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 기억은 왜 우리를 속이는가 : 진실보다 강한 감정의 기억
전문가라는 이름 아래 감춰진 감정들
전문가도 상담을 받아야 할까?
“선생님, 그때 분명히 그 사람이 내 손을 잡았어요. 너무 차가운 손이었어요. 저는 아직도 기억나요.”
내담자의 말은 단호했다. 그러나 조사 결과, 그날 그 사람은 그 자리에 없었다.
나는 그 진술을 쉽게 무시할 수 없었다. 기억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기억에 담긴 감정은 너무나 생생하고 진짜였기 때문이다.
심리학은 오래전부터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는 사실을 경고해왔다. 기억은 녹음기처럼 저장되고 재생되는 것이 아니라, 감정과 해석이 결합된 ‘재구성된 이야기’에 가깝다.
특히 외상(trauma)이 개입된 기억은 왜곡될 가능성이 더 높다.
공포, 분노, 수치심, 혼란 같은 강렬한 감정이 사건과 함께 저장될 경우, 뇌는 그 상황을 생존의 위협으로 인식한다. 이후 비슷한 자극이 주어졌을 때, 뇌는 과거의 감정을 ‘현재 상황’처럼 되살려낸다. 이것이 플래시백(flashback)이다.
수년 전, 청소년 쉼터에 머물던 한 여학생이 자신이 계부에게 성추행당했다고 신고했다. 그녀의 진술은 매우 구체적이었고, 일관되었으며, 감정적 반응까지 동반되었다. 분석자였던 나도 그 진술에 의심을 품지 않았다.
그러나 몇 달 뒤, 그녀는 “사실은 거짓이었다”고 고백했다.
“그냥… 쉼터에 있고 싶었어요. 엄마랑 계부가 싸우는 걸 매일 보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그녀는 ‘거짓’을 말한 것이지만, 그 진술은 단지 사실의 왜곡이 아니라 감정의 진실이었다. 가족 속에서의 무력감, 친구와 함께 있고 싶은 연결 욕구, 벗어나고 싶은 현실의 압박이 한데 섞여 만들어진 감정의 언어였던 것이다.
외상적 사건은 기억을 왜곡시킨다. 그 기억은 세 가지 층위에서 뒤틀릴 수 있다.
경험 (실제 일어난 사건)
감정 (그때 느꼈던 정서)
회상 (지금 떠올리는 방식)
이 세 가지가 일치할 것이라는 기대는 환상에 가깝다. 감정은 회상을 덮고, 회상은 경험을 가공한다. 결국, ‘지금의 나’가 느끼고 싶은 방식으로 기억은 다시 짜여진다.
그래서 누군가는 같은 사건을 10년 후 “그때 내가 버텨낸 시간이었어요”라고 말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난 그날 망가졌어요”라고 말한다.
나는 한 중년 여성의 심리 평가를 의뢰받은 적이 있다. 그는 수십 년 전 의붓아버지에게 성폭행당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경찰 조사는 흐지부지 종결되었고, 그녀는 성인이 된 후 재조사 요청을 했다.
그녀의 진술은 감정적으로 매우 진지했고, 수치심과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 그러나 시간과 장소, 등장인물의 순서가 계속 엇갈렸다. “거실에서… 아니, 그때 방이었을 거예요… 아, 맞다. 그 친구가 있었던가…”
검찰 측은 “기억이 이리저리 바뀌는 건 거짓의 증거”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판단할 수 없었다. 외상기억은 본질적으로 조각나 있고, 감정에 따라 기억의 순서가 재배열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 진단 기준에서도 지속적인 회피, 기억의 단편화, 과각성을 주요 증상으로 포함하고 있다.
그녀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은 오히려 외상 기억의 전형적 특징이었다.
진술의 진위를 가리는 법정이나 상담 현장에서 우리는 종종 ‘기억’과 ‘사실’ 사이의 혼동을 마주하게 된다. 특히 피해자 진술에서는 다음과 같은 심리적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회피기제: 고통스러운 기억을 직접 마주하는 대신, 다른 기억으로 바꾸거나 왜소화한다.
해리기제: 사건 자체는 기억하되, 감정이 결합되지 않아 감정 없이 이야기하는 상태.
자기합리화: ‘나는 그런 일이 없었다고 믿고 싶다’는 감정이 진술의 내용 자체를 재구성한다.
즉, 진술이 ‘불일치’하다는 사실만으로 거짓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그 사람의 심리를 모욕하는 일일 수 있다. 때로는 감정을 중심으로 한 왜곡된 기억이, 그 사람에게는 ‘가장 진실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상담실에서, 법정에서, 심리평가 보고서 앞에서 나는 늘 같은 질문 앞에 선다.
“이 사람이 말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다음 질문은 이렇다.
“그가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기억은 때때로 왜곡된다. 그러나 감정은, 감정만은 언제나 진실이다.
그 진실을 놓치지 않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기억을 다루는 이유이자 상담자의 태도일 것이다.
✒️ 작가의 메모
사실보다 강한 것은 감정이다.
진술은 때때로 진실을 감추지만, 그 감정을 따라가다 보면 오히려 더 깊은 진실에 닿게 된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기억을 만든다. 그 기억은 감정을 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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