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0.13)
나의 고향, 어딘가 이상하고 천진한 동네.
전통시장 옆으로 깨끗한 광장이 들어섰고
그 광장에는 베지밀 두유를 안주 삼아 막걸리 한 잔 들이키는
중년 인부 한 사람과
그 옆으로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년과 낡은 오토바이가 보인다.
또 그 옆에는 아장아장 걸어다니는 아이와
유모차를 끌고 아이를 바라보는 어머니가 있고
시장 바구니를 담은 유모차를 지팡이 삼아
허리를 굽히고 걸어가는 할머니도 있다.
사방에 생선비린내는 진동하는데
청년몰이라는 이름으로 아기자기한 카페가 이질적으로 자리해있다.
나는 그 카페에 앉아
사형수를 소재로 한 영화콘텐츠 시나리오를 쓰고 있고
아버지는 재활병원에 약을 타러 가셨다.
열이 많이 난다던 동생에겐 안부 전화할 생각도 없이
내 희곡은 들여다보지 못하고
돈 번다는 핑계로 프리랜서 작가로서의 원고를 한 자 한 자 써내려가다
문득 담배를 피다보니 한꺼번에 시야에 들이닥치는
이상하고도 천진한 나의 고향, 나의 동네의 풍경에 꽤나 당황스러웠다.
나는 내가 책임질 수 있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가, 싶어
나는 내가 쓰고 있는 텍스트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가,
그런 막연한 생각에 우울하게 퍼져있는 하늘의 구름들만 반가웠다.
이 근처 바로 옆이 소꿉친구의 집인데
해맑게 그 친구와 이야기 나눠야 할 행복이 부담스러워
홀로 노트북 키보드 자판이나 두드리고 있다.
보고싶은 사람들이 많고 행복해지고 싶은 마음은 부풀고
삶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가는데
이 시간 얼마나 평화로운지,
이 동네만큼이나 이상하고, 천진하고, 낯설기만 하다.
불편한 사람들은 모두 연락을 차단했고
프리랜서로 전향하면서 집 밖에 나가는 일도 드물어졌다.
서울로 오면서 새로운 친구 만들기도 어려워지고
연극을 봐도 예전처럼 마냥 설레던 감정은 희미해졌다.
걷다가 보면 살랑이는 꽃들만 나를 미소짓게 한다.
예쁘고 사랑스럽고 반짝이는 생명들,
말도 없이 그저 살아있는 것만으로 눈길을 사로잡는 생명들,
그런 것들에 요즘은 깊은 축복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