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지식인들은 왜 신전에 갔을까

이성은 신을 부정했으나 삶은 섭리를 필요로 했던 시간

by 상식살이

신화를 조롱하면서도 섭리를 부정하지 못한 엘리트의 이중성


로마의 민중은 독실했다. 그들은 끊임없이 기도하고 신의 응답을 기다렸다. 키케로나 호라티우스 같은 교양인들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지식인들은 조상 대대로 믿어온 신들이 그저 환영에 불과하다고 여겼다. 그들은 자신들보다 수 세기 앞서 신을 부정했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을 읽으며 지적인 세계를 구축했다.


신의 장기와 위장을 비웃다


박학다식했던 플리니우스는 신이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다는 발상을 끊임없이 조롱했다. 조각가들이나 순진한 신자들의 말이 맞다면 공기 같은 존재인 신의 몸 안에도 위장이나 생식기가 있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지식인들은 여신 라토나의 신전에서 예쁜 딸을 갖게 해달라고 비는 여인들을 보며 조용한 미소를 지었다. 그들에게 신전의 조각상은 그저 돌덩이일 뿐이었다.


그들에게 중요한 핵심은 신의 이름이 아니었다. 이 혼란스러운 세상이 '섭리'에 의해 움직이는지, '운명'에 묶여 있는지, 아니면 그저 '우연'의 연속인지가 더 큰 고민거리였다. 스토아학파처럼 우주의 섭리를 믿어야 할지, 아니면 모든 종류의 섭리를 부인하는 불경한 사람처럼 세상이 우연뿐이라고 믿어야 할지 논쟁했다.


회의주의자가 감사를 드리는 방식


지식인들은 옛 종교를 문자 그대로 믿지 않았으나 그것을 완전히 버리지도 못했다. 다신교적 신화 안에 진리의 핵심이 들어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폴론이나 베누스라는 이름을 추상적인 원리나 신의 덕성을 일컫는 일종의 상징으로 보았다. 신화는 진실을 말해주는 원시적인 언어였다.


회의주의자로 유명했던 호라티우스조차 쓰러지는 나무에 깔려 죽을 뻔했다가 살아나자 만신전의 신들에게 감사를 올렸다. 신이 자신을 보호했다고 믿어서가 아니었다. 세상의 우발적인 사건들 속에 작동하는 '섭리'를 표현할 전통적인 방식 말고는 다른 방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식인들은 민중의 종교 의례를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면서도 그 속에 담긴 지질한 진실만큼은 존중했다.


법과 도덕의 수호자로서의 종교


로마의 지배 계급에게 종교는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도구이기도 했다. 원로원 의원들은 스스로가 공식 종교의 수호자이자 사제였다. 그들은 개인적으로 신의 존재를 믿지 않았을지언정 공식적인 종교 의례를 수행하는 데 소홀하지 않았다. 종교가 민중의 도덕심을 다스리고 국가의 기강을 잡는 데 필수적임을 알고 있었다. 그들에게 종교는 신앙의 대상이기보다 체제 유지를 위한 정교한 시스템이었다.


합리와 신비 사이의 균형


로마 지식인들이 겪었던 갈등은 현대인의 모습과 닮아 있다. 과학과 이성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더 이상 번개를 신의 분노라 믿지 않는다. 정작 인생의 거대한 불운 앞에 서거나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행운을 맞이할 때 우리는 여전히 '운명'이나 '운'을 거론한다.


이성이 모든 답을 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인간은 겸손해진다. 로마 엘리트들이 신화를 조롱하면서도 섭리의 존재를 고민했던 것처럼 우리 역시 합리적인 사고를 유지하면서도 삶의 신비로운 영역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종교적 형식을 떠나 나보다 거대한 질서가 존재할 수 있다는 믿음은 오만한 자아를 경계하고 타인에 대한 너그러움을 갖게 한다. 로마인이 성취했던 지적 신중함은 모든 것을 데이터로 환산하려는 현대 사회에 진정한 '교양'이 무엇인지 다시금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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