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 죄책감이라는 감정의 이중성
“제가 그때, 그냥 넘어갔어야 했을까요?”
한참을 침묵하던 내담자가 조심스레 내뱉은 말이었다.
그는 성인이었고, 상담의 주제는 12년 전 동생과의 다툼이었다.
사소한 말다툼이었지만, 그는 화를 이기지 못하고 동생을 손으로 밀쳤고, 그 뒤로는 동생과 눈도 잘 마주치지 못했다.
“동생은 벌써 잊었을 텐데, 왜 저는 아직도 이 기억이 떠오르는 걸까요.”
나는 그 질문을 받아들고 잠시 머뭇거렸다. 그것은 단지 ‘기억의 끈질김’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잘못’보다 ‘관계’를 놓친 자신을 오래도록 후회하고 있었다.
죄책감은 도덕의 감정이 아니다.
죄책감은 인간관계의 감정이다.
나는 내담자들에게 종종 “죄책감이 든다는 건, 아직 그 관계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뜻이에요”라고 말한다.
죄책감은 내가 여전히 타인의 감정, 내 행동이 미친 영향, 그 관계의 의미를 기억하고 있다는 표시다.
오히려 관계가 단절되었거나, 혹은 누군가를 완전히 무시하게 되면 죄책감은 사라진다.
가정폭력 가해자 중에는 놀랍게도 죄책감을 거의 느끼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종종 “나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며 정당화를 반복한다.
하지만 피해자는 다르다. 피해자는 종종 “내가 뭔가를 잘못해서 그랬나?”라고 자책한다.
상처받은 쪽이 죄책감을 느끼는 모순. 그것이 죄책감이라는 감정의 복잡한 구조다.
몇 년 전, 8세 여자아동의 상담을 맡은 적이 있었다.
피해자는 반복적인 성추행 피해를 경험했다.
그런데 상담 초기, 아이는 나를 똑바로 보지 못한 채 작게 중얼거렸다.
“그때 제가 그냥 도망쳤어야 했는데… 그럼 엄마가 안 울었을 텐데…”
이 한마디는 그 아이가 감당해온 세계의 무게를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아이는 자신의 피해를 말하면서도, 엄마의 눈물을 먼저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이 모두 자기 탓이라고 느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의 가장 고통스러운 지점 중 하나는 죄책감이다.
폭력의 피해자가 되어서도 ‘내가 잘못했다’는 인식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단순한 판단의 오류가 아니다.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인간은 ‘통제감’을 되찾기 위해, 자기 자신을 원인으로 만들어버린다.
나는 상담실 안에서 수없이 많은 죄책감과 마주해왔다.
그 죄책감은 때로는 나를 향했고, 때로는 가족을 향했고, 때로는 세상 전체를 향했다.
특히, 완벽주의 성향이 강한 내담자들은 작은 실수에도 과도한 죄책감을 느낀다.
그들은 ‘실수’와 ‘실패’를 구분하지 못한 채, ‘잘못함 = 나쁜 사람’이라는 도식을 따라간다.
이때 상담자는 “그건 잘못이 아니에요”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 속에는 어떤 관계가 있었나요?”라고 묻는 것이 더 중요하다.
죄책감을 해소하는 상담이 아니라, 죄책감을 재구성하는 상담.
그것이 진정한 ‘심리적 회복’의 출발점이다.
어떤 날은, 내담자의 죄책감이 내 마음을 찌르기도 한다.
어떤 내담자가 아이를 혼내고 난 뒤 죄책감에 밤잠을 이루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털어놓았을 때,
나 역시 나의 아이에게 무심히 던졌던 말이 떠올랐다.
“이게 다 너 잘 되라고 그러는 거야…”
그 말이 과연 ‘잘 되게’ 만든 걸까.
상담자의 자리에서, 나는 전문적인 개입을 해야 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한 명의 부모’로서, 나 또한 죄책감의 가장자리에 서 있었다.
흔들림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나는 그 흔들림 안에서, 나의 인간다움이 다시 숨을 쉰다고 믿는다.
죄책감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 감정이 우리를 지배하도록 둘 필요도 없다.
죄책감은 ‘과거를 고치기 위한 감정’이 아니라,
‘지금부터 어떻게 살고 싶은지’ 묻는 감정이다.
그 감정을 부정하지 않고, 억누르지도 않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법을 배우는 것.
그것이 상담의 본질이다.
✒️ 작가의 메모
죄책감은 결함의 증거가 아니다.
그것은 내가 여전히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그 감정 속에 ‘인간다움’이 있다면, 우리는 너무 늦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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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2 요약. 마주한 내면, 그리고 그 너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