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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니 Dec 07. 2021

스마트폰 중독 탈출기

뜻밖의 탈출구 (소소 33개월)

  아무래도 나는 휴대폰 중독인 것 같다. 예전엔 소소를 위한다며 각종 정보 검색에 하루를 다 보냈는데 무한 검색을 멈춘 요즘도 손에서 휴대폰이 떠나질 않는다. 평소 관심도 없는 연예 기사까지 샅샅이 훑어서 보지도 않는 주요 드라마 줄거리를 다 꿰고 있을 정도다. 휴대폰 때문에 소소와 제대로 시간을 보내지 못하고 있다.


  스스로 조절이 안 되니 인터넷을 못 쓰게 2G 폰으로 바꿀까도 고려했지만 차마 스마트폰의 편리함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스스로 중독이 아닐까 의심하며 지내던 중 책을 읽다가 중독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도박, 마약 등에 대한 중독 얘기가 주로 다뤄져 있었고 휴대폰 이야기는 없었지만 중독자들의 증상이 나와 비슷했다. 무언가에 중독되어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는다는 것. 의심이 현실이 되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겁이 났지만 나와 아이를 위해 진실을 마주하기로 했다. 그저 불안해서 그런 것 중독까지는 아닐지도 모른다는 적은 가능성에 기대어 김날따 선생님에게 질문했다.


  “책에 도박 중독에 대한 얘기가 나왔는데, 매개체만 다르지 저랑 증상이 똑같아요. 아이 옆에 있으면 휴대폰을 하고 싶은 열망이 느껴져요. 선생님, 저는 휴대폰 중독인 거죠?”


  대답 대신 선생님이 인터넷을 열어 보여준 것은 영화 「타짜」속 한 장면이었다. 화장실에서 주인공 고니가 화투에 대한 유혹을 참기 위해 스스로 손가락을 자르려 할 때 아귀가 나타나는 장면이다.     

       

아귀 : 너 화투 치다 집문서 날렸냐? 내기할래? 너 그거 못 자른다.
고니 : 뭐야? 저리로 안 가?
아귀 : 다 때 되면 남들이 알아서 잘라줄 거인디 거 그냥 놔둬라.

   ‘손모가지’라는 유행어를 남긴 영화. 중독을 끊지 못할 거라는 아귀의 장담에 갑자기 내 손모가지가 날아가는 모습이 상상됐다. 마음이 더욱 움츠러들었다.


  “휴대폰으로 뭘 하나요?”

 

   “그냥 쓸데없는 연예기사 이런 거 봐요.”

  

  “신니씨가 휴대폰을 가지고 특별히 의미 있는 걸 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런데도 하고 싶은 열망이 끌어 올랐다고 했죠. 중독이에요. 이거는 의지로 안돼요. 계속 멀리하다 보면 어느 날 끊어지는 거지, ‘난 내일부터 끊어야지’라고 결심하고는 어려워요. 전원 끄는 수밖에 없어요. 나중에 소소가 휴대폰 중독이 되면 어쩌지. 아휴~”


  안 돼. 소소마저 휴대폰에 중독될 수 있다는 말에 필사적인 심정이 되어 항변해 보았다.

 

   “그런데 저보다 휴대폰을 더 많이 하는 엄마들도 있는 것 같던데요…….”

  

  “목적이 있어서 검색을 하는 건 중독이 아니지만, 의미 없는 기사를 클릭하고자 하는 열망이 느껴지면 중독이에요. 목적과 방향성이 없으면 중독이죠. 그냥 하느냐, 열망에 사로잡혔느냐에 차이가 있어요. 강원랜드 카지노에 그냥 한 번 가보는 사람과 가고 싶어서 계속 가는 사람은 다르죠. 제가 신니씨한테 소소 보는 동안 스마트폰 하지 말라고 말하면 끊을 수 있어요?”


  마지막 에 무릎을 꿇었다. 나는 휴대폰 중독임이 틀림없었다. 진료실을 나서는데 정신이 아득했다. 공황장애도 있는데 이젠 중독까지? 정말 미칠 것 같았다. ‘못 고쳐요’라는 말이 계속 맴돌았다. 이젠 어쩌지. 앞으론 중독도 같이 치료를 받아야 하는 걸까. 치료할 수 있을까.

  “제가 휴대폰 중독이래요.”


  처방전이 나오길 기다리는 동안 친절한 간호사 선생님에게 울하게 말했다.


  “그래요? 그런데 저도 스마트폰 많이 보는데요? 요즘 사람들 다 그렇지 않나요?”


  “아니 그게 아니고 저는 아기랑 있으면 막 휴대폰을 보고 싶은 열망이 느껴지거든요.”


  엇. 간호사 선생님에게 '열망'을 강조하다가 몰랐던 사실 하나를 알았다. 바로 그 휴대폰에 대한 열망이란 게 ‘아기랑 있을 때’ 유독 커진다는 . 소소랑 있을 때 연예 기사도 유독 궁금하고, 카톡 대화 내용도 궁금하고, 종일 잊고 있었던 사야 할 물건들이 줄줄이 생각나 주문했다. 전부 소소와 있을 때 일어나는 일들이었다. 소소가 어린이집에 가거나 아빠와 놀고 있을 때는 그 열망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책을 보기도 하고 글을 쓰기도 했다. 그걸 방금 진료시간까지도 인지하지 못했다.


  ‘지금 소소랑 놀아줘야 해. 상호작용이 정말 중요한 시기야’라는 의무감이 과도한 압박감이 되어 돌아왔음을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이 마음이 아이 곁을 벗어나고 싶게 만들고 금단현상처럼 휴대폰을 찾게 했다. 아이에게는 정말 미안한 일이었지만 특정 상황에서만 열망이 느껴진다면 어쩌면 중독이 아닐 가능성도 있어 보였다.


  정말 휴대폰 중독인지 자가 테스트를 해보기로 했다. 앞으로 일주일간 소소와 있을 때 최대한 휴대폰을 자제하고 실패할 경우 정말 중독이 맞으니 2G 폰으로 바꾸겠다고 남편에게 선언했다. 휴대폰을 아예 ‘안 한다’는 불가능하고 ‘덜 한다’ 도 기준이 모호하기에 구체적인 실천 계획도 세웠다. 포털 사이트 연예 기사 탭 클릭하지 않기, 소소와 있을 땐 휴대폰을 책장 높은 칸에 치워두기.


  결과는 상상 이상이었다. 단순히 포털 연예 기사 탭을 클릭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휴대폰에 대한 열망이 50% 이상 사라져 버렸다. 휴대폰을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치워둘 필요조차 없었다. 연예 기사를 보지 않으니 휴대폰을 보는 재미가 없어졌다. 내가 그동안 얼마나 자극적인 기사의 노예였는지 알 수 있었다. 휴대폰을 줄여 세이브된 시간을 100% 아이와 함께 쓴 것은 아니지만 유의미한 정도의 정신적·시간적 여유를 획득했다. 이때로부터 거의 1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연예 탭을 클릭하고픈 유혹을 느끼지만 그 치명적인 매력을 알기에 참는다. 덕분에 나의 스마트폰과 손모가지는 안전하게 보전되고 있다.


  요즘 내가 남편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혹시 내 전화기 못 봤어? 어디다 뒀는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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