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잘해보려고요.
일을 미루는 사람은 게으른 것이 아니라 완벽주의자라고 하던데요.(by 오은영쌤)
저도 그렇게 일을 미루는 사람 중에 하나입니다. 물론 데드라인을 넘지는 않죠. 돈 받고 하는 일인데. 여하튼 일을 받자마자 시작하지 못하고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편인데(빨리 해야 할 때는 거기에 맞춰서 하긴 하지만) 제대로 해내는 내 모습을 보지 못하면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1년간 저는 성취감을 느끼기 힘든 일을 해왔습니다. 업무의 방향성이나 방법론에서도 동의할 수 없지만 조직의 특성상 까라면 까야하니 저를 어떻게든 갈아 넣어 결과물을 냈어요. 그러나 그게 저의 마음의 병을 키울 줄은 몰랐습니다.
처음엔 말이었습니다. 수다스럽고 사람을 좋아하는 저인데, 조용하고 말수가 없다는 평을 듣게 되었습니다. 살면서 처음이었어요. '일하는데 집중하느라 그랬겠지'라고 쉽게 넘어갔습니다. 그다음은 떨리는 목소리입니다. 보고를 가면 자꾸 목소리가 떨리고 말끝을 흐리게 되는 것입니다. 보고 가기 전에 멘트를 외우고 가도 순간 머리가 멈추더군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과수면과 손떨림이 심해졌습니다. 과수면은 저에겐 도피이고 수면의 질도 좋지 않은데 10시간 이상 잠을 자댔죠. 손은 시도 때도 없이 떨렸습니다. 컵을 깨고 티팟도 깨고... 삶이 하나씩 하나씩 무너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당연히 병원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많은 증상들을 약으로 다스려야 했죠. 그러나 약을 먹고 기립성 저혈압 증상이 나오는 등 부작용도 상당했습니다. 여러 가지를 시도했습니다. 회사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기에 독서모임을 조직해서 책을 읽고 모여서 건설적인 이야기를 나누곤 했습니다. 그 순간은 너무 좋았지만 이 긍정적 경험이 다른 생활까지 영향을 주지는 못했습니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라는 말이 있죠?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운동을 하고 나서 체중도 조금씩 줄고 체력이 늘긴 했지만 이 역시 거기서 끝이었습니다.
문제의 원인은 업무에서 성취감을 못 가지는 것이니까요. 업무의 방향성을 변화시킬 수 있는 위치가 아니니 계속 패배감과 좌절감을 느껴야 했습니다. 마음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어요. 그리고, 더 이상 무너질 마음이 없이 텅 비었음을 느꼈을 때 휴직을 생각했습니다. 휴직기간 동안 쉬면서 마음을 추스르고 돌아와서는 자연스럽게 업무 이동이 될 것이기에 좋은 선택입니다. 물론 저의 한계와 약점을 들켜버렸지만요. 이것이 최근 저의 글이 뜸했던 이유입니다. 좋아지는 것만 남았다고 생각했던 우울증과 기타 등등이 다시 심해지니 이 또한 자괴감이 드네요. 만 10년이 넘게 한 회사에서 잘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커리어에 흠집이 생긴 것 같아 마음이 아프지만 그래도 이제는 안될 것 같아 휴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