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죽음이 노크했다 2]
천재적인 작곡 실력과 독보적인 음색으로 대중을 사로잡은 싱어송라이터 C. 그의 음악은 늘 '고독'과 '불안'을 아름답게 노래한다는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화려한 조명이 꺼지고 무대 뒤 대기실로 돌아오는 순간, C는 대중이 모르는 처절한 사투를 시작한다.
그의 공황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악보를 그리다 펜을 떨어뜨릴 때, 혹은 아무도 없는 새벽 작업실에서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가 들릴 때. 심장이 목구멍까지 차오르고 온몸의 근육이 경직되는 발작이 시작되면, 그는 습관적으로 서랍을 연다. 그 안에는 의사의 처방 없이 구한 알약들과 독한 위스키가 들어 있다.
"이게 없으면 저는 숨을 쉴 수가 없어요. 공황이 오면 죽을 것 같은데, 이걸 마시고 먹으면 잠시나마 세상이 조용해지거든요."
C는 공황의 공포를 잊기 위해 '자가 처방(Self-medication)'이라는 함정에 빠져 있었다. 그는 그것을 영감을 얻기 위한 방황이라 포장했지만, 실상은 중독이라는 늪에 발을 담근 채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중독심리사이자 임상가로서 C와 마주했을 때, 그의 진술은 온통 '자기 합리화'와 '현실 부정'으로 가득했다.
"선생님, 저는 중독자가 아니에요. 단지 이 지옥 같은 공포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을 뿐이에요. 공황이 안 오면 저도 이런 거 안 해요."
하지만 그가 주장하는 주호소 문제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결과는 정반대였다. 그가 선택한 술과 약물은 공황을 치료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뇌의 보상 회로를 망가뜨려 공황에 더 취약한 상태를 만들고 있었다. 중독학적 관점에서 볼 때, 그는 공황이라는 '일시적 폭풍'을 피하려다 중독이라는 '영구적인 해일'을 불러들인 격이었다.
25년 동안 수많은 중독 사례를 분석해 온 나는 그에게 잔인하지만 정직한 진실을 말해주어야 했다. 당신이 안식처라고 믿었던 그 약과 술이, 사실은 당신의 뇌를 가장 먼저 파괴하고 있는 독극물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C의 치료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불안은 무조건 없애야 하는 나쁜 것"이라는 그의 강박적인 인지 도식이었다.
인지행동치료(CBT)를 통해 우리는 그의 '핵심 신념'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오류: "불안이 느껴지면 나는 무능한 아티스트다. 무조건 술이나 약으로 이 감정을 차단해야 한다."
재구성: "불안은 예술가로서 가질 수 있는 예민한 감각의 일부다. 느껴지는 대로 두어도 죽지 않으며, 술 없이도 이 감정은 지나간다."
그는 공황이 올 때마다 '도망치는 연습' 대신 '머무르는 연습'을 했다. 불안이 파도처럼 밀려올 때, 약통을 찾는 대신 자신의 호흡을 관찰하고 감정의 파고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용(Acceptance)의 과정을 거쳤다. 인지치료는 그에게 '가짜 평화'가 아닌 '진짜 회복'으로 가는 지도를 그려주었다.
C는 역설적으로 "진짜 약물치료"를 가장 두려워했다. "이미 중독된 것 같은데 정신과 약을 또 먹으라고요?"라며 거부감을 보였다. 하지만 전문가로서 나는 단호하게 약물치료의 병행을 권고했다.
중독된 상태의 뇌는 이미 정상적인 조절 능력을 잃었다. 술과 불법 약물로 망가진 뇌의 화학적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검증된 전문의의 처방에 따른 정교한 약물치료가 반드시 필요하다.
기전: 항우울제(SSRI)는 뇌의 세로토닌 수치를 안정시켜 술에 대한 갈망을 줄이고 공황의 빈도를 낮춘다. 이는 뇌의 가소성을 회복시켜 스스로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준다.
약물치료는 C에게 술과 약 없이도 '평온한 뇌'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게 해주었다. 그것은 의지력의 문제를 넘어선 생물학적 치유였다. 정교한 약물 조절을 통해 뇌의 수용체들이 제 기능을 찾기 시작하자, 비로소 그의 인지치료도 속도를 낼 수 있었다.
치료를 시작한 지 1년, C는 더 이상 대기실에서 술병을 찾지 않는다. 가끔 공황의 그림자가 비칠 때면, 그는 조용히 눈을 감고 EMDR 치료 과정에서 배웠던 '안전지대'를 떠올린다.
"예전엔 취해 있어야 곡이 써진다고 믿었어요. 하지만 아니더라고요. 맨정신으로 마주하는 불안이 오히려 저를 더 깊은 음악의 세계로 인도해주고 있습니다."
공황은 그를 중독으로 밀어넣은 악마가 아니라, 그가 쓰고 있던 수많은 가면을 벗기고 '진짜 자신'을 만나게 해준 고통스러운 스승이었다. 그는 이제 가짜 안식처를 떠나, 자신의 심장 소리를 정면으로 마주하며 새로운 곡을 쓰고 있다.
글: 보건복지부 정신건강임상심리사1급, 임상심리·범죄심리·진술분석·중독심리 등 25년 차 전문가의 시선으로, 중독의 늪에서 공황의 터널을 지나 빛으로 나아가는 이들의 여정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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