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직장에서 배운 것들, 버틴다는 의미
대학을 졸업하고 준비했던 공무원 시험에서 떨어진 뒤, 잠시 멈춰서 어디로 가야 할지 다음 걸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되돌아갈 곳이 없다는 사실과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채 보내는 시간이 점점 불안했다. 어느새 친구들은 하나둘 각자의 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대학원을 마쳤다는 이야기, 어느 회사에 입사했다는 소식이 자연스럽게 오갔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준비 중”이라는 말에 머물러 있었다. 이력서를 열어보면 나를 설명할 문장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부족하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올랐고, 스스로를 조금씩 의심하게 되면서 자존감은 소리 없이 낮아지고 있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일보다 버틸 수 있는 자리를 먼저 떠올렸다. 꿈이나 적성보다 정년이라는 단어가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불확실한 가능성보다는 예측 가능한 시간을 원했다. 공기업을 준비하기로 한 것도 그 연장선에 있었다. 조심스럽고 소극적인 선택으로 보였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때의 나에게는 가장 솔직한 마음이었다.
그렇게 봄에 시작한 준비는 여름을 지나 가을 끝자락이 되었다. 그 무렵 우연히 근로복지공단에서 대규모 계약직을 채용한다는 공고를 보게 되었다. 1년이라는 계약기간, 신규 사업이라는 조건, 분명한 시작과 끝이 있기에 완벽한 자리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경력이 없던 나에게는 제대로 된 경력을 쌓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심스럽게 지원서를 써서 제출했는데 처음으로 서류를 통과하고 면접을 보았다. 이때만큼 떨린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결과 발표일이 너무 멀게 느껴졌다. 마음은 싱숭생숭했다. 합격할 거라고 생각하면 기쁘지만 떨어질 거라고 생각하면 아쉬움이 너무 클 것 같았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기다리던 어느 날, 합격했다는 소식을 받았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드디어 시작할 수 있다는 안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은 아니라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증명한 것 같은 조용한 안심, 계약직이라는 조건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첫 합격이라는 사실은 그동안 어두웠던 긴 터널을 지나서 마주한 따뜻한 햇살 같았다.
그렇게 2018년, 나는 근로복지공단에서 계약직으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모든 것이 낯설었고, 스스로를 증명해야 한다는 부담이 컸다. 그래도 그곳에서의 1년은 이후 나의 커리어를 지탱해 주는 가장 단단한 뿌리가 되었다.
근무하며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점은 자유로운 휴가 사용이었다. 한 달을 채우면 하나씩 생성되던 월차는 월차, 반차, 반반차로 나누어 사용할 수 있었다. 필요할 때 잠시 숨을 고를 수 있었고, 월차를 모아 짧지 않은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사회초년생이던 나에게 그 시간들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다시 일상을 버틸 수 있게 해주는 회복의 시간이었다.
반면 가장 힘들었던 기억은 악성 민원이다. 항의 전화를 한 시간 넘게 이어가시는 분들도 있었고, 해결책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감정을 쏟아내는 목소리를 그대로 받아내야 할 때도 있었다. 매일 그런 민원이 반복된 것은 아니었지만, 한 번 발생하면 마음의 에너지가 크게 소모되었다. 퇴근 후에도 그 목소리가 쉽게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고, ‘내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도 많았다.
업무 강도는 생각보다 높았다. 반복되는 행정 업무와 민원 대응 속에서 중간에 퇴사를 고민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스스로에게 되묻곤 했다. ‘지금 그만두면, 나는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무경력으로 입사한 나에게 1년의 경력은 단순한 시간이 아니라, 사회인으로서 나를 증명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준이었다. 그래서 버텼다. 일이 힘들어도, 마음이 흔들려도 하루하루를 쌓아갔다. 그렇게 1년을 채우고 퇴직금을 받았을 때, 비로소 나는 나 자신에게 작은 신뢰를 느꼈다. 끝까지 해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스스로를 조금은 인정해 줄 수 있었다.
2026년이 된 지금, 그 시절을 돌아보면 첫 직장이란 커리어의 출발점이자 성장통의 시작이었다고 생각한다. 많이 서툴렀고 자주 흔들렸지만, 그만큼 배우고 깨닫는 시간이기도 했다. 어떤 선택의 순간이 와도 쉽게 포기하지 않고 이후의 방향을 정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