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피해자학 : 당신이 저항하지 못한 이유
부제 : 학습된 무력감과 생존을 위한 마비
(※ 이 글은 실제 임상 및 범죄 피해 상담 사례를 토대로 재구성한 기록이다. 특정 개인을 지칭하지 않으며, 피해자가 겪는 심리적 메커니즘을 이해하기 위한 목적으로 작성되었다.)
지난 기록에서 우리는 거짓말의 언어 구조를 해부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남았다. “그렇게 뻔한 기만에 왜 속았는가.”
그러나 지난 25년간 상담실과 수사 현장에서 더 자주, 그리고 더 잔인하게 던져지는 질문은 이것이다. “왜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는가.”
이 질문은 중립처럼 보이지만, 실은 유죄 추정(Presumption of Guilt)에 가깝다. 도망치지 못했다는 사실을 곧바로 피해자의 무능, 공모, 혹은 암묵적 동의로 환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심리학과 뇌과학이 축적해 온 임상 데이터는 이 질문의 전제가 근본적으로 틀렸음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많은 피해자들은 안 나온 것이 아니라, 나올 수 없는 상태에 놓여 있었다. 그것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신경계의 비상사태였다.
상담실에서 가장 자주 듣는 문장은 분노가 아니다.
“선생님, 제가 바보 같아서 그래요. 그때 제가 좀 더 잘했더라면...”
이 문장은 수많은 피해자들의 입에서 거의 동일한 어조로 반복된다. 가정폭력, 직장 내 괴롭힘(태움), 정서적 학대, 데이트 폭력. 사건의 유형은 달라도 귀결되는 감정은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바로 깊고 축축한 자책(Self-blame)이다.
이 지점에서 흔히 관찰된다. 피해자는 가해자의 언어(“너는 구제불능이야”, “네가 문제야”)를 그대로 내면화한 채, 자신을 문제의 원인으로 재구성한다. 임상가의 눈으로 볼 때, 이는 성격의 결함이 아니라 극한의 스트레스 상황에서 나타나는 외상 후 스트레스(PTSD)의 전형적인 증상으로 사료된다.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먼(Martin Seligman)은 ‘학습된 무력감(Learned Helplessness)’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통제할 수 없는 혐오 자극에 반복적으로 노출될 경우, 개체는 이후 탈출 가능한 상황에서도 시도 자체를 포기한다는 실험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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