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전문가의 심리노트 #6

6화 – 아이의 문제행동, 감정의 말투로 들리다

by 흔들리는 전문가

문제행동이라는 말은 너무 단정적이다. 아이는 문제를 일으키려는 의도로 행동하는 게 아니다. 그들은 단지 표현하는 것이다. 말이 서툰 아이들은 행동으로 감정을 말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문제행동’이라 부르기 전에, 그 행동이 어떤 감정을 담고 있는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


초등학교 2학년 남자아이. ADHD 진단을 받은 이 아이는 감정조절이 잘 되지 않고, 수업 중 산만하며 친구들과의 마찰도 잦았다. 교실에서는 주의를 끌기 위해 엉뚱한 행동을 하고, 친구의 연필을 훔쳐서 놀리거나 장난을 걸기도 했다. 선생님은 어쩔 수 없이 학부모에게 “혼내도 전혀 반응이 없어요. 오히려 웃거나 다른 말로 넘겨요”라고 전달했다.

처음 만났을 때, 아이는 한참 동안 의자에 앉지 않았다. 검사지를 건네자, 휙 던지듯 넘기며 “이거 다 아는 거예요”라고 했다. 그러나 검사가 진행될수록 집중력이 떨어졌고, 틀린 문제에 대해선 “이건 원래 이런 거예요”라며 정당화를 반복했다.

외면은 거침없고 활달했지만, 자세히 보면 그 안에는 ‘불안’이 있었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방어, 지적당했을 때 반응 대신 무표정하게 넘기려는 태도, 다른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겪는 충돌은 모두 ‘나는 괜찮은 아이’라는 외피 아래 가려진 불안감의 표출이었다.


문제행동이라는 언어의 재해석

행동은 감정의 말투다. 아이가 던지는 말보다 중요한 건, 그 말의 억양과 리듬처럼, 아이의 행동에 담긴 정서적 흐름을 읽는 것이다. 예컨대, 수업시간에 일어나 돌아다니는 행동은 단순한 산만함이 아니라 ‘나는 지금 너무 지루해요’라는 신호일 수 있다. 친구에게 장난을 거는 행위는 ‘나 좀 봐줘’ 혹은 ‘나랑 연결돼줘’라는 욕구의 표현일 수 있다.


어른의 언어로 재해석하지 않으면, 아이는 ‘말이 안 통하는 존재’가 된다. 그러나 아이의 세계에서는 그들의 방식으로 충분히 말하고 있다. 다만, 그 말이 성숙하지 않은 방식일 뿐이다.

이 아이의 JTCI(기질 및 성격 검사) 결과는 매우 상반된 특성을 보여줬다. 자극추구가 99로 매우 높았고, 위험회피는 21로 낮았다. 연대감은 9로 극히 낮았으나 자기초월은 94로 높았다. 감각적 자극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타인과의 감정적 연결은 어려운 상태. 즉, 외부 세계와 접촉하려는 욕구는 크지만 정서적 안정감이나 타인의 반응을 읽어내는 능력은 제한적이다. 그 사이에서 아이는 불균형한 에너지로 살아간다.


로르샤흐가 말해주는 내면

이 아이는 로르샤흐 검사에서 총 18개의 반응을 보였다. Zf=16, Zd=10.5로 매우 높은 수준의 정보 처리 시도를 보였고, 이는 과도한 자극 민감성, 정서적 흥분 상태를 시사한다. D=0, Adj D=0, EA=2.5, es=4의 구성은 상황적 스트레스에 취약하며, 자율적 조절이 어려운 상태를 나타낸다. 즉, 감정이 쉽게 유입되고, 그것을 처리하거나 정리하는 능력이 부족한 상태다.

Form Quality에서 FQ+는 0, o가 4, u가 13으로 비전형적인 반응이 많아 현실판단이 왜곡될 위험도 있다. 특히 W:D:Dd 비율이 16:0:2로 ‘전체’를 중심으로 세상을 파악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이는 상황의 세부를 파악하기보다 감각적으로 전체를 경험하려는 경향으로, 산만함과 연결되기도 한다.

Hypervigilance Index(HVI)도 양성으로, 과민하고 방어적인 정서 상태를 나타낸다. 외부의 평가나 지적에 과도하게 민감하게 반응하고, 위협을 과대평가할 수 있다. 이 아이는 무표정하거나 웃는 얼굴로 자신의 감정을 감추지만, 실제 내면은 경계와 불안으로 가득 차 있다.


평가자로서 내가 보는 감정의 흐름

이 아이는 분명히 힘들어하고 있다. 문제는 그 힘듦을 말로 표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는 주의력결핍도 있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정서적 표현의 빈곤’이다. 감정 단어가 적고, 자신의 상태를 언어화하는 능력이 부족하며, 그래서 더더욱 행동으로 말한다.

그래서 감정은 폭발하거나, 억제되거나, 때로는 비틀어진 형태로 나타난다. 그것이 바로 문제행동이다. 그러나 이는 문제라기보다, 아이가 감정을 표현할 언어를 아직 충분히 가지지 못했다는 신호다.


전문가가 아닌 한 사람으로서

나는 이 아이를 떠올릴 때면 한 가지 장면이 자꾸 생각난다. 상담이 끝난 후 아이는 내 책상에 있던 모래시계를 유심히 보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이게 끝나면, 또 시작이에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문을 나섰다. 그 말은 단순한 질문이 아니었다. 나에게는 이렇게 들렸다. “이 시간이 끝나면, 나는 다시 그 힘든 현실로 돌아가야 해요.”

나는 그 아이가 감정을 말로 표현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그의 말에 귀 기울이고, 그의 행동을 ‘감정의 말투’로 듣는 어른들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 작가의 메모
아이의 문제행동은 해결의 대상이기 이전에 이해의 대상이다. 말이 부족한 시기, 아이는 행동으로 말한다. 그 말에 귀를 기울인다면, 우리는 단지 ‘문제’를 본 것이 아니라, ‘마음’을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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