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부산 돌려차기, 그놈의 뇌는 정말 멈췄을까?
2022년 5월 22일 새벽 5시. 평범한 오피스텔 복도는 한순간에 생지옥으로 변했다. 건장한 체격의 남성 A가 일면식도 없는 여성의 머리를 향해 12차례에 걸친 무차별 폭행을 가했다. 이 사건이 대중의 공분을 산 것은 단지 폭행의 잔혹함 때문만이 아니었다. CCTV 사각지대에서 벌어진 '사라진 7분', 그리고 그 이후 가해자가 보여준 기괴하리만치 차분한 반응 때문이었다.
진술분석가로서 내가 가장 주목한 장면은 법정에서의 그의 태도다. 그는 재판 내내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판사가 "왜 그랬느냐"고 묻자 너무나도 매끄럽게 답했다.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경찰서였습니다."
이 문장은 범죄자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전형적인 '회피적 서사'다. 25년간 수천 명의 피의자를 마주해온 내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이 짧은 한마디는 단순한 망각이 아니라, 자신을 피해자로 둔갑시키려는 아주 정교한 심리적 공성전의 시작이다.
가해자 측이 내세운 핵심 논리는 '알코올성 블랙아웃'과 심신미약이었다. 임상심리학적으로 블랙아웃은 뇌의 해마(Hippocampus)가 단기 기억을 장기 기억으로 전환하는 기능을 멈추는 현상이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블랙아웃 상태에서도 '기능적 인지'는 작동한다는 점이다.
가해자의 행적을 다시 복기해보자.
표적의 일관성: 그는 피해자를 15분간 추적했다. 술에 취해 의식이 없다면 불가능한 집요함이다.
타격의 정확도: 그는 피해자의 가장 취약한 부위인 머리만을 노렸다. 이는 고도로 집중된 공격 본능의 결과다.
증거 인멸의 지능: 폭행 직후, 그는 피해자를 어깨에 메고 CCTV가 닿지 않는 통로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피해자의 하의를 탈의시킨 정황은 그가 당시 자신의 '욕망'과 '처벌에 대한 공포'를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음을 증명한다.
진술분석 기법 중 하나인 SVA(Statement Validity Assessment) 관점에서 볼 때, 그의 진술은 '논리적 일관성'이 결여되어 있다. 행동은 지극히 목적 지향적인데, 진술만 목적을 상실한 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전형적인 '의도적 누락'에 해당한다.
이 사건에서 소름 돋는 지점은 가해자가 자신의 SNS와 구치소에서 보인 태도다. 그는 "내 나이 30대인데 인생이 끝났다"며 피해자에 대한 원망을 쏟아냈다. 심리학적으로 이는 '투사(Projection)'와 '자기중심적 왜곡'의 극치다.
그는 자신의 죄를 마주하는 대신, 자신을 '재수 없게 걸린 피해자'로 설정했다. "나는 기억이 안 나는데, 세상이 나를 악마로 만든다"는 서사를 스스로 믿어버리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이는 반사회적 인격장애(ASPD) 성향을 가진 이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특성으로,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기보다 자신의 사회적 상실에만 몰두하는 모습을 보인다.
진술 분석 과정에서 이런 자들은 대개 질문을 받았을 때 다음과 같은 신체 신호를 보낸다.
시선의 고정: 거짓말을 할 때 눈을 피한다는 통념과 달리, 고지능 범죄자들은 상대의 반응을 살피기 위해 오히려 눈을 똑바로 쳐다본다(Aggressive Eye Contact).
언어적 지체: 질문과 답변 사이의 미세한 간극(Latency). 뇌가 사실을 인출하는 대신 '거짓 시나리오'를 검토하는 데 걸리는 0.5초의 시간이다.
진실은 말해진 것보다 말해지지 않은 것 사이에 숨어 있다. 나는 그가 "기억 안 난다"고 말할 때의 목소리 톤과 호흡에 집중했다. 진정으로 기억을 잃은 사람은 당혹감과 수치심을 느끼며 "어떻게든 기억해내고 싶다"는 의지를 보이지만, 그는 "모른다는데 왜 자꾸 묻느냐"는 식의 방어적 태도를 보였다.
이는 심리학적으로 '통제적 부인(Controlled Denial)'이라 한다. 기억이 안 나는 것이 아니라, 기억의 일부분을 선택적으로 봉인함으로써 법적 처벌의 근거를 무력화시키려는 고도의 심리전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이 정도의 흉악범을 만날 일은 드물겠지만, '기억을 조작하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다. 배우자가 바람을 피우거나, 동료가 실수를 덮을 때 그들은 부산 돌려차기 가해자와 똑같은 메커니즘을 사용한다.
거짓말을 구별하는 전문가의 팁
역순 진술(Reverse Order Technique): 사건을 시간 순서가 아닌 거꾸로 말해보라고 하라. 거짓 시나리오를 짠 뇌는 역순으로 정보를 인출할 때 과부하가 걸려 모순을 드러낸다.
감정의 불일치: 슬픈 이야기를 하는데 눈 주변 근육은 움직이지 않고 입만 울상을 짓고 있다면, 그것은 '연기'다.
디테일의 비대칭: 중요하지 않은 주변 상황은 지나치게 자세히 말하면서, 결정적인 순간만 "글쎄요", "갑자기 기억이..."라고 한다면 99% 거짓이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은 우리 사회에 '묻지마 범죄'의 공포를 심어주었지만, 동시에 범죄자의 비겁한 언어가 어떻게 법망을 기만하려 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진술분석가로서 나의 임무는 그들의 굳게 다문 입술 뒤에 숨은 진실을 끄집어내는 것이다. 오랜 세월 동안 내가 배운 가장 큰 교훈은, 아무리 정교하게 설계된 거짓말이라도 '신체의 정직한 반응'과 '행동의 흔적'까지 지울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다음 편에서는 이보다 더 정교하고 세련된 가면을 쓴 엘리트, 제주도 전 지검장 사건을 통해 '사회적 지위가 만든 괴물 같은 기만'에 대해 파헤쳐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