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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워실의바보 Nov 22. 2023

이백이 뭐길래

세상이 ‘무직‘ 이라 부르는 사람들

근로계약서 미작성, 최저시급 미지급, 근무시간 매일 다름, 하루에 열 몇시간을 움직여야 하고 근골격계에 매우 무리가 가는 육체노동, 한 달 만근해도 백만원 초중반, 만근은 사실상 불가능하니 받는 돈은 이보다 더 줄어듦, 4~5년 일한 사람 많음, 주로 일하는 연령층은 50대 여성 또는 중국인들.


#1 50대 한국인 여성 노동자



50대 여성인 그는 3년제 전문대 간호학과를 졸업 했다. 졸업 후 준종합병원에 산부인과 간호사로 취업해 7년 동안 일하다가 서른즈음 결혼을 하면서 그만뒀다. 간호사들은 3년 정도 일하면 많이 그만둔다고 그는 말했다. 전공을 잘못 선택했다고, 당시 안동대 수학교육과가 미달이었는데 거기를 갈 걸 그랬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는 퇴사 후 부동산, 문구점 등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현재 일자리에서는 4년 정도 일했다. 아르바이트 생활을 하면서 급여의 앞자리에 2가 있었던 적이 없었다. 백만원대 이거나, 백만원도 안 되거나. 백만원 초중반의 급여에도 생활할 수 있는 이유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남편 있잖아. 이 일을 직업으로는 당연히 못하지“ 남편은 뭐하냐고, 돈 많이 버냐고 물으니 아파트에서 전기 관련 일을 한다고 했다.


그는 나의 급여를 물었다. 사실 내 친구들 중에서 내가 가장 적게 벌어서, 쪽팔려서, 조금 망설이다가 “세금 다 떼고 237만원이요” 라고 대답했다. 그는 “왜 이렇게 많이 받아요? 중소기업 경리도 160만원인가 받는데. 무슨 일 해요? 대학 나온 거에요?” 라며 놀라워했다.


그는 직장인을 부러워했다. 대출이 잘 되기 때문이다. 그는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지만, 세상은 그를 ’무직‘ 이라고 부른다. 제1금융권은 그가 입금하는 돈을가지고 이자놀이를 하면서도, 그에게 돈을 빌려주지는 않는다. 그는 최근 남편 몰래 저축은행에서 500만원을 빌렸다. 그 이상으로 빌려주지 않는다고 했다. “삶에 어둠이 있어서” 돈을 왜 빌렸는지는 구체적으로 말해주지 않았지만, 이율이 무려 18%고, 한 달에 약 8만원씩 나간다고 했다. 그녀가 하루 종일 일해서 버는 돈 보다 많은 돈이 이자로 나가는 것이다.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가장 비싼 이자를 치른다.


그는 “월급 이백은 받는 사람들” 이라는 말을 습관처럼 사용했다. 나는 멍하게 창문 밖을 보면서 생각했다. ‘이백이 뭐길래’ 내 월급에서 서울 월세 내고 빚 갚고 밥 먹으면 남는 것도 없는데, 그 돈이 뭐길래.  월급이 누군가에게 선망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한참 생각했다.


 월급으로 혼자 살기 힘들다. 최저임금이라면 도저히 살 수 없다. 그 밑으로는 그냥 죽으라는 거다. 그런데 그런 일자리가 생각보다 꽤 있다. 그리고 그런 일자리가 간절한, 그런 일자리에서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2 40대 중국인 여성 노동자


그녀는 중국에서 자랐다. 한국어강사의 소개로 한국인남편을 만났다. 2016년에 남편과 결혼해서 한국에 왔다. 그녀는 중국을 그리워한다. 한국에는, 특히 지방에는 놀 것도 없고 먹을 것도 없다고. 그녀는 7살 아들을 키우고 있는데, 유치원과 태권도 학원을 보내고 있다.


아르바이트를 한 지는 5년 정도 됐다. 그녀는 한 달 만근하면 130만원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놀랐지만, 놀란 티를 내지 않았다. 이 돈 받고 생활이 되냐고 물었다. 그는 하루종일 일하면 ‘6만원이나’ 받을 수 있다며 좋아했다. 하루종일 일하면 6만원을 받아서는 안 된다. 한국어가 서툰 그는 최저임금이니 근로기준법이니 알지 못할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걸 잘 알아도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지방에 사는 그녀는 주변에 중국인 친구가 없다. 현실적으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곳은 일터다. 일터에가면, 기쎄고 말 많은 50대 언니들이 재밌게 놀아준다. 그녀의 일터에는 중국인 남성이 두 명이 있다. 그녀와 중국인 남성은 고향 언어로 오랫동안 대화를 나눴다. 내가 알아 들을 수 없는 말들이지만, 미소를 띤 그들의 얼굴이 편안해보였다.


#3 60대 한국인 남성 노동자

나이 먹고 할 게 없어서 아르바이트를 한단다. 예전에 사업해서 모은 돈과 자식들이 준 돈으로 생활하고, 아르바이트로 번 돈은 다 저축한다. 4년 동안 일해서 4천만원을 모았다고. 자식들은 다 대기업 다니고, 사위는 ‘이사’라고 자랑까지 했다. 모든 돈을 저축할 수 있다니, 성공한 무직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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