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세계를 믿지 않는 나는 내가 죽고 나면 어디로 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예전에 봤던 만화 데스노트의 사신 류크의 대사에 동의한다. “천국도 지옥도 없다. 생전에 무슨 짓을 하든 죽은 녀석이 가는 곳은 똑같아. 죽음은 평등하다.” 그래도 칼세이건이 한 “우리는 모두 별 먼지”라는 말은 멋있다. 별 먼지가 되어 다시 별이 된다는 이야기가 좋다. 운이 좋다면 내 먼지 중 일부가 다시 뭉쳐서 무언가가 될런지도 모른다.
내가 죽고 나서, 즉 내가 사라지고 나서, -나의 내세관에 따르면 아직 나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잘 닦인 별먼지를 앞에 두고- 하는 내 장례식은 필히 나 없이 진행될 텐데, 주인이 없는 파티가 되는 셈이다. 그럼 무슨 재미로 개최하는 걸까? 재미를 찾자면, 내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내 이야기가 재밌을 것 같기는 하다. 듣지 못한다는 점이 참 아쉽겠다. 또 살아생전에 농담으로 했던 “내 장례식 와서 육개장 두 그릇 먹어라.”가 현실화될 것이다. 그것도 상상만으로 재미있는 관전포인트 중 하나겠다. 생각해 보니, 그런 모습들을 상상하면서 파티를 준비하는 것 만으로 충분히 재미있는 일이다.
장례식이 파티라고 치면, 가장 먼저 정해야 할 것은 주제인데, 그것은 나의 죽음으로 정해져 있다. 다음으로 정해야 하는 것은 목표다. 내 장례식에 와서 어떤 경험을 하게 해주고 싶은지 정하면 된다. 나는 원래가 똑같은 것을 하는 걸 싫어한다. 요새는 결혼식만큼이나 장례식을 많이 가는데, 너무 똑같다. 아마도 이런 주제로 글쓰기를 하지 않아서인 것 같다. 똑같은 것들 사이에서 달라지는 것을 목표로 정한다. 즉 새로운 장례식을 경험시켜 주는 것이 목적이다. 그런 참신함과 충격이 내 최후로 기억된다고 상상하는 것이 즐겁다.
구체적인 것을 다 정할 수는 없지만, 몇 가지는 확정이다. 게임을 하다 보면 운과 실력이 합쳐져 뛰어난 퍼포먼스를 선보일 때가 있다. 그럴 때 ‘이 영상은 내 장례식에 틀면 좋겠다.’ 생각한다. 게임을 포함해서 내가 다른 사람들을 이겨먹는 그런 영상들을 모아 인생 하이라이트 액기스 모음집을 만들고, 장례식장 입구에 큰 디스플레이로 72시간 반복재생을 하고 싶다. 나한테 발린 패배자들에게 특별 초대장을 보낸다. 가불기를 건다. 안 오면 옹졸한 것이고 오면 정신적인 데미지가 아주 크다.
육개장 푸드파이팅 챌린지를 한다. 평상시에 장례식장 거덜 낼게 하던 사람들 다 모은다. 유명 셰프를 불러 큰 가마솥에 고사리 양지 사태 넣고 푹 끓인 육개장을 한 대접씩 주는데, 남기는 순간 탈락이다. 사람들이 최고로 맛있는 육개장을 퍼먹는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맛있어서 좋은 얼굴로 먹었지만, 점점 말이 없어지고 얼굴이 흙빛이 된다. 그때 1등이 가려진다. 과식으로 괴로워하는 얼굴과 경쟁에서 이겨서 즐거운 얼굴이 혼란스럽게 섞여있다. 나는 미리 그에게 줄 1등 상품을 준비해 놓는다. 평상시 소중하게 여겼던 애장품 증정시간을 갖는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 내가 평생을 써왔던 물건들, 값나가는 물건들을 줘버린다. 어디에 갖다 파는 것보다는 훨씬 재미있을 것이다.
캠프파이어를 한다. 모닥불을 피워놓고 둥글게 둘러앉는다. 곧 조교가 마이크를 잡는다. 그저께 죽은 이정호가 여러분들을 많이 좋아했다고 가스라이팅을 한다. 몇몇은 훌쩍훌쩍 울기 시작한다. 특히 술이 한잔 들어가서 감성이 충만해지는 바람에, 취한 사람을 중심으로 엉엉 우는 사람들이 생긴다. 옆에서 휴지를 잔뜩 뽑아 건네준다. 눈치 없게 마시멜로 사 와서 슬쩍 구워 먹는 사람도 있겠다. 불이 사그라들 때, 몸을 가누지 못하는 사람들과 아이들을 퇴장시킨다.
마지막 광란의 파티를 즐긴다. 빛을 차단해 어두운 공간을 만들고, 사이키델릭 한 조명으로 현란하게 혼을 쏙 빼놓는다. DJ를 불러 신나는 음악을 틀고, 흥겹게 춤을 추며 밤을 지새운다. 원래 장례식장에서는 밤을 새우니깐, 어차피 새워야 하는 밤이라면 흥겹게 채워 넣으면 더 좋을 것 같다. 몇몇은 피곤해서 구석에서 잔다. 어깨형님을 고용해 자는 사람을 어깨에 둘러업는다. 수면실로 데려가 이불을 덮어준다.
다 논 사람, 수면실에서 깬 사람, 어깨형님, DJ는 해 뜨면 집에 간다. 혹시 속 쓰리다고 하면 어제 먹다 남은 유명 셰프 육개장으로 해장시키고 집에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