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불합격에 흔들리던 때, 재단 계약직을 선택하다

계약직 주임으로 느꼈던 책임감과 고민들

by Chatoyant

근로복지공단에서의 계약직 근무가 종료된 직후인 2019년 상반기부터 본격적으로 공공기관 정규직을 도전했다. 무경력으로 준비했을 때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공공기관 공채 서류전형에서의 합격률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그 시기에 난 꽤 행복했다. 비록 필기전형에서는 아쉽게도 모두 탈락했지만, 조금 더 준비하면 바로 합격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생겼고, 스터디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과 공공기관 취업준비를 함께 하며 도움을 주고받을수록, 최종합격의 꿈을 곧 이룰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이후에도 필기전형에서 계속 탈락하면서 2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것이다. 그동안 같이 스터디했던 사람들은 하나둘씩 공공기관 공채에 합격하였고, 나에게도 얼른 합격하길 바란다고 응원을 해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년 동안 필기에서 한 번도 합격 못 했다는 사실은 절망적이었다. 객관적으로 생각할수록 더 도전하는 것은 미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렇게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2021년, 29살이 되면서 나는 나이에 대한 압박감이 있었지만, 결국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도전할 결심을 했는데, 1월에 서울관광재단 기간제 근로자 채용 공고를 보게 되었다. 12월 말까지 근무할 수 있었고, 여행을 좋아해서 학부시절 관련 대외활동 경험도 있었기에 호기심이 생겼다. 게다가 공단에서의 경력도 활용할 수 있는 직무였기에 계약직임에도 지원을 했다.

감사하게도 서류 전형에서 합격하게 되었지만 면접에서 떨어졌고, 그렇게 인연은 끝난 줄 알았다. 마침 다른 기관에서 단기간 근무를 하게 돼서 잊고 있었다. 그런데 약 한 달 뒤, 뜻밖에도 근무 제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 기존에 합격한 사람이 개인사정으로 퇴사하게 되면서 나에게 연락이 온 것이다. 안정과 불안 사이에서, 나는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경험’을 선택하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2021년 3월, 재단 계약직으로 이직했다.

서울관광재단에서의 근무는 생각보다 빠르게 일상에 스며들었다. 정규직과 계약직 구분 없이 프로젝트 단위로 협업했고, 매주 팀 회의를 통해 각자의 역할을 공유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재택근무와 화상회의가 반복되었지만, 화면 너머에서도 모두 같은 목표를 향해 일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맡았던 일은 코로나19로 큰 타격을 받은 관광업계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지원하는 신규 사업들이었다. 수많은 신청서를 검토하고, 문의 전화를 응대하고, 평가위원회와 컨설팅을 준비했다. 행정 업무는 결코 화려하지 않았지만, 누군가의 생존과 회복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된다는 사실이 나를 버티게 했다. 혼자가 아닌 팀으로 일하며, 책임감이 무엇인지 다시 배우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마음 한 편의 불안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계약직이라는 한계, 그리고 ‘이 일이 과연 나의 길인가’라는 질문이 계속 나를 흔들었다. 마침 다시 공공기관 신입 채용이 시작되었고, 서류 전형에 합격했다는 소식은 또 다른 갈등을 안겨주었다. 현재의 업무를 끝까지 책임지고 싶은 마음과, 다시 정규직에 도전해야 한다는 조급함 사이에서 나는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결국 필기시험에서는 탈락했고, 그 결과는 한동안 나를 더 깊은 생각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관광재단에서의 시간은 분명 의미 있었다. 복지와 사내 프로그램을 통해 처음으로 ‘일하는 나 자신’을 돌보는 법을 배웠고, 계약 기간 동안 모은 천만 원은 이후의 선택을 위한 작은 안전망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그곳에서 나를 더 잘 알게 되었다. 여행을 좋아하는 마음과 관광 분야에서 일하는 현실은 다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은 단순한 분야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삶’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돌아보면, 스물아홉의 나는 불안했고 많이 흔들렸다. 누군가에게 자기소개를 해야 하는 순간마다 늘 한 단어 앞에서 멈칫했다. “계약직입니다.” 이 말은 직무보다 먼저 나를 설명했고, 처음에는 그 단어를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 했다. 경력을 쌓기 위한 과정일 뿐이라고, 모두가 거쳐 가는 단계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던 것 같다. 하지만 정규직 도전에 실패한 사람의 변명인 것 같아서 속상한 마음은 감출 수 없었다.

시간이 좀 더 지나고 나서야, 계약직이라는 말을 설명으로만 두지 못 하고 평가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임을 깨달았다. 왜 그 단어 하나로 내 가능성까지 함께 줄여버렸을까. 나는 언제부터 직업의 형태로 나의 가치를 판단하게 되었을까. 생각이 달라지면서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고, 이후의 선택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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