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피로를 지우고 영혼을 채우는 밤의 인문학
낮 동안 로마를 지탱하던 공적인 의무가 사라지면 제국의 밤은 연회와 함께 시작되었다. 성벽이 로마인의 안전을 보장하는 증표였다면 연회는 그들만의 예절과 성취를 확인하는 신성한 예식이었다. 황제조차 밤이 되면 팔라틴 언덕의 궁전에서 원로원 의원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고단한 공무를 잊었다. 연회는 단순한 식사 자리가 아니었다. 낮 시간 동안 '직업'과 '신분'이라는 옷을 입고 살았던 이들이 비로소 오롯한 '개인'으로 돌아가는 시간이었다.
로마인의 식탁에서 가장 중요한 도구는 의자가 아닌 침상이었다. 일상적인 식사 시간에는 식탁에 앉아 음식을 먹었으나 연회만큼은 반드시 침상에 비스듬히 누워 즐겨야 했다. 가난한 이들조차 잔치를 벌일 때면 침상을 갖추려 애썼다. 상석에 대한 규칙은 엄격했다. 주인은 계층이 다른 피보호자와 친구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아 정해진 서열에 따라 자리를 배정했다. 누워서 먹는 행위는 곧 노동에서 해방된 자유인임을 증명하는 시각적 장치였다.
로마의 요리는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동양과 중세의 특징이 기묘하게 섞인 모습이었다. 고기는 피가 보이지 않도록 푹 삶아낸 뒤 양념을 아끼지 않은 소스를 듬뿍 얹어 내놓았다. 그들이 특히 사랑한 맛은 새콤달콤한 풍미였다. 포도주에는 물을 타서 마시는 것이 상식이었고 때로는 나무진을 넣어 독특한 향을 더했다.
식사의 정점은 '코미사티오(comissatio)'라 불리는 후반부 술자리였다. 식사 전반부에는 음식만 먹고 후반부에는 술만 마시는 이 독특한 관습은 연회를 하나의 작은 축제로 만들었다. 참가자들은 머리에 꽃을 얹거나 월계관을 쓰고 몸에는 향유를 발라 화려함을 뽐냈다. 기름기가 흐르는 고기와 향기로운 기름 냄새가 진동하는 연회장은 로마적 풍요의 절정이었다.
연회는 지적 허영과 사교가 교차하는 문학 살롱이기도 했다. 주인은 집안에 거느린 철학자나 가정교사에게 철학적인 화제를 던지게 했다. 음악가와 무용수를 고용해 흥을 돋우는 한편 손님들은 자신의 삶을 요약해 들려주며 동료들에게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했다. 이러한 문화적 욕구는 '향연'이라는 독특한 문학 장르를 탄생시켰다. 포도주 한 잔을 앞에 두고 사색의 나래를 펼치는 행위는 평민들의 거친 축제와 귀족의 우아한 연회를 가르는 결정적인 기준이었다. 그들에게 마시는 행위는 곧 우정과 문화를 나누는 고귀한 의식이었다.
로마인들에게 연회는 '기능'으로 존재하던 인간이 '존재'로 회복되는 의식이었다. 낮 동안 누군가의 부하, 혹은 국가의 부속품으로 살았던 이들은 밤의 식탁에서 비로소 자신의 이름을 찾았다.
오늘날 우리는 로마인보다 훨씬 풍요로운 식탁을 마주한다. 정작 식사 시간에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업무의 연장선을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된다. 로마인들이 누워서 밥을 먹으며 강제로라도 노동과 거리를 두려 했던 태도는 현대인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진정한 휴식이란 단순히 배를 채우는 행위가 아니다. 공적인 자아를 잠시 내려놓고 고상한 대화와 사색으로 영혼을 채우는 시간의 확보다. 우리만의 '침상'을 마련하고 온전히 개인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밤의 시간이 확보될 때 삶의 품격은 비로소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