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도시관을 통해 본 안락함과 경계의 본질
로마의 명사들은 철저한 도시 예찬론자였다. 그들은 무더운 여름철에만 잠시 시골 영지에 머물렀을 뿐 삶의 모든 중심을 도시에 두었다. 로마인들에게 자연은 있는 그대로 즐기는 대상이 아니었다. 인간의 손길이 닿아 이용하기 편리하게 가공되었을 때만 자연은 비로소 가치를 지녔다. 맹수가 우글거리는 야생의 깊은 숲에 들어가는 행위는 오직 사냥을 통해 자신의 용맹함과 덕망을 증명하려는 과시욕의 산물이었다.
로마인이 사랑한 자연은 공원이나 정원처럼 철저히 ‘인간화된’ 형태였다. 그들은 곶의 끝머리에 작은 성당을 짓거나 언덕 위에 인공 구조물을 세워야만 비로소 경치가 완성된다고 믿었다. 황량한 자연의 잠재력을 인간의 기술로 끌어올리는 것이 그들의 미학이었다. 로마인에게 도시는 단순한 주거지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거리보다 공중목욕탕, 극장, 광장, 수도 시설 같은 공공 편의 시설이 늘어선 풍경이야말로 도시의 본질이었다.
진정한 자아는 오직 도시 안에서만 찾을 수 있었다. 시골에서는 느낄 수 없는 정서적 안락함은 도시를 감싸는 육중한 성벽에서 나왔다. 로마인들에게 성벽은 적을 막는 방어 시설을 넘어 도시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집’으로 느껴지게 만드는 장식품이었다. 성벽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사람들은 마치 자신의 방안에 앉아 있는 듯한 사적인 편안함을 경험했다.
성벽은 로마인의 심리를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선이었다. 해가 지면 성문은 굳게 닫혔고 밤늦게 도시를 드나드는 자는 모두 의심의 대상이 되었다. 나쁜 마음을 품은 자는 감시가 삼엄한 성문 대신 보초의 눈을 피해 바구니를 타고 성벽을 넘어야 했다. 이처럼 굳건한 울타리는 로마인들에게 외부와 단절된 완벽한 안전지대를 제공했다.
로마인들이 성벽 안에서 느꼈던 안락함은 오늘날 우리가 집 대문을 잠그며 느끼는 심리적 안정과 맥을 같이 한다. 현대의 도시는 성벽을 허물고 경계를 지웠으나 정작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자신만의 성벽을 쌓는 데 몰두한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오는 피로감을 피하기 위해 익명성 뒤로 숨거나 디지털 공간 속에 사적인 요새를 구축한다.
물리적인 성벽이 사라진 시대에 우리는 과연 로마인만큼의 편안함을 누리고 있는지 자문하게 된다. 로마인들에게 도시는 공동의 거대한 집이었으나 현대인에게 도시는 종종 고립된 개개인이 머무는 차가운 공간으로 전락한다. 진정한 의미의 도시란 화려한 시설을 넘어 구성원 모두가 한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고 있다는 정서적 유대감이 존재할 때 완성된다. 성벽이 사라진 자리를 무엇으로 채워야 공동체라는 안락함을 회복할 수 있을지 로마의 도시 철학은 우리에게 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