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실, 그 흔들림의 기록: 전문가의 고백

1~-6화 요약

by 흔들리는 전문가

프롤로그: 익숙함의 균열

상담실. 나는 의자에 앉아 내담자를 마주본다. 내 시선 너머에는 평가자, 치료자, 그리고 공감하는 한 인간으로서의 내가 함께 존재한다. 정신건강임상심리사로서 중독과 범죄 심리를 평가하고 상담 치료를 수행하는 것이 내 일상이다. 내담자의 감정을 해석하고 마음의 구조를 언어로 정리하는 일은 익숙하다 못해 능숙해졌다. 하지만 문득, 그 익숙함에 균열이 갈 때, 나는 흔들린다. 예상치 못한 감정이 나를 덮치고, 내담자의 이야기보다 나 자신의 감정이 앞설 때가 있다. 이 일이 고통스러울 만큼 의미 있고, 감정적으로 몰입되는 순간들이다. 그럴 때면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전문가이기 이전에, 얼마나 솔직한 인간이었는가?"


나는 정신과 병원, 경찰청 진술녹화실, 중독 회복 클리닉, 군 병원 상담실, 민간 심리상담센터 등 수많은 공간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왔다. 그 이야기들은 때로는 처절했고, 때로는 무표정했으며, 때로는 연극처럼 과장되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형태이든 그 안에는 감정이 있었고, 나는 그 감정을 읽어야만 했다. 공황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분노, 우울, 죄책감 같은 감정들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그것들은 단지 '그 사람의 것'이 아니라, 내 안에도 존재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1화: 흔들리는 치료자의 고백

"선생님, 저 이제 괜찮아요. 친구도 많고, 요즘은 뭐… 그냥 그래요."


수아(가명), 명랑한 웃음 뒤에 슬픔을 숨긴 여고생이었다. 그녀의 웃음은 보호막이었고, 타인을 위한 배려이자 자기 방어였다. 나는 그녀의 말보다 주머니 속에서 계속 손톱을 물어뜯는 손과 거스러미로 빨갛게 부어있는 열 손가락 끝에 집중했다. 몇 주 후, 그녀는 조심스럽게 털어놓았다. "사실, 아무도 내가 진짜 우울한 줄 몰라요. 괜히 걱정하게 하기 싫어서요." 나는 수아의 사례를 통해 웃음이 종종 슬픔의 반대말이 아니라 그 그림자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상담실의 나는 전문가이자 인간으로서 내담자의 감정을 마주한다. 익숙함 속에서 찾아오는 예기치 않은 감정적 동요는 내가 솔직한 인간이었는지를 묻게 한다. 학창 시절의 나와 닮은 청소년, 폭력 너머 애착을 보인 가해자, 알코올 중독자의 외로움, PTSD 장병의 굳은 표정 속에서 나 자신의 경험이 투영될 때, 나는 흔들린다.

이 흔들림은 약점이 아닌 나의 진심이자 공감의 증거다. 감정을 통제하려 하기보다 인식하고 다루는 것이 진정한 전문가의 능력임을 깨닫는다.


오늘도 나는 흔들리는 마음으로 내담자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며, 이 흔들림이야말로 내가 이 자리에 존재하는 이유임을 확인한다. 흔들림은 내가 아직 인간적이며, 공감할 수 있다는 뜻이다.


2화: 진술은 진실과 다르다

사람은 진실을 그대로 말하지 않는다. 특히 '범죄'와 관련된 진술일 때, 말은 더 조심스럽고, 더 계산적이며, 때로는 너무나 인간적이다. 나는 진술분석전문가로서 수많은 진술서를 읽고 직접 분석해 왔다. 피의자의 말뿐 아니라 피해자의 진술, 참고인의 서술까지도 하나의 텍스트처럼 해체하고 해석한다. 진술 속에는 폭력과 회피, 죄책감과 방어, 자기정당화와 분열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한번은 아내에게 수년간 상습적인 폭력을 휘둘렀던 40대 남성 피의자의 진술서를 분석했다. 그는 구속 직후에도 "나는 손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진술했지만, 아내의 사진과 진단서가 그 말을 반박했다. 며칠 뒤 그는 "말다툼 중에 손이 올라갔을 뿐이다. 일부러 때린 건 아니다"라고 진술을 바꿨다. 이러한 진술은 명백한 왜곡이지만, 동시에 '자기 보존'을 위한 심리적 타협이기도 하다. 그는 '폭력적인 남편'이라는 정체성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이다.

특히, 성범죄자나 가정폭력 가해자 진술에서는 감정이 차단된 형태가 자주 등장한다. 문장은 건조하고 단답형이며, 눈빛은 공허하거나 딱딱하다. 이는 자기혐오, 수치, 죄책감을 직면하기 어려운 내면이 만들어낸 해리성 방어다. 감정을 빼낸 진술은 진실에서 멀어지지만, 동시에 그 감정 회피 자체가 중요한 심리적 단서가 된다.


3화: 거짓 진술, 그러나 진짜였던 마음

중학교 2학년 여학생, 침묵을 자주 끊어 삼키며 울음을 눌러가던 모습. 그녀는 계부에게 반복적으로 성추행을 당했다고 말했다. 진술은 구체적이었고 일관되었으며 맥락과 감정은 적절히 동반되어 있었다. 그 학생의 진술을 중심으로 조사가 진행되었고 계부는 아이와 즉시 분리 조치되었다. 경찰도, 변호사도, 진술 분석을 하던 나도 그 말에 '속았다'.

약 6개월 후 그 여학생은 자신의 진술이 거짓이었다고 자백했다. 친한 친구가 청소년 쉼터에 있었고 그 친구와 함께 있고 싶었다는 이유, 그리고 집에서 반복되던 엄마와 계부의 잔소리와 감정적 억압을 피하고 싶었다는 이유였다. "성추행당했다고 하면, 나도 쉼터에 들어갈 수 있잖아요." 그리고 그 여학생은 조용히 말했다. "그 친구가 얼마 전에 자살했어요. 그 일을 겪고 나니 제가 너무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아서… 말해야 했어요."


나는 지금도 그때의 진술 내용을 기억한다. 세세하고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 "아래에서부터 이불을 들추고 바지를 내리고 '찰칵' 하는 카메라 찍는 소리가 났어요…"와 같은 계부의 행동 묘사, 감정을 따라 흐르던 눈물과 그 눈물을 삼키는 행동. 이것은 대부분 거짓 진술의 조건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러나 학생은 놀라울 정도로 사실처럼 거짓을 구성했다. 왜냐하면, 그 여학생의 "감정은 진짜였기 때문"이다. 학생은 억눌린 가족 속에서의 스트레스, 심리적 고립, 부모에 대한 분노, 친구와의 동조 욕구를 모두 '진술'이라는 방식으로 표출한 것이다. 말은 거짓이었지만, 그 말에 담긴 감정은 진짜였다.


거짓 진술을 하는 사람의 심리적 특성

1. 심리적 동기

ⓐ자기 보호 욕구: 처벌, 비난,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거짓 진술을 선택. 예를 들어, 실수를 숨기거나 책임을 회피하려는 경우.

ⓑ갈등 회피: 대인관계에서 갈등을 피하거나 원만한 관계 유지를 위한 거짓말

ⓒ사회적 인정 욕구: 자신의 이미지를 좋게 보이거나,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해 사실을 왜곡

ⓓ물질적·실질적 이득 추구: 금전적 이익, 권력, 명예 등을 얻기 위해 거짓 진술

ⓔ자존감 유지: 자신의 약점이나 실패를 감추고, 긍정적인 자아상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

ⓕ타인 조종 및 통제 욕구: 상대방을 속여 자신의 의도대로 상황을 이끌고자 하는 심리


2. 행동 패턴 및 비언어적 특징

ⓐ불안·긴장 신호: 거짓말을 할 때 심장 박동, 혈압, 땀, 얼굴 홍조 등 교감신경계 활성화가 나타나며, 이는 폴리그래프(거짓말 탐지기)에서 측정 가능한 생리적 반응이다.

ⓑ시선 회피: 상대방과의 눈 맞춤을 피하거나, 시선을 자주 돌린다

ⓒ비언어적 불일치: 말과 표정, 몸짓이 어색하게 어긋나거나 미세한 표정 변화(미세표정)가 나타난다

ⓓ반복적·불필요한 설명: 진술이 불필요하게 장황하거나 세부사항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일관성 부족: 진술의 논리적 일관성이 떨어지거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내용이 바뀌는 경우가 많다

ⓕ행동 지연: 질문에 대한 답변이 느려지거나 대답 전 머뭇거림이 늘어난다(실제 실험에서 거짓 진술 시 키보드 입력 속도가 느려지고 정지 시간이 증가한 결과가 보고됨)

ⓖ자기방어적 태도: 공격적이거나 방어적인 언행, 혹은 필요 이상으로 자신의 진실성을 강조하는 모습이 보인다.

실제 사례

사례 1: 아동의 자기 보호형 거짓 진술

어린아이가 부모가 아끼는 물건을 망가뜨렸을 때, “나는 안 그랬어”라고 시치미를 떼는 경우가 흔하다. 이는 처벌에 대한 두려움, 자기 보호 욕구가 심리적 동기로 작용한 사례라고 할수 있다

사례 2: 법정에서의 거짓 진술

피고인이 범죄 사실을 부인하며 “그 시간에 나는 집에 있었다”고 거짓 알리바이를 진술하는 경우, 실제로는 긴장, 시선 회피, 불필요한 세부 묘사, 진술의 반복적 변경 등이 관찰된다. 이러한 행동은 거짓 진술의 전형적 행동 패턴으로 연구에서 보고되고 있다

사례 3: 직장 내 성과 과장

직원이 자신의 실적을 실제보다 부풀려 보고하며 상사와의 대화에서 시선을 회피하거나 질문에 머뭇거리며 세부적인 설명을 반복하는 모습. 이는 사회적 인정 욕구와 실질적 이득 추구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사례하고 할수 있다.



4화: 말하지 못한 감정, 침묵과 회피의 언어

상담실에는 많은 말이 오간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말을 한 말보다, 말하지 못한 말에 있다. 상담자가 내담자의 말을 듣는 것처럼 보일 때, 실제로는 그 '사이'를 듣고 있다. 말과 말 사이의 공백, 고개 숙인 침묵, 망설임, 그리고 때때로 터지는 웃음 속에 숨어 있는 감정들. 말은 마음의 대표이지만, 모든 마음이 말로 표현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장 깊은 감정일수록, 언어화되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하다. 그 말하지 못한 감정은 침묵이라는 형태로, 회피라는 전략으로, 혹은 농담이라는 가면으로 드러난다.


한 성인 여성 내담자는 상담 초반에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질문을 하여도 짧은 대답으로 돌아왔고, 침묵이 길어졌다. 나는 그 침묵을 깨지 않고 "말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지금 느끼는 걸 그대로 가져오셔도 됩니다"라고 말했다. 몇 회기 후, 그녀는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사실 예전에 상담을 받을 땐 자꾸 말을 시켜서 더 불편했어요. 말로 표현하면, 그 감정이 너무 커질까 봐 무서웠어요." 그녀에게 침묵은 감정을 봉인하는 장치였다. 말하는 순간, 마음속 상자 안에 있던 감정들이 흘러넘칠까 두려웠던 것이다.


5화: 감정은 어디에서 오는가

감정은 신체에서 시작된다. 공황장애로 내원한 30대 초반 남성은 엘리베이터만 타면 숨이 막히고, 가슴이 답답하며, 금방이라도 기절할 것 같다고 했다. 겉보기엔 멀쩡했고, 표정도 담담했다. 그러나 그의 신체 반응이 곧 감정의 신호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이 남성은 어린 시절 가정에서의 강압적인 아버지와의 경험이 반복적으로 몸에 새겨져 있었다. 그는 분노를 표현하지 못했고, 공포를 말하지 못했으며, 감정을 말로 표현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감정은 말이 되지 못하고, 공황이라는 방식으로 몸에서 먼저 터져 나왔다.

감정은 현재에 나타나지만, 그 뿌리는 과거에 있다.


초등학교 5학년 아동은 친구의 사소한 말에도 과민하게 반응하고, 교실에서 자주 울음을 터뜨렸다. 담임교사는 이를 유난스럽다고 했지만, 아동은 어릴 적 부모의 폭력과 이혼을 겪었다. 친구의 말 속에 숨어 있는 약간의 비난조차, 아동에게는 과거의 모욕과 공포를 떠올리게 하는 '방아쇠'였다. 그 감정은 지금 여기의 것이 아니었다. 과거의 감정이 현재를 점령한 것이다.


상담에서 침묵의 이유

상담 장면에서 나타나는 침묵, 과민 반응, 불안 행동은 내담자의 심리적 방어, 미해결 감정, 과거 경험에서 비롯된 도식, 그리고 현재의 인지적 해석 등 다양한 이유가 있다.


6화: 아이의 문제행동, 감정의 말투로 들리다

초등학교 2학년 남자아이. ADHD 진단을 받은 이 아이는 감정 조절이 잘 되지 않고, 수업 중 산만하며 친구들과의 마찰도 잦았다. 선생님은 학부모에게 "혼내도 전혀 반응이 없어요. 오히려 웃거나 다른 말로 넘겨요"라고 전달했다. 처음 만났을 때, 아이는 한참 동안 의자에 앉지 않았다. 검사지를 건네자, 휙 던지듯 넘기며 "이거 다 아는 거예요"라고 했다. 그러나 검사가 진행될수록 집중력이 떨어졌고, 틀린 문제에 대해선 "이건 원래 이런 거예요"라며 정당화를 반복했다. 외면은 거침없고 활달했지만, 자세히 보면 그 안에는 '불안'이 있었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방어, 지적당했을 때 반응 대신 무표정하게 넘기려는 태도, 다른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겪는 충돌은 모두 '나는 괜찮은 아이'라는 외피 아래 가려진 불안감의 표출이었다.


이 아이의 JTCI(기질 및 성격 검사) 결과는 매우 상반된 특성을 보여줬다. 자극추구가 99로 매우 높았고, 위험회피는 21로 낮았다. 연대감은 9로 극히 낮았으나 자기초월은 94로 높았다. 감각적 자극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타인과의 감정적 연결은 어려운 상태. 즉, 외부 세계와 접촉하려는 욕구는 크지만 정서적 안정감이나 타인의 반응을 읽어내는 능력은 제한적이다. 그 사이에서 아이는 불균형한 에너지로 살아간다.


로르샤흐 검사에서 이 아이는 총 18개의 반응을 보였다. Zf=16, Zd=10.5로 매우 높은 수준의 정보 처리 시도를 보였고, 이는 과도한 자극 민감성, 정서적 흥분 상태를 시사한다. D=0, Adj D=0, EA=2.5, es=4의 구성은 상황적 스트레스에 취약하며, 자율적 조절이 어려운 상태를 나타낸다. 즉, 감정이 쉽게 유입되고, 그것을 처리하거나 정리하는 능력이 부족한 상태다. 이 아이는 무표정하거나 웃는 얼굴로 자신의 감정을 감추지만, 실제 내면은 경계와 불안으로 가득 차 있다.


나는 이 아이를 떠올릴 때면 한 가지 장면이 자꾸 생각난다. 상담이 끝난 후 아이는 내 책상에 있던 모래시계를 유심히 보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이게 끝나면, 또 시작이에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문을 나섰다. 그 말은 단순한 질문이 아니었다. 나에게는 이렇게 들렸다. "이 시간이 끝나면, 나는 다시 그 힘든 현실로 돌아가야 해요."


에필로그: 흔들림은 나의 진심

나는 여전히 상담실에서 진술 분석을 하며 또는 심리평가보고서를 쓰며 흔들린다. 그러나 그 흔들림 덕분에 나는 내담자의 감정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나는 오늘도 다시 자리에 앉는다. 전문가로서 그리고 사람으로서 흔들리는 마음이 나를 이 자리에 있게 만든다. 흔들림은 내 약점이 아니라, 나의 진심이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다. 흔들릴 수 있는 감정이 있다는 것은, 내가 아직 공감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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