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봉쇄 위기와 대체 수송망을 둘러싼 거대한 도박
전 세계 원유 흐름의 20%가 폭 33km에 불과한 좁은 해협에 묶여 있다. 이 가느다란 바닷길이 막히는 순간 지구 반대편의 주유소 가격이 요동치고 글로벌 공급망은 마비 상태에 빠진다. 최근 이란을 둘러싼 군사적 충돌이 격화되면서 호르무즈 해협은 다시 한번 세계 경제의 가장 위험한 급소로 부각되고 있다.
에너지 공급망이 특정 통로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이 전 세계에 각인된 것은 1980년 이란·이라크 전쟁 때였다. 당시 양국은 상대의 경제적 기반인 석유 수출을 차단하기 위해 유조선을 직접 공격하는 '유조선 전쟁'을 벌였다. 이란이 해협에 기뢰를 설치하며 통행권을 무기화하자 국제 유가는 유례없는 변동성을 보였다.
좁은 입구에 가로막힌 페르시아만은 지리적으로 완벽한 폐쇄 구조를 띤다.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이라크, 아랍에미리트 등 주요 산유국의 원유가 반드시 거쳐야 하는 이 길목은 전략적 압박 수단으로서 대체 불가능한 가치를 지닌다. 현재 벌어지는 지정학적 긴장 역시 40여 년 전의 공포를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려는 시도는 인프라 건설로 이어졌다. 아랍에미리트는 아부다비 하브샨 유전에서 오만만 연안 푸자이라 항까지 370km를 잇는 송유관을 가동 중이다. 호르무즈 해협을 거치지 않고 인도양으로 원유를 즉시 내보낼 수 있는 실질적인 우회로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대응은 한층 거대하다. 동부 유전지대에서 홍해 연안 얀부 항까지 1,200km를 가로지르는 동서 송유관(East-West Pipeline)을 통해 페르시아만 봉쇄라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한다. 서방 국가로 향하는 원유 수송의 안전판을 홍해 노선에 마련해 둔 셈이다. 오만 역시 무산담 반도 일대에 운하를 건설하거나 송유관을 확충하는 구상을 이어가며 해협의 병목 현상을 해소하고 추가 우회로를 확보하는 데 힘을 쏟는다.
전략적 우회로가 존재함에도 호르무즈 해협이 여전히 건재한 이유는 경제성이다. 송유관은 원유를 밀어내기 위한 압력 유지와 대규모 전력 소비, 막대한 유지보수 비용이 수반된다. 평시 수송 효율 면에서는 거대한 유조선을 이용한 해상 운송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송유관은 상시 운송 수단이라기보다 위기 대응을 위한 '비싼 보험'에 가깝다.
단일 경로 의존의 위험성은 2021년 수에즈 운하 좌초 사고에서 명확히 드러났다. 초대형 컨테이너선 한 척이 운하를 가로막자 일주일 동안 동서양을 잇는 물류가 멈춰 섰다. 해협이나 운하 같은 지리적 요충지는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통로인 동시에 시스템 전체를 무너뜨릴 수 있는 '단일 장애점(Single Point of Failure)'이기도 하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에 호르무즈의 긴장은 단순한 뉴스가 아닌 생존의 문제다. 해협에서의 작은 충돌이 원유 가격 급등과 공급 중단으로 이어지는 구조적 취약성은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고질적인 리스크다. 인류는 운하를 뚫고 송유관을 연결하며 지리적 제약을 극복하려 노력해 왔으나 특정 거점에 대한 의존을 완전히 지워내지는 못했다.
향후 에너지 시장의 판도는 효율 중심의 수송 체계에서 안정성을 담보하는 다각화 체제로 빠르게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위기는 우리에게 묻는다. 단 하나의 길에 모든 것을 걸어온 시스템이 과연 지속 가능한가. 새로운 우회 경로와 에너지원 확보를 향한 국가 간의 소리 없는 전쟁은 지금 이 순간에도 해협의 파도 위에서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