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전문가의 심리노트 #5

5화 – 감정은 어디에서 오는가

by 흔들리는 전문가

상담 장면에서 우리는 자주 묻는다. "지금 어떤 감정이 드시나요?" 그러나 정작 그 감정이 어디에서 오는지는 잘 설명되지 않는다. 감정은 단순히 자극에 대한 반응인가, 아니면 마음 깊은 곳의 기억과 연결된 결과물일까.

나는 종종 감정은 '심리적 지도' 같다고 느낀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며, 그 사람의 삶의 방향과 심리적 위치를 보여준다. 그 지도를 읽는 것이 나의 일이다. 감정이 나타나는 위치, 강도, 그리고 그것이 억눌렸는지 분출되는지를 통해, 나는 그 사람의 내면에 어떤 지형이 있는지를 파악하려 한다.


감정은 신체에서 시작된다

한 번은 공황장애로 내원한 30대 초반 남성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엘리베이터만 타면 숨이 막히고, 가슴이 답답하며, 금방이라도 기절할 것 같다고 했다. 겉보기엔 멀쩡했고, 표정도 담담했다. 그러나 나는 그의 신체 반응이 곧 감정의 신호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감정은 뇌의 변연계에서 시작된다. 위협이나 긴장, 두려움은 편도체에서 빠르게 반응하고, 이는 곧 심장 박동과 호흡, 근육 긴장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감정을 "느낀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신체가 먼저 반응하고 나중에 인지가 따라오는 경우가 더 많다.

이 남성은 어린 시절 가정에서의 강압적인 아버지와의 경험이 반복적으로 몸에 새겨져 있었다. 그는 분노를 표현하지 못했고, 공포를 말하지 못했으며, 감정을 말로 표현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감정은 말이 되지 못하고, 공황이라는 방식으로 몸에서 먼저 터져 나왔다.


감정은 기억과 얽혀 있다

감정은 현재에 나타나지만, 그 뿌리는 과거에 있다. 특히 외상 경험이 있는 내담자의 경우, 특정 감정은 특정 기억과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 나는 이를 "감정-기억 연합"이라고 부른다.


한 초등학교 5학년 아동은 친구의 사소한 말에도 과민하게 반응하고, 교실에서 자주 울음을 터뜨렸다. 담임교사는 이를 유난스럽다고 했지만, 아동의 행동은 감정이 단지 현재 상황 때문이 아닌 것이다. 아동은 어릴 적 부모의 폭력과 이혼을 겪었다. 친구의 말 속에 숨어 있는 약간의 비난조차, 아동에게는 과거의 모욕과 공포를 떠올리게 하는 '방아쇠'였다. 그 감정은 지금 여기의 것이 아니었다. 과거의 감정이 현재를 점령한 것이다.


감정은 언어로 표현되기를 기다린다

우리는 "기분이 좋다" "화가 난다" 정도의 말로 감정을 표현하지만, 실제 감정의 스펙트럼은 훨씬 더 풍부하다. 수치심, 무력감, 죄책감, 억울함, 절망감, 혼란, 안도, 애착의 갈망... 이 감정들을 구체적 언어로 표현하는 것은 치료적 효과를 가진다.

특히, 로르샤흐 검사(Rorschach Test)나 문장완성검사(SCT)에서 이 감정은 우회적으로 나타난다. "나는 사람들이 나를..."이라는 문장에서 점선 뒤에 이어지는 단어는 그 사람의 감정 어휘 수준을 보여준다. 감정을 억제해온 사람일수록 점선 뒤가 빈칸으로 남거나, 추상적인 단어로 대체된다.


어떤 내담자는 "감정을 말로 표현할 줄 몰라요"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그림을 보여주고, 그 장면에서 느껴지는 감정을 물었다. 그는 그림 속 한 남자가 슬퍼 보인다고 했고, 그 이유를 말하며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감정을 투사했다. 감정은 말로 가기 전, 투사와 상징을 통해 천천히 말해진다.


감정이 문제가 아니라, 감정과의 관계가 문제다

감정은 억제하거나 통제할 대상이 아니다. 그 자체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우리가 그 감정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이다. 분노를 무서워하거나, 슬픔을 부끄러워하거나, 기쁨조차 느끼지 못하도록 훈련된 사람은 감정을 억누르거나 왜곡하게 된다.


한 중학생 남학생은 늘 무표정했다. 아무 일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그러나 치료가 진행되면서 그는 말했다.

"저는 화를 내면 아빠처럼 될까 봐, 그게 무서웠어요."

그는 감정을 억제함으로써 자신을 지켜왔다. 그러나 동시에 그 억제는 인간 관계를 단절시키고 있었다. 감정을 안전하게 느끼고, 표현할 수 있는 경험은 그에게 새로운 감정 지형을 그리게 만들었다.


감정은 방향이다

감정은 우리가 어디로 가고 싶은지, 무엇을 피하고 싶은지를 말해주는 나침반이다. 감정 없는 판단은 무감각한 삶을 만들고, 감정만 넘치는 삶은 방향을 잃게 한다. 심리치료는 감정과 함께 머물되, 그 감정이 말하는 바를 듣고 해석하는 일이다.


나는 지금도 종종 내 감정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놓친다. 어느 날 문득 어떤 내담자의 말에 과하게 반응하거나, 평가서를 작성할 때에도 한 문장을 오래토록 붙잡고 떠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는 감정이 말하려는 것을 듣는다.

이 감정은 지금 이 순간의 것이 아니라, 오래전 나의 경험과도 닿아 있을 수 있다. 전문가로서 내가 할 일은, 그 감정을 밀어내거나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이다. 그렇게 감정은 다시 의미가 되고, 그 의미는 다시 관계로 이어진다.


✒️ 작가의 메모

감정은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나와 삶이 만나는 지점에서 ‘피어나는 것’이다. 감정을 이해하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를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치료의 시작이 된다.


� 다음 화 예고

아이의 문제행동, 감정의 말투로 들리다



by흔들리는 전문가13분전



문제행동이라는 말은 너무 단정적이다. 아이는 문제를 일으키려는 의도로 행동하는 게 아니다. 그들은 단지 표현하는 것이다. 말이 서툰 아이들은 행동으로 감정을 말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문제행동’이라 부르기 전에, 그 행동이 어떤 감정을 담고 있는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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