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티고개, 산 4번지>

5. 생명수, 우물물

by 이 필

1960년대는 큰 도시 말고는 수도가 없었던 때라 마을마다 큰 우물이 하나씩은 있었다. 우리 마을에는 우물이 두 군데 있다. 하나는 버스정류소 가까운 곳에 있고, 또 하나는 마을 끝자락 사릿골로 넘어가는 길 아래쪽에 있다. 이 우물은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았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의 생명수로 신성시했다. 새벽이면 누군가 우물 주변을 깨끗이 청소하고 항상 정화수 한 그릇 올려놓았다. 위쪽에 고이는 물은 먹는 물로 주변을 깨끗이 사용해야 했고, 아래쪽에는 빨래터가 있어 오물이 위로 튀지 않게 조심해야 했다. 그것이 지켜지지 않을 때는 난리가 났다. 빨래터에서는 아주머니들의 수다가 끊이지 않았다. 삶의 애환이 범벅되어 빡빡 문질러 씻어내고, 마지막 헹굼의 깨끗한 물로 마음을 정화시켰다.

쌀독에 쌀이 떨어지면, 물이라도 있어 배고픔을 물로 다스렸다. 그래서 하루 일 중에 가장 중요한 일이 집 물통에 물 채우는 거였다. 걸어 다니고 힘을 쓸 수 있는 나이가 되면 물동이 이는 연습을 했다. 무거운 물통이 머리를 짓누르면 너무 아파, 머리 자리를 이리저리 옮기며 참는다. 그래서 수건을 돌돌 말아 머리에 대고 물동이를 이면 훨씬 편하다. 이것을 무슨 뜻인지 몰라도 ‘따베이’라고 불렀다. 사전에도 없는 말이다. 아마도 물동이와 머리 사이에 끼워 빈틈없이 ‘맞닿게 한다’는 의미로 쓰였을까? 추측해 본다.

맞벌이하는 부모님을 대신해 아이들은 학교 마치고 집에 오면, 맨 먼저 물통에 머리를 박고 물이 있는지 확인하고 놀아야 했다. 노는데 정신이 팔려 물을 길어놓지 않은 아이들은 저녁이 다가오면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온 부모님께 혼난 후, 늦은 저녁이라도 숙제하듯 우물가에 물길로 가야 했다.

우물 위쪽 사릿골로 넘어가는 길가에 큰 소나무가 한그루 있다. 길 건너편에 있는 나무들과는 다르게 홀로 길을 지키고 있었다. 어른들이 말하기를 이 우물이 마르지 않는 것은 저 소나무 밑으로 물이 흐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여름에 가뭄이 들어 물의 양이 적을 때는 사릿골로 가서 물을 길어왔다. 그곳은 계곡이 있어 물양이 좀 많았다. 늦도록 일을 하고 온 어른들은 그곳으로 물길로 갔다. 산을 넘어가는 길은 어둡고 무서워 여러 명이 함께 가며, 개도 한 마리 데려갔다. 하루는 개가 그 소나무 앞을 지나려다 말고 뒷걸음질하며 짖어대자 한 어른이 “담배 피우는 사람은 빨리 담배를 피우시오!”라고 말했다. 개 눈에는 귀신이 보인다고 했다. 불을 피워 귀신을 쫓아내자, 개가 머리를 털고 일어나 소나무 앞을 지나갔다는 ‘전설의 고향’ 같은 이야기가 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아이들은 낮에도 그 나무 앞을 지날 때 서로 먼저 지나가라 밀치며 무서움에 떨었다.

우물에서는 죽고 사는 문제가 항상 도사리고 있었다. 아이가 물에 빠져 죽은 일이 있었다. 여름에 비가 많이 올 때는 물이 가득 차서 흘러넘치기도 하지만 물이 중간쯤 차면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올려야 된다. 힘없는 아이들은 물 담긴 두레박을 올리려다 무게에 못 이겨 두레박과 함께 물에 빠질 수 있었다. 특히 겨울에 여기저기 물이 얼어붙어 미끄러워 사고가 종종 일어났다.

그 당시 우리나라가 개발도상국으로 새마을운동이 일어나고 산업이 발달하면서, 우리 마을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집들이 나무판자 집에서 블록과 슬레트 지붕으로 바뀌고 있었다. 마을 끝자락 우물이 있는 곳에는 연립주택을 지으려고 했다. 땅을 개간하기 위해 우물 위 소나무를 벤 인부가 이틀 만에 죽었다. 어른들은 그 영검한 소나무를 베어서 벌을 받았다며, 만약에 저 우물도 없애면 죽을 거라는 저주를 내렸다. 그래서인지 그 우물을 남겨놓고 위에다 지붕처럼 만들어 연립주택을 지었다. 지금도 그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가뭄이 들어 우물물이 졸졸 흐를 때, 순서를 기다리는 양동이가 벽 따라 구불구불 이어져 끝이 안 보일 때도 있다. 자신의 양동이를 찾느라 헤매는 사람들도 있다. 하루 전날부터 놓아둔 양동이는 주인 없이 다른 사람의 손에 의해 앞으로 움직이기도 하지만, 약삭빠른 사람을 만나면 길을 잃고 원래 자리 밖으로 물러나 있어야 했다. 그래서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 이어달리기하듯 바통을 넘기는 가족도 있었다. 바위틈 어딘가에서 물이 나와 낮은 쪽으로 어느 정도 고이면 바가지로 잽싸게 바닥을 긁어 물을 뜬다. 바가지를 하도 긁다 보니 한쪽이 종이 짝처럼 얇아졌다. 다들 너무나 오래 기다렸다 뜨는 물이라 뒷사람을 생각하며 빨리 뜨고 뒷사람들이 뜰 수 있게 배려하는 마음이 깔려있었다. 우물은 삶의 애환을 담은 생명수로 온 마을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적셔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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