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사는 남자
본론에 앞서..
혹자의 말마따나, 사실 어떤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고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보다 어떤 것에 대한 비판을 하는 것이 훨씬 쉽다. 요즘 같은 익명성 인터넷 시대에 방구석 여포, 방구석 좆문가, 키보드 워리어, 수많은 악플러들이 판을 치는 이유일 것이다. 평론가나 비평가같이 어떤 작품이나 예술에 대한 2차 창작을 하는 이들 역시 나쁘게 말하면 어디까지나 비판하며 평가질하는 이에 불구하고, 좋게 말하면 그것을 꽤나 전문적인 수준으로 고급지게 끌어올린 이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굳이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필자가 꾸준히 한국영화에 대해 까내리는 발언들은 서슴지 않았지만, 스스로 알고 있다는 것이다. 나 역시 결국엔 작품을 만들 노력은 안 하면서 방구석에서 평가질이나 해대는 이에 불구하다 것을. 그럼에도 이런 글들을 써 내려가는 이유는 내 안에 영화에 대한 사랑이 있기 때문이며, 동시에 답답함과 분노를 배설하기 위함에 있고, 최종적으로는 내 글을 읽고 반응해 주는 누군가가 있기 때문이다. 즉 결국 내 욕구를 충족시키자 글을 쓰는 것이지만, 그 바탕에는 한국인으로서 이 땅의 영화산업과 영화에 대한 애정의 마음이 깔려있다는 것이다.
개인적인 견해
최근 [왕과 사는 남자]가 [극한직업]을 제치며 한국 천만 흥행 영화 역대 2위에 자리했다(옆나라 일본에서는 [국보]라는 탄탄한 작품이 실사영화 역대 2위를 차지한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왕과 사는 남자(*이하 왕사남)]가 천만 흥행 역대 2위를 기록했다는 사실이 개탄스러웠다). 이로서 한국 천만 흥행 영화 TOP 5가 모두 한국 영화가 된 것인데, 당연하지만 다섯 영화 모두 작품성 있는 영화들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천만흥행은 작품성과는 전혀 관계없으며 스크린 독점, 인기배우 및 영향력 있는 감독, 신파적이고 유치하더라도 한국인들이 얼을 건드리는 요소가 몇 개쯤 들어가 있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시기와 운수를 잘 타야 하겠지만, AI의 발전속도를 생각해 볼때 AI가 한국에서 흥행할 만한 천만 영화를 뚝딱 만들어낼 미래도 멀지 않았다 고 생각한다. 결국 혹자의 말처럼 대중문화라는 것은 그 문화의 고결함 따위가 아닌, 그것에 대해 주변 사람들과 얼마큼 떠들어댈 수 있는가로 정해지기 때문이다.
최근에 들어서 나는 원빈이 왜 영화를 찍지 않는지에 대해 십분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원빈은 작품을 고르는 기준이 까다로운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배우 개인으로서의 이유와 호불호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그는 작품성이 뛰어난 휴머니즘적인 시나리오를 찾고 선호하는 배우다. 일례로 그는 이창동 감독 작품의 출연을 논의하기도 하였고, [스틸라이프]라는 영화의 리메이크에 큰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아저씨] 이후로 그가 선택하고 싶을 만큼 흡족한 시나리오들이 (특히 한국에)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마땅히 인정할 만한 사실이다.
코로나 사태, 경제불황, OTT시장확산 등 한국영화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 이유야 대려면 수없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핵심은 영화라는 대중문화이자 영상예술에 대한 핵심 요소가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소문난 식당이 대중적인 확산과 돈벌이를 위해 손맛과 질보다 뛰어난 MSG와 비주얼에 집착하게 된 이유는, 이 음식의 맛과 질에 집중하기보다 자극과 비주얼을 SNS에 올리는 것에 더욱 집착하기 시작한 손님들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들이(관객들이) 영화의 작품성과 스크린의 가치보다, 자극적 요소와 화려한 볼거리 따위에 시선을 빼앗겨 한국영화의 수준을 스스로 낮추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쯤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