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에 관하여

by 돌멩이

자신이 진실이라고 믿는 것 중에, 대다수의 사람들이 믿지 않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세요


‘대다수에 반해서, 내가 옳다.’라는 믿음은 도덕적인 우월감에 심취해 있는 모습을 떠오르게 해서, 이번 글쓰기에서 난관을 겪게 되었다. 대다수에서 벗어난다는 상상 자체가 쉽지 않음을 알았다.


내가 정의하는 ‘대다수’는 내 주변의 작은 공동체에서 겪고 느낀 모든 것들(끽해야 150명)을 왜곡이 가득한 잣대로 함부로 집계하고 내린 결론이다. 그 주관성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예컨대 지구평평설을 믿는 사람들이 내 주변에 많이 있다면 나는 세상 사람들 대다수가 지구평평설을 믿는다고 생각하고 이번 글을 지구둥글설에 대한 내용으로 적어냈을 것 같다.


사실 대다수의 사람의 생각을 집계하는 것도 어렵다. 그나마 투표라는 개념을 가지고 수십 년간 국가적인 차원에서 노력한다면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정도는 대통령선거를 하러 온다. 뒤집어 말하면 수십 년간 노력했음에도 절반은 안 온다.


따라서 나는 이 이상한 질문을 약간 비틀어, ‘대다수의 믿음과 상관없이’ 내가 진실이라 믿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내가 최근에 흠뻑 빠진 생각은 모든 것들에 고유의 사이클이 있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내가 경험한 모든 것들은 그러했다. 역사 시간에 배우는 제국의 흥망성쇠, 운영관리 시간에 배우는 제품주기론, 지구의 자전과 그로 인한 낮과 밤, 지구의 공전과 그로 인한 봄 여름 가을 겨울, 돌고 돌아온 유행 패션, 불교의 윤회사상, 심지어는 활발해졌다가 차분해졌다가를 반복하는 나의 태도까지 사이클이 있다. 지금까지 경험해 온 모든 것에 사이클이 있다는 것으로 앞으로 내가 경험할 모든 것에 사이클이 있을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너무 큰 사이클은 사람들이 짐작하기 어렵다. 우리의 인식의 한계는 넓어봐야 우리의 시각이 닿는 곳이고, 길어봐야 100년 남짓한 시간이다. 그래서, 이를테면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지금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또, 전쟁의 참혹한 기억이 세대를 거치면서 흐릿해지고, 다음 세대는 전쟁을 현실이 아닌 추상적인 개념으로 인지하면서 위험에 둔감해지고, 전쟁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래서 전쟁은 주기적으로 일어난다.


사이클은 원의 형태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나선의 형태이다. 달은 지구를 둘러 도는 것이지만, 충분히 멀리서 보면 지구가 태양을 따라 돌아서, 달은 나선 형태로 궤적을 그리면서 태양을 도는 꼴이 된다. 사실 태양도 우리 은하의 중심부에 위치한 초 거대 블랙홀을 공전한다고 한다. 우주의 생김새가 나선 프랙털로 이루어져 있는 것은 참 신기하다. 동시에 작은 지구의 작은 앵무조개가 나선형의 껍데기를 지닌 것은 우주를 지배하는 어떤 강력한 법칙이 재미있게 작용한 것만 같다. 누군가에게는 굉장히 신성한 것으로 느껴질 수 있는 법칙 같다.


그 법칙을 따라서 세상을 순환적으로 인식해 보는 것은 어떨까? 사이클이 있다는 것은 굉장한 안정감을 준다. 이를테면 지금 무언가로부터 너무 괴로운 상태라면 어느 한쪽의 극단에 와있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리라는 확신이 생긴다. 극단적으로 수축되어 있는 상태라고 느낀다면 극단적으로 확장되는 상태가 올 것임을 생각하기 쉽다. 내가 옳다가도, 내가 틀리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순순히 받아들이게 된다. 내가 인정받았다가도, 무시받을 수 있음을 속 편하게 인정한다.


미래를 예측해 본다. 지금은 이런 사이클이고 저런 사이클이 올 거야. 떠들어댄다. 하지만 어설프게 예측했던 것들이 인식의 한계로 실패한다. 정확하게 얻어걸리는 경우도 있다.


일상의 주변에서 사이클을 찾아본다. 내 인생은 어떤 사이클에 있지? 뭔지 몰라도 좋은 사이클에 있기를 바란다. 사이클 간의 상호작용도 고려해 본다. 나와 이 모임이 만들어내는 나선구조는 어떤 형태일까? 또 어떤 큰 사이클 속에 있을까? 이런 생각들이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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