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한 내면, 그 너머 #13

13화

by 흔들리는 전문가

7화에서 12화까지의 기록


상담실 문이 열릴 때마다, 나는 그들의 ‘말’보다 먼저 ‘표정’을 본다. 말은 때로 감추고 왜곡되지만, 침묵은 감정의 농도가 가장 짙은 언어다. 그리고 침묵은 나를 자주 흔든다.


7화, 나는 ‘말하지 않는 내담자’의 심리를 다뤘다. 어린 시절 외상을 경험한 내담자들이 보이는 침묵, 그것은 단지 감정의 회피가 아니었다. 때로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정서의 압력, 그리고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한 기억의 단절이 그 침묵을 만든다.

한 아동 내담자는 성폭력 피해 후, 상담 내내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로르샤흐 검사에서 반복적으로 ‘닫힌 문’, ‘막힌 길’을 말하며 불안한 시선을 흔들었다. 그 아이는 말하지 않았지만, 아주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는 그 조용한 신호들을 ‘해석’이 아니라 ‘듣기’ 시작해야 했다.


8화에서는 중독에 대해 다뤘다. 중독은 반복되는 행동의 궤적이고, 그 안에는 감정의 잔재가 깃들어 있다. 알코올 의존 중년 남성 내담자는 “나는 취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어요”라고 했다. 상담을 거듭하면서 드러난 건, 중독 그 자체보다 더 오래된 고립감과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못해 터진 후회의 감정이었다. 술은 그에게 감정을 무디게 하는 도구였고, 동시에 유일하게 자신을 용납할 수 있게 해주는 장치였다. 중독의 언어는 무의식적이다. 그러나 반복은 언제나 감정을 내포하고 있다. 치료자는 그 반복을 해석해주고, 그 안에서 감정을 읽어야 한다.


9화는 상실의 이야기였다. 나는 죽음 이후의 시간을 마주하는 유가족들을 자주 만난다. 그들은 흔히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감나지 않는 것은 현실이 아니라, 감정이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후, 우리는 감정을 단순히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을 감당해야 하는 문제와 싸운다. 한 어머니는 교통사고로 자녀를 잃은 후, 매일 아이의 방을 정리하며 “아직 아이가 다녀간 것 같아요”라고 했다. 그녀에게 상실은 끝이 아니라 일상 속 감정의 동반자였다. 상담실에서 나눈 눈물은 그 감정을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함께 들어주는 과정이었다.


10화에서는 기억의 문제를 다뤘다. “기억은 왜 우리를 속이는가?”라는 질문은, 단지 인지적 오차에 대한 의문이 아니었다. 기억은 감정과 얽히고, 경험은 재해석된다. 실제 성폭력 피해를 겪은 한 청소년 내담자는 당시 상황을 떠올릴 때마다 ‘그때 내가 뭘 했더라?’가 아니라, ‘그때 내가 얼마나 무서웠더라’는 감정만을 회상했다. 우리는 진술에서 ‘사실’만을 요구하지만, 사실보다 앞서는 건 감정이다. 기억은 우리가 ‘살아낸 방식’을 반영하며, 그것은 사건보다 때때로 더 진실하다.


11화는 상담자 자신에 관한 이야기였다. ‘전문가도 상담을 받아야 할까?’ 이 질문은 나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수년간 나는 타인의 감정을 다루며, 내 감정을 한 칸 뒤로 밀어두었다. 그러나 상담은 정서적 노동이다. 특히, 피해 아동의 진술을 분석하거나 반복된 폭력의 고리를 접할 때, 나는 종종 감정의 소진을 느꼈다. 실제로 나는 상담 중 불안이 심해져 야간 불면을 겪었고, 몇 달간 감정을 추스르기 어려웠다. 결국 나는 동료 전문가에게 상담을 요청했다. 치료자도 사람이기에, 그 감정의 무게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중요한 건, 나 또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는 걸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일이었다.


12화에서는 죄책감에 관한 이야기다. 죄책감은 인간에게 가장 복잡한 감정 중 하나이며 그것은 양심의 표식이기도 하고, 때론 자신을 고립시키는 족쇄가 되기도 한다. 죄책감은 행동에 대한 반성이 아니라, ‘그 일을 한 내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판단으로 이어질 때 훨씬 더 파괴적이다. 죄책감의 이중성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잘못에 대한 책임감은 우리를 성장시키지만, 자아 전체에 대한 부정은 우리를 심리적으로 붕괴시킨다. 심리학적으로 죄책감은 회복을 위한 동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자기비난으로 굳어지면 치료는 오히려 어렵다.

죄책감은 인간다움의 증거이자, 동시에 인간성을 마비시키는 감정이다. 전문가의 시선으로 그 이중성을 구분하고 다룰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다시 회복의 서사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흔들림을 기록하는 이유

7화부터 12화까지의 여정은 결국 ‘감정’을 중심으로 한 인간의 구조에 대한 탐색이었다. 말하지 않는 내담자, 반복되는 중독 행동, 상실의 고통, 왜곡되는 기억, 상담자의 감정, 그리고 행동으로 감정을 말하는 아이들까지. 나는 그들 모두를 통해, 마음이 어떻게 표현되고 왜곡되며, 어떻게 다시 회복되는지를 경험해왔다.

그 과정에서 나는 자주 흔들렸다. 그러나 그 흔들림은 무능의 증거가 아니라, 내가 여전히 감정에 반응할 수 있다는 증거였다. 흔들림은 경계가 아니라, 공감으로 들어가는 문이었다.


✒️ 작가의 메모
말보다 감정이 먼저 도착하는 순간들이 있다. 그때, 나는 해석보다 ‘머무름’을 선택하려 한다. 감정이 떠오르는 그 자리에 함께 있는 것. 그것이 치료자의 가장 정직한 태도일지도 모른다.


� 다음 화 예고
14화 – 구상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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