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주 냄새

by 돌멩이

나의 외할머니는 뭐든지 해내시던 분이다. 부천집에서 살 때 옥상이 있어 빨간 고추를 말려 가루를 직접 내시기도, 벽돌과 흙을 퍼다 올려 화단을 만드시고, 호박을 길러 호박잎을 데쳐먹기도 했다. 직접 자재를 구해서 옥상 방수작업을 하시기도 하셨다. 어디서 구하셨는지 모르는 흰 페인트는 담벼락을 칠하는데 쓰셨었다. 어느 날 심으셨던 포도는 대문 옆 전선을 타고 둘러 자라나서 여름이 되면 탐스러운 잎이 대문을 꾸며주기도 했다. 가을쯤 주렁주렁 열린 포도는 시큼하고 맛이 없었다. 그 밖에도 매일 같이 집을 쓸고 닦으며 머리카락과 먼지가 돈이었으면 참 좋겠다는 말씀을 하곤 하셨다. 나도 가끔은 차출되어 물탱크 옆에 있던, 매년 쓰는, 점점 삭아서 갈라져가는 비닐을 펼치고 빨간 고추를 하나하나 널었던 기억, 날이 흐려서 걱정하다가 결국 널어놓았던 고추 위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그 위에 비닐을 덧대었던 기억, 대문 위 공간에 포도나무 낙엽이 쌓여 매년 청소했던 기억, 그 밖에도 콩나물을 사 오거나 장독대에서 장독을 옮기던 기억이 난다. 다들 알만한 골목골목 있던 빨간 벽돌집에서, 활동력 넘치는 외할머니 밑에서 이렇게 자랐다.


가끔 메주를 쑤어 장을 담그시기도 했다.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나도 예외 없이 참여했다. 큰 스테인리스 대야에 메주콩을 밤새 불리고, 불린 콩을 푹 삶는다. 그리고는 부드러워진 삶은 메주콩을 사정없이 으깬다. 그다음은 벽돌모양으로 빚는다. 그러고 나서는 숙성을 해야 한다. 하얀 곰팡이가 필 때까지. 쌀쌀해진 겨울날, 단열재가 두 번 덧대어진 따듯한 나의 방, 그중에서도 열기가 뜨끈하게 올라오는 침대 밑에서 메주가 숙성되어야 한다는 할머니의 말씀에 나는 별다른 저항 없이 그것을 수용했다. 내 방이 따뜻한 것도 맞고, 무엇보다 고소한 콩 냄새가 싫지 않은 탓이었다. 곧이어 내 방에 신문지가 깔리고, 메주들이 침대 밑에 자리를 잡았다. 내가 침대 밑에 들어가 직접 그것들을 배치했다. 갓 삶은 메주콩에서는 구수한 냄새가 나지만, 점차 쉰내, 싸한 냄새, 지하 보일러실 냄새, 흙냄새로 바뀌는 것을 알게 되었다. 메주냄새가 온 방을 잠식했고, 나는 메주인간이 되었다. 그 메주 냄새는 할머니를 떠올릴 때 함께 떠올리는 냄새가 되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났다. 할머니는 치매에 걸렸다. 주방에서 가스불을 켜놓고 잊는 것부터 시작이었다. 냄비를 까맣게 몇 개 태워먹고 나서 안전상의 이유로 할머니는 더 이상 직접 요리를 할 수 없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치매에 걸리고 나면 도둑 망상이 생긴다고 한다. 물건을 엄한데 두거나 잃어버리고 나서, 누가 훔쳐갔다고 망상하는 것이다. 어린 시절 할머니의 속을 많이 썩였던 이모가 대표로 도둑년이 되었다. 썩을 년. 씨부랄년. 이모는 욕을 잔뜩 먹어가면서 할머니를 돌본다. 엄마도 한 점에 10원짜리 화투를 수백 수천 판을 하고, 수천수만 번 똑같은 이야기를 하시는 할머니의 이야기 레퍼토리를 계속 듣는다. 할머니는 더 이상 외출을 하지 않는다.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신다. 백 걸음을 걷기 전에 앉아서 쉬자고 하신다. 혼자 계실 때는 집에서 TV를 큰 소리로 틀어놓고 낮이든 밤이든 늘 누워 주무신다. 우리 할머니가 더 이상 메주를 쑬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는 사실이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더 이상 내가 아는 활력 넘치는 할머니가 아니어서 할머니께 잘 가지 않는다. 안 보이면 어렴풋이 기억만 하게 되니까.


얼마 전 할머니는 갈비뼈가 부러지셨다. 새벽에 깨어서 잠결에 이모와 사촌동생들이 잘 있는지 보다가 헛디뎌 앞으로 넘어지셨다고 한다. 입원하실 때만 해도 멀쩡하셨던 할머니가 염증 수치가 점점 높아지더니 설날에 고비를 넘겼다고 했다. 의료 과실로 비급여 영양제가 새는 바람에 염증 수치가 높아졌었다고 한다. 조치를 취한 뒤 할머니와 통화를 했는데,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은 “밥 잘 먹고 다녀라.”였다.


전화를 끊고 나자 이상하게 메주 냄새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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