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티고개, 산 4번지>

1. 산 4번지

by 이 필

부산은 평지보다 산이 많아 집들이 산 모양에 따라 지어져 있다. 집들이 산에 있다고 해서 주소에 ‘산 몇 번지’라고 적는데 우리 마을은 ‘산 4번지’라 불렀다. 마을과 마을을 잇는 고개마다 이름이 하나씩 붙어 있는데 우리 마을이 있는 고갯길은 ‘대티고개’라 부른다. 사람들이 어디 사는지? 물으면 마을 이름보다 ‘대티고개에 살아요.’라고 해야 더 잘 알아듣는다. 대티고갯길 양쪽으로 산 능선을 따라 계단식 마을이 있다. 우리 마을은 남쪽을 바라보고 있어, 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 햇빛이 들어 ‘양지마을’이라고도 한다.

마을로 오르는 길은 몇 군데가 있다. 고갯마루 버스정류장 버스에서 내려 몇 발자국 걸으면 가까운 곳에 마을로 오를 수 있는 계단이 있다. 첫 계단을 딛고 오르면 오를수록 계단 폭이 좁아진다. 약 스무 계단 오르면 가파른 골목길이 이어진다. 집들 사이로 가르마를 타고 약 10분쯤 올라가면 또 한 번 좁은 계단을 마주한다. 계단 끝에서 왼쪽으로 꺾어 비스듬한 골목길을 따라 약 5분간 오르면 평지가 보인다. 그 오르막은 ‘깔딱 고개’로 숨이 넘어간다고 해서 지은 이름이다. 평지에 다다를 때까지 마지막 힘을 다한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꼿꼿이 세우고 큰 숨을 고르느라 질끈 감았던 눈을 떴을 때~! 산 아래로 펼쳐지는 풍경이 장관이다. ‘와~! 힘들어도 이 맛에 여기에 산다’라며 위로 아닌 위로를 한다. 산 중턱쯤 우리 집이 있는 골목에 들어서면 평탄한 길이 이어진다. 이때쯤이면 다리에 힘도 풀리고 펌프질 하던 심장 소리도 잠잠해진다.

우리 집이 있는 골목길을 따라 단층인 집들이 나란히 있는데 그중에서 돌아앉은 왼쪽 집 옆 두 번째 집이 우리 집이다. 집집이 나란히 좁은 틈을 두고 다닥다닥 붙어 있다. 비슷하게 생긴 집들이라 어두운 밤이면 자기 집을 못 찾을 수도 있다. 특히 술에 취한 남자들은 남의 집에 문을 두드리기 일쑤다. 방음이 안 되어 그 소리에 주변 몇몇 집은 자신의 집 문을 두드리는 줄 알고 잠에서 깬다.

큰길 가까운 마을 아래쪽에는 대문이 있어 집안이 보이지 않는 집이 몇 채 있다. 우리는 그 집들을 중심으로 놀이를 즐겼다. 누구는 그 집에 귀신이 산다고 하여, 아이들이 그 집을 지날 때, 무서워서 후다닥 “엄마야!”라고 소리 지르며 도망간다. 용감한 아이들은 대문 사이로 안을 들여다보다 엄청 큰 개가 찢는 바람에 놀라 뒤로 나자빠졌다 일어나 ‘걸음아 내 살려라’하고 뛰어 달아났다. 마을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대문이 없다. 집 현관문을 바로 열고 들어오면 부엌으로 이어지거나, 부엌문이 따로 있어 마루로 이어지는 집들이 대부분이다. 우리 집도 그렇다. 대문이 없으니 비밀이 있을 수도 없다. 누구네 집 장롱 속까지 알 정도다.

마을에는 공동우물 두 군데와 공동화장실이 하나 있다. 우물은 장마철에는 물이 차고 넘치지만, 가뭄이 들 때면 양동이가 벽 따라 구불구불 이어져 끝이 안 보일 때도 있다. 공동화장실은 하나라 아침마다 문전성시를 이룬다. 공동화장실이 남녀 구분이 없다. 입구가 앞뒤로 트여 있는데, 복도를 두고 한쪽은 나무문이 달린 네 칸짜리 화장실로 큰일을 보거나 여자들이 사용하였다. 맞은편은 벽 밑으로 물이 흐를 수 있도록 틈을 두고 시멘트로 된 낮은 턱이 일자로 나 있다. 남자들은 그곳에 올라서서 벽을 보고 소변을 눈다. 그러다 보니, 벽에 동양 그림처럼 산수화가 그려져 있다. 남자들이 소변을 누고 있을 때, 부끄럼 타는 여자들은 아무리 급해도 화장실에 못 들어가고 밖에서 온몸을 비틀며 남자들이 빨리 나가기를 기다린다. 너무나 급한 사람은 화장실 옆 하수구에서 얼굴을 푹 숙이고 볼일을 보기도 한다. 얼굴은 가렸지만 보이는 엉덩이는 옷으로 연신 끄집어 내린다. 그때는 정화조 시설도 없었다.

비 오는 날이면, 한 집에서 찌짐 굽는 고소한 냄새가 바람을 타고 온 마을을 뒤덮는다. 그렇게 되면 일이 커진다. 그 집에 사는 아이들은 이웃집에 찌짐 나르느라 바빠진다. 비 오는 날 찌짐에 막걸리가 빠질 수 없지~눈치 빠른 이웃은 자신의 집에서 먹다 남은 막걸리를 들고 온다.

김장하는 날은 또 동네잔치가 벌어진다. 집 집마다 돌아가면서 김장을 돕는다. 오늘 김장하는 집에서는 아침부터 수육을 삶아 흰쌀밥을 지어놓고 김장할 재료를 준비한다. 아주머니들은 김장하면서 애먹이는 남편, 집 나간 자식, 매서운 시집살이 등 고단한 삶의 이야기를 침 튀기며 함께 버무린다. 오전 내 힘겨운 김장이 끝나면 점심때다. 수북이 쌓인 배추가 빨갛게 치장하고 김장독으로 들어간다. 이웃들에게 줄 김치들은 한 봉지, 봉지 따로 담아놓는다. 점심을 맛나게 먹는다. 별 양념이 없어도 얼마나 꿀맛이던지 어린 우리는 매워서 못 먹어도 그때만큼은 냉수 한 사발식 섞어 먹는다. 엄마가 손으로 쭉쭉 찢어주는 김치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바로 이 맛이야!” 감칠맛이다.

김장 맛은 집마다 다르다. 왜냐하면, 우리 마을은 대부분 피난 내려온 사람들로 고향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강원도, 이북사람 등, 팔도사투리가 제각각이다. 날마다 시끌벅적 온갖 잡다한 사건 사고 사연이 버라이어티 단막극이다. 사람 사는 냄새가 솔~솔 나는 대티고개 산 4번지는 나의 고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