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노홍철이 되어줘

by 돌멩이

놀이라는 키워드로는 ‘롤플레잉’, ‘역할극’이 생각이 난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놀이는 모두 롤플레잉에 기반하고 있는 것 같다. 경찰과 도둑, 숨바꼭질,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보드게임, 축구, 나아가서 컴퓨터게임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하다못해 목욕탕에서 물장구를 친다고 하더라도 ‘물장구 플레이어’로서 더 멀리 물장구치기, 더 예술적으로 치기 같은 것들이 있다. 운전을 하더라도 그날의 ‘운전기사’로서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가기, 브레이크 나눠 밟아서 충격을 줄이기 등이 목표가 될 수 있다. 내가 아는, 지금 생각나는 놀이 전부 어떤 역할에 몰입해서 과업을 수행하는 형태를 띤다. 그 말은 원래의 내 역할(본캐)이 있고 내가 몰입하기로 결정한 역할(부캐)이 있다는 말이 된다.


놀이에서는 ‘괴로울 때도 끈질겨야 재밌다.’는 사실을 늘 재확인한다. 열 판 중 한 판정도만 수월하게 풀리고, 네 판정도는 어렵게 이기고, 다음 네 판은 결국 풀리지 않아서 지며, 한 판은 시원하게 진다. 쉽게 이기는 판과 지는 판은 사실 재미없는 경우가 많고, 노력에 따라서 승리가 결정되는 여덟 판의 비율이 재미를 결정한다. 질 것 같을 때도 끈질기게 하다 보면 간신히 이겨낼 때가 있는데 그때 가장 큰 재미를 느낀다는 의미이다. 내가 즐겨하는 게임 롤에서는 ‘찐막(진짜 마지막 한 판)’이라는 개념이 있다. 나의 노력에 따라서 게임의 승패가 갈리는 게임에서 나의 영향력을 발휘해서 어렵게 이겨야만 큰 재미와 만족감을 느끼고 게임을 그만하겠다는 것이다. ‘찐막’이라는 개념의 존재 자체가 ‘재미는 자기효용성에서 비롯되고, 자기효용성은 끈질긴 노력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방증이 된다.


놀이 안에서 어떤 역할을 잘하는 사람이 실제 삶에서도 그 역할을 잘 수행한다고 믿는다. 우리가 놀 때 원래의 내 역할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반대의 경우 - 놀이를 하면서 그 역할을 체험해 보고, 재미있고 잘 먹히면 ‘내 역할로 삼아볼까?’ - 가 더 많은 것 같다. 가장 직관적으로는, 유로트럭(화물트럭운전 시뮬레이션게임)에서 300km를 빠르고 안전하게 운행하는 사람이 실제 화물운송기사를 잘하지 못할 이유는 거의 없다. 놀이는 실제 역할의 데모버전이다.


실제 인생에서의 역할과 놀이에서의 역할이 본질적으로 비슷하다는 말은 우리의 인생을 그냥 놀이, 역할극, 롤플레잉이라고 봐도 무방하다는 의미 같다. 어려운 말로 포장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누군가의 연인, 자식, 친구, 부모의 역할을, 회사에서는 리더, 팔로워의 역할을, 취미 모임에서는 모임원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혹은 대충 수행한다. 갑작스럽게 고백하자면 나는 사주점을 좋아하는데, 어느 시점에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역할을 부여해 주는 것이 좋다. 일견 쓸모없어 보이는 사람도 지금 기운이 흐트러져 있는 상태이고 나중에 특정 운을 만나면 꼭 필요한 역할이 부여되어서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개념이 좋다. 자신의 역할을 명확히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사주점이 필요 없지만, 자신의 역할을 명확히 모르는 사람들은 사주점을 통해서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고 그것에 충실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우리의 인생이 본질적으로 역할극인데 역할을 찾지 못하는 이에게 역할을 부여해 주고 북돋아줄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아주 실용적인 생각이 아닐까?


이런 시선에 기반해서 나는 모든 인간관계에서 사람들의 역할을 찾으려고 애쓴다. 내가 제일 좋아하고 재밌어하는 것은 무한도전 같은 캐릭터쇼이다. 노홍철, 박명수 같은 공격성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딜러 역할, 정준하, 정형돈 같은 재밌게 받아넘기는 탱커 역할, 그 외 재간둥이, 중재자 역할이 조화를 이루어서 본인의 역할을 이해하고, 또 그것이 스스로에게 잘 맞아서 극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제일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연인관계에서는 다른 것보다 이런 요소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인생녹음중’이라는 유튜브채널을 흐뭇하게 보다가 이런 생각이 났다. 집에 돌아와서 사랑하는 사람과 상황에 몰입해 재미있는 역할극을 하고 배꼽 잡고 웃으면 그만큼 힘이 나는 것은 없을 것 같다. 그렇게 살면 평생을 행복하게 살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사귀거나 사귀고 싶은 사람에게 종종 이런 이야기를 했을 때 딱히 좋은 반응을 얻은 적은 없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나의 노홍철이 되어줘”라는 말은 나한테는 엄청난 사랑고백이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다지 설레지 않는 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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