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의 원유가 흐르는 급소, '레드라인'을 넘어서려는 중동의 도박
지도의 점 하나에 불과해 보이는 페르시아만의 작은 섬, 하르그(Kharg)가 중동 정세의 화약고로 떠올랐다. 이란 경제의 90%가 이곳을 통과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국제사회가 왜 이 작은 땅덩어리에 주목하는지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하르그 섬은 단순한 섬이 아닌 이란의 생존이 걸린 '경제적 급소'다.
이란이 해외로 수출하는 원유의 거의 전부가 하르그 섬을 거쳐 나간다. 이곳에는 하루 최대 700만 배럴의 원유를 실어 나를 수 있는 거대 터미널이 구축되어 있다. 섬 남쪽을 가득 채운 대형 저장 탱크와 본토 유전에서 뻗어 나온 해저 파이프라인은 이란 경제를 지탱하는 거대한 혈류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의 종착역이자 출발점이 바로 하르그 섬이다.
지형적 요인도 이 섬의 독보적인 가치를 만든다. 이란 해안선은 대부분 수심이 얕아 수십만 톤급 초대형 유조선(VLCC)이 접근하기 까다롭다. 하르그 섬 주변은 비교적 수심이 깊어 대형 선박이 안전하게 접안할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을 갖췄다. 이란이 수십 년간 모든 에너지 인프라를 이곳에 집중시킨 배경이다.
최근 미국과 이스라엘 내부에서는 하르그 섬을 직접 겨냥한 군사 작전 시나리오가 공공연히 거론된다. 이는 이란 정부의 자금줄을 완전히 끊어버리겠다는 '경제적 참수' 전략에 가깝다. 석유 수출이 차단되는 순간 이란의 외화 수입은 고갈되며 환율 폭등과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 정권의 유지 기반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공포가 이 시나리오의 핵심이다.
일부 전략가들은 하르그 섬 장악이 전면전보다 비용 대비 효과가 크다고 분석한다. 핵심 기반 시설만 정밀 타격하거나 통제함으로써 전면적인 지상전 없이도 이란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거나 내부 붕괴를 유도할 수 있다는 논리다.
하르그 섬은 강력한 압박 수단임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넘어서는 안 될 금기선으로 취급받았다. 이곳의 기능이 정지되는 순간 발생하는 파동은 이란이라는 국경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세계 주요 산유국인 이란의 공급망이 끊기면 국제 유가는 즉각적인 반응을 보인다. 고유가가 촉발하는 인플레이션 공포는 다시 한번 세계 경제의 목을 조를 가능성이 크다.
궁지에 몰린 이란이 선택할 극단적인 카드는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다. 전 세계 원유 물동량의 20%가 지나는 이 좁은 수로가 막히면 에너지 시장을 넘어 글로벌 공급망 전체가 마비 상태에 빠진다. 이란의 보복 화살이 사우디아라비아나 아랍에미리트의 석유 인프라로 향하는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다. 에너지 시설을 겨냥한 연쇄적인 공격은 중동 전체를 통제 불능의 불길 속으로 밀어 넣는다.
현재 미국이 하르그 섬 공격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행위 자체는 고도의 심리전이다. 핵심 인프라를 겨냥할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만으로도 이란에 상당한 압박을 줄 수 있다. 그럼에도 중동의 분쟁은 늘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폭발하곤 한다. 우발적인 충돌이 도화선이 되어 수십 년간 지켜온 금기가 깨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하르그 섬은 이제 단순한 석유 수출 기지를 넘어 중동 안보와 세계 경제의 운명을 결정짓는 '전략적 저울'이 되었다. 이 작은 섬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이란의 몰락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지, 전 세계적인 경제 대공황의 서막이 될지 국제사회는 숨을 죽이고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