사랑이 모두 한 남성을 사랑한다는 설정은 남성의 포르노적 망상이다. 이를 ‘순수한 첫사랑’으로 포장하여 남성의 성추행과 성폭력 방관 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은 지극히 비윤리적이며 남성의 성적 권력을 확립하는 행위이다. 승민의 서연에 대한 감정은 사랑이 아니다. 승민의 사고와 행위는 온전히 자신의 성적 욕망을 충족시키고 자존심을 극복하고자 여성을 대상화하고 종속시키는 폭력인 것이다. 이를 남성의 첫사랑으로 포장하는 것은 사회의 젠더 관념을 저해하고 사랑에 대해 잘못된 행위와 인식을 양산할 위험을 내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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