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 눈 뜨자마자 알았다.
아, 오늘 날씨 좋겠다.
창문을 열고 뺨으로 바람 온도를 체크했다.
딱, 딱 그 정도. 이불 속에만 있고 싶지 않은 온도.
그래서 오늘은 ‘누워만 있는 엄마’ 모드 대신,
주말에도 뭔가 해보는 ‘좋은 엄마’ 모드가 켜진 날.
남편이 사다 놓은 토마토 통을 열어
다섯 개를 꺼내 씻고, 칼로 꼭지를 톡톡 따고,
양파도 착착 썰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남편이 말했다.
“내가 할까? 레시피 나한테 줘봐.”
“아니야, 이건 내가 해주고 싶어.”
말끝을 흐리기도 전에
나는 능숙하게 가스레인지 불을 켜려고
조절 손잡이를 돌렸다.
따따따따따—
…근데, 불이 안 들어온다.
뭔가 이상해서 손잡이를 계속 돌리고 있으니
남편이 한쪽 눈썹을 살짝 올리며 묻는다.
“내가 할까?”
“괜찮아!”
나는 반사적으로 외쳤다.
손에선 여전히 딸깍딸깍 소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제야 알았다.
내가 돌린 건 왼쪽 불이 아니라
냄비에 가려 안 보이던 뒤쪽 손잡이였다는 걸.
그러니까, 불은 안 들어오고 시간만 흘렀던 거다.
남편은 부엌을 떠나지 못했다.
“불도 못 켜는데, 괜찮겠어?”
못 들은 척 냉장고 문을 열었다.
“오빠, 우유가 없네. 편의점에서 좀 사와줄래?”
“편의점 비싸.”
“500ml만 사면 되잖아.”
“그것도 비싸더라.”
“그럼 마트 다녀올게.”
그 순간, 남편이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현관문 앞에서 나는 그의 뒷통수에 대고
살짝 이기적인 한마디를 날렸다.
“그냥 편의점에서 사.”
말만 하면 다 들어주는 남편.
결국 자전거 타고 마트까지 다녀온 것 같다.
1000ml짜리 두 개, 묶음으로 가방에 담겨 있었다.
사실, 우리 집 부엌은 남편의 영토다.
오늘 아침은 내가 잠시 그 공간을 점거한 셈.
냄비에 토마토와 양파를 넣고
보글보글 끓이기 시작했다.
마법의 치킨스톡을 약간, 소금으로 간을 맞추고
올리브유를 살짝 둘렀다.
완성된 스프를 예쁜 그릇에 담고
곱게 갈린 치즈를 솔솔 뿌렸다.
프랑스산 밀가루로 만든 바게트도
살짝 데워서 플레이팅 완료.
평일엔 늘 빵에 잼만 발라주며
‘바쁘니까’라는 면죄부를 달곤 했는데,
오늘만큼은 좀 더 건강하게, 성의 있게.
첫째는 낯선 맛이라며 고개를 갸웃하다
“근데 맛있긴 해.” 하더니, 결국 잘 먹었다.
둘째는 말로만 맛있다고 하고,
스프는 거의 안 건드리더니
빵을 살짝 찍어 먹고는 잼을 더 발라 먹었다.
남편은 아무 말 없이 먹었다.
기대했던 리액션은 없었지만
나 혼자 두 그릇이나 먹었다.
남편이 아이들에게 말했다.
“오늘 아침은 엄마가 요리한 거야.”
근사한 브런치 가게의 토마토스프는 아니었지만,
무언가를 아침에 가족을 위해 도전했다는
그 분위기만큼은 인정받은 듯했다.
(사실 나는, 맛있어서 두 그릇이나 먹었다.)
아이들 방학 동안 점심 담당은 내 몫이었는데,
큰마음 먹고 “떡볶이 먹고 싶다”는 말에
밀키트를 사뒀다가,
그 물만 넣고 끓이면 된다는 밀키트조차
실패한 적이 있다.
망한 떡볶이를 앞에 두고도
“엄마,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우리 엄마는 라면 진짜 잘 끓이잖아.”
망쳐도, 부족해도
언제나 내 편을 들어주는 귀여운 응원단들.
누가 어른이고 누가 아이인지
가끔 헷갈릴 지경이다.
남편은 또 다른 방식으로 응원한다.
불안해하고, 걱정하고,
무엇이든 대신해주고 싶어 한다.
예전에 아보카도 비빔밥을 해주고 싶어서
아보카도 씨를 과도로 찔러 빼려다,
그만 내 손을 찔러 피를 흘린 적이 있다.
그날 이후로,
내가 칼만 잡아도 남편은 긴장한다.
참 미안한 일이다.
마음과 행동이 일치하면 좋으련만,
요리를 잘해보려는 마음과 달리
몸이 안 따라줄 때가 많다.
그런 나와 살아주는 남편이
더 고맙고,
좀 미안하고,
조금 귀엽다.
오늘 아침은
맥도날드도 아니고,
시리얼 한 그릇도 아니고,
‘내 아이디어로, 내 손으로 만든’
나름 건강한 한 끼였다.
불도 겨우 켰고,
스프는 조금 심심했지만,
완벽하진 않았지만,
이 정도면 꽤 괜찮은 아침이었다.
사실, 아이들 기억 속에
‘엄마가 해주던 음식’ 하나쯤 남았으면 해서
처음 만들어본 토마토스프였다.
맛은 심심했지만, 마음만은 진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