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카, 죠터

만년필, 연금술사

by stay gold

파카 죠터.



만년필 수집 및 사용에 취미를 붙이며 한두 달 사이 십여 자루의 만년필을 모을 정도로 푹 빠졌었다. 각각의 만년필마다 서로 다른 매력, 여기에 어떤 특성의 잉크를 넣어주느냐에 따라 같은 만년필이라도 다른 느낌을 주기도 하니 새로운 만년필을 손에 쥐는 것은 두근대는 일이었다.


죠터 만년필을 들이며 드디어 목적지에 닿은 느낌이었다. 적당하다 싶으면 수십만 원은 훌쩍 넘기는 만년필 세계에서 고작 몇 만 원이면 살 수 있는 죠터 만년필은 제일 저렴한 수준. 그러나, 쓸데없는 화려함이 아닌 수수함으로 지켜낸 만년필의 아이덴티티, 적당한 필기감, 손에 감기는 맛, 잉크의 특성을 받아내는 수용성까지, 무엇 하나 아쉬울 것 없는, 내게는 최고의 만년필을 만난 기분이었다.


지금도 가장 마음이 가는 만년필은 단연코 파카 죠터.


하지만 누군가 만년필 추천을 부탁하면 적당한 가격의 세일러나 펠리칸, 부탁한 이께서 기왕 사는 것 만년필의 정석을 잡아보고 싶다고 하면 몽블랑 149를 추천한다.


그것들을 모두 잡아보고 한참 사용하고 나서야 파카 죠터가 얼마나 훌륭한 펜인지 스스로 느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만년필 추천해 달라는데 3만 원 ~ 4만 원짜리를 이야기하면 가성비를 생각해 저렴한 것을 추천했다는 오해를 살 수 있기 때문. 또 하나, 나에게는 가장 훌륭한 죠터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싼 맛에 쓰는 그저 그런 펜으로 느껴질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기도.


처음부터 죠터의 매력을 알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여러 만년필을 잡고 나서야 죠터의 매력을 알아봤다. 149가, 51이, m800이 죠터보다 훨씬 좋을 것이라는 판타지는 결국 그것들을 모두 잡아보고 한참 사용하고 나서야 깨질 수 있었다. 그제야 저렴한 펜에 불과하던 죠터가 매력 넘치는 종착지로 보였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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