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봐봐봐 여름성경학교 후기 #2
여름성경학교 기도 집회 시간을 대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둘로 나뉜다.
1. 열심히 기도에 집중하는 아이
2. 눈치 보며 빨리 이 시간이 끝나기를 기도하는 아이
나의 경우 첫 번째 유형에 해당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20년 전의 내 친구들이 그랬다.
90년생 말띠. 우리 학년은 교회에서도 유난스러운 아이들이었다. 부목사님 딸부터 장로님 손녀까지. 2대 3대가 교회를 출석하고 있는 아들딸이 많이 포진되어 있었다. 그래서일까. 그때 내 친구들은 참 뜨겁게 기도했다.
아직도 나는 그때 그 성경학교 기도시간을 잊을 수 없다.
내가 6학년이 되던 해 여름성경학교였다. 예배를 인도하시던 목사님이 기도하자고 말하니, 예배당은 어두운 조명으로 바뀌었다.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왔고, 빔프로젝터 화면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는 영상이 나왔다. 은혜받기 딱 좋은 시공간이었다. 집회를 담당한 목사님은 우리에게 기도할 제목을 주고 일정 시간 동안 함께 기도할 수 있도록 인도해주고 있었다.
그때 나는 사실 기도시간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도에 집중하면 자꾸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였다. 목구멍이 까슬까슬해지는 느낌이 들었지만 눈물을 꿀꺽 삼켰다. 마음에서 나오는 기도를 애써 억누르고 꾹 참았다. 우는 건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참 미련하지만 나는 다른 이들에게 약한 모습을 들키는 걸 싫어해서 눈물 흘리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
그런데 그때 마침 한 아이의 기도소리가 들렸다. 내 뒷자리에 앉은 4학년 동생의 기도였다.
P는 밀가루떡처럼 뽀얀 피부를 갖고 있는 키 작은 남자아이였다. 그 아이는 진심을 다해 기도하고 있었다. 누가 보든 말든 전혀 신경 쓰지 않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정확한 내용은 기억이 안 나지만, 주변 눈치를 보고 있는 내가 부끄러워질 만큼 신실한 기도였다.
다른 친구들도 훌쩍거리며 기도에 열중하고 있었다. 마이크를 잡고 계신 목사님까지도 흐느끼며 기도드리고 있었다.
‘다들 기도에 집중하고 있구나…‘
하라는 기도는 하지 않고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내가 창피해졌다.
‘에라 모르겠다. 시원하게 기도해 보자.’
마음을 고쳐먹은 나는 그때부터 맘껏 기도했다. 고사리 같은 손을 모으고, 무릎을 꿇고, 왈칵 나오는 눈물을 그냥 흘렸다. 마음 가는 대로.
그 기도의 내용이 몸서리치게 유치했을 텐데도, 6학년 어린이가 드리는 참회의 기도를 주님은 기쁘게 들어주셨다.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주고 계시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날 나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었다 다시 살아나심을 통해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만들어주셨음을 비로소 이해했다. 그리고 천국 복음이 내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감동해 계속 눈물을 흘렸다.
그때로부터 스무 해가 넘게 지난 지금. 삼십 대 중반이 된 나는 그때를 떠올리며 원망 섞인 기도를 올린 적이 있다.
'주님, 왜 저를 이렇게 나이 들게 하셨나요. 어렸을 때 저는 순박하게 주님을 찬양하고 기도했는데. 그때 데려가시지. 왜 스스로를 감당하지도 못하는 이런 어른이 되게 하셨나요.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이 되게 하셨나요...'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원망과 투정을 다 들어주시고, 평안한 마음을 주셨다.
그리고 얼마 후, 나는 성경학교 보조교사 역할을 자원했다. 다음세대 아이들에게도 예수님의 사랑을 알려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첫째 날 저녁 집회 시간, 내가 어렴풋이 기억하는 20여년 전과 비슷한 무드가 만들어졌다. 은은한 간접 조명과 피아노 반주가 예배당을 채웠고,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손을 붙잡고 기도했다.
‘딸깍’
집회가 끝나고 예배실 불이 켜졌다. 시계를 보니 2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다시 밝아진 예배실 안. 형광등 조명 아래로 나타난 아이들 얼굴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아이들은 어떤 표정일까?'
아이들을 빙 둘러봤다. 하지만 아이들 얼굴은 은혜받아 감격한 모양이 전혀 아니었다. 예상보다 길어진 기도시간에 대해 불만이 가득한 모습이었다. 기도집회를 너무 오래 해서 힘들었다며 꺼이꺼이 우는 아이도 있고, 배고프다며 라면이 먹고 싶다 칭얼대는 아이도 있었다.
'아 맞다. 이게 현실이지.!'
눈치 보며 기도 시간이 끝나기만을 기다린 아이들. 자기 뜻대로 안 되면 떼쓰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의 모습이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을 닮아있었다.
그래 맞아. 나도 저런 막무가내 초등학생이었지. 나는 초등학생 때의 내가 참 어른스러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모두 착각이었구나.
그때 나를 사랑으로 가르쳐준 선생님들께 미안하고 고마웠다.
함께 기도해 준 선생님들 덕분에 내가 이렇게 변화될 수 있었구나. 맞아.
그렇게 생각하고 아이들을 보니, 난동을 피우지 않고 앉아서 2시간을 버텨준 아이들에게 고마웠다. 툭하면 싸우고 토라지고 성질내는 아이들조차 조금씩 사랑스럽게 보였다. 귀여웠다.
‘세상에나. 내가 이런 아이들을 귀여워하게 되다니. 이건 내가 아니야. 중생이란 이런 건가. 이건 미라클이야.'
나와 아이들의 부족함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내적여백을 갖게 된 걸 보니 어른이 되어가는 것도 썩 나쁜 것만은 아니구나 싶다. 나는 성경학교에 오길 참 잘했다 생각했다. 내가 기도해 줄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아이들을 위해 더 많이 기도해야겠다고.
주님
2002년에 제 뒷자리에서 기도드리던 남학생은 건장한 30대 청년이 되었지만, 교회를 떠났습니다. 저와 성경학교를 함께했던 친구들 중에 주님 품을 떠나 방황하고 있는 친구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만큼 믿음을 지켜나가는 게 힘든 시대입니다.
세상이 교회를 거부하고 있고, 그리스도인들이 타락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멀리하고 있는 이 세상에는 우리의 가치관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유혹이 너무나 많습니다.
지금 세대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는 신앙을 지켜 나가는 게 더 힘들어질까 걱정입니다. 지금 함께 기도하고 예배드리고 있는 이 아이들의 기도를 기억해 주세요. 우리 아이들 모두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품게 해 주세요. 아이들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시험에 빠지지 않게 보호하여 주시고, 세상유혹을 이겨낼 수 있는 믿음을 갖도록 훈련시켜 주세요.
저희가 주님 뜻에 합당한 교회 공동체를 이루기 원합니다. 성경 말씀을 통해 영적인 분별력을 갖추고, 기도를 통해 주님 뜻을 구하며 살아가길 원합니다. 저희 모인 곳에 함께해 주세요.
주님 뜻이 이 땅 가운데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