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티고개, 산 4번지>

4. 김목수 이모부

by 이 필

우리 집에서 산 위쪽으로 가파르게 올라가면 산과 맞닿는 곳에 이모 집이 있다. 이모 집은 위채와 아래채가 있고, 그 사이에 아주 작은 마당도 있고 대문도 있었다. 나중에는 대문 입구 쪽에 화장실도 만들어 사용하였다. 나는 이모 집이 좋아 자주 놀러 갔다.

이모부는 우리 마을에서 가장 솜씨 좋은 김 목수였다. 비 오는 날 빼고는 늘 일을 하셨다. 틈틈이 이모부 집도 뚝딱 뚝딱 고치며 사셨다. 나는 변해가는 이모 집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단층인 우리 집과는 다르게 계단을 만들어 옥상과 옥상을 연결하고, 위채 다락방에 창문을 열고 나가면 테라스가 있어 2층처럼 느껴진다. 이을 수 없을 것 같은 곳에 길과 계단을 미로처럼 만들었다. 화장실 옆으로 한 사람이 겨우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은 아래채 옥상과 연결된다. 그곳에 꽃과 채소를 가꾸어 계절마다 새로운 풍경을 보여준다. 옥상에서 마을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도 좋았지만, 꽃과 채소들이 자라는 것이 참 신기했다. 옥상이 있는 집이 너무 부러워 엄마에게 우리 집도 옥상을 만들어 달라고 졸랐다.

이모부는 6.25 사변 때, 북한에서 피난 내려와 우리 마을에서 살게 되었다. 목수 일을 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가장 노릇을 하였다. 우리 부모님은 이모부보다는 뒤늦게 이 마을로 이사 왔다. 부모님이 이곳 이웃들과 친해지면서 차츰 누가 누군지 알게 되었다. 어느 집에 누가 살고, 어떤 일을 하는지, 고향이 어딘지 등 서로가 대문을 열고 지냈다.

부모님은 이 마을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서는 고향에 있는 형제나 친척들을 한 명씩 오라고 했다. 우리 가족도 살기에 좁은 집과 빠듯한 살림이었지만, 가족 외 항상 처음 보는 친척이 한 명씩은 있었다. 마을에서 평판이 좋은 이모부와 결혼시키기 위하여 가장 먼저 이모를 시골에서 내려오라고 했다.

중매쟁이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십중팔구는 과장되고 뻥이 심하다고 들었다. 순진한 부모님은 중매쟁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물론, 이모부가 근면하고 성실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모부가 목수 일을 하고 마치면 그 고단함을 잊기 위해 습관적으로 술을 드셨다. 그 술은 고약했다. 평소에는 그렇게 얌전하고 점잖은 분이 술을 드시면 다른 사람이 되었다.

이모집을 가기 위해서는 다른 길도 있지만, 이모부는 우리 집을 그쳐 가는 길을 택했다. 우리 집을 지날 때면 그냥 지나가는 법이 없었다. “형님~!, 형님~!”큰소리로 아버지를 불렀다. 엄마는 이런 이모부를 못마땅해하셨다. 왜냐하면, 이미 만취한 이모부는 아버지와 술을 더 마시길 원했고, 이모부의 반복되는 넋두리를 밤늦도록 들어야 했다. 또한, 이모부는 집으로 돌아가면 이모에게 또 술상을 차리라 하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살림살이가 남아나지 않았다. 심지어 이모를 때리기까지 했다.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나니 엄마는 대책을 세웠다. 이모부는 술을 드시고 마을에 들어서면서 항상 노래를 불렀다. 그 노랫소리는 우리 집이 있는 골목어귀부터 이모부가 등장하는 것을 알렸다. “아~~ 아~~ 억새 슬피우~~ 니 가을이 인가요~~.”, 첫 소절에서 크레셴도가 될 때, 우리 집에서는 사이렌이 울린다. 엄마의 목소리는 갑자기 비장한 목소리로 변하며 “빨리 불 끄고 이불속으로 들어가 자는 척해라~!”라 하셨다. 우리는 늘 있는 일이라 민방위 훈련하듯이 일사천리로 행동으로 옮기고 숨죽여 있었다. 이모부는 현관문을 계속 두드리며 아버지를 부르다 지쳐 “형님 주무시오?~”라며 아쉬운 듯, 풀 죽은 목소리를 내고 지나가기도 했다. 어느 날, 가신 줄 알고 불을 켰다가 현관문 앞에 앉아 있는 이모부에게 들켜 꼼짝없이 술상을 차려야 했다.

이모부는 피부도 희고 잘 생겼는데 노래도 잘 불렀다. 솜씨 좋은 목수라 인기도 많았다. 그런데 술만 드시면 왜 다른 사람이 되는지? 왜 우시는지? 너무 이상하고 궁금했다. 커서 생각해 보니 이모부가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어릴 적 뛰놀던 정든 고향이 그립고, 피난살이가 너무 고되고, 외롭고, 누구에게 하소연을 하고 싶었나 보다. 노래에 담긴 가사는 이모부의 마음을 위로해 주었을 것 같다.

몇 년 전에 이모부는 세상을 달리하셨다. 아마도 혼이라도 그리운 고향을 찾아 한을 풀었으리라. 이모부의 눈물이 두만강 푸른 물이 되었기를···. 이모부의 구슬픈 노랫소리가 아직까지 귓전에 생생하게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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