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이토록 친밀한 타인

의심은 왜 사랑의 반대말이 되었는가

by 흔들리는 전문가

안녕하세요 손연입니다.

드라마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가 남긴 서늘한 잔상을 모티프로 하여, 가족이라는 가장 사적인 관계 속에 숨겨진 기만의 구조를 4부작으로 풀어내겠습니다.


그 첫 번째 기록. 우리가 왜 가족의 말 앞에서는 그토록 무력해지는지, 진술분석전문가의 시선으로 해부합니다.


범죄 심리학에는 수사관들 사이에서 불문율처럼 전해지는, 그러나 공식 보고서에는 절대 적히지 않는 격언이 하나 있다. "시신이 발견되면 가장 먼저 우는 사람을 관찰하라. 그리고 가장 늦게까지 울지 않는 사람을 의심하라."


그러나 2026년의 수사 현장에서 이 격언은 절반만 유효하다. 진화한 범죄자들은 더 이상 울지 않거나, 혹은 너무 많이 울어서 수사관의 시야를 가리는 낡은 방법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신 ‘가장 완벽한 가족’의 얼굴을 하고 참고인석에 앉는다.


오늘 내가 꺼내 보일 사건 파일은, 피 냄새 대신 갓 내린 커피 향과 안락한 거실의 풍경 속에 숨겨져 있던 어느 실종 사건에 관한 기록이다. 그리고 이것은 수사관인 동시에 누군가의 아버지이고 남편인 우리 모두가 빠질 수밖에 없는, 가장 고통스러운 딜레마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펜 끝을 겨누기 가장 힘든 대상, 가족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1. 사건의 문턱 : 그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사건은 평범한 일요일 오후, 30대 여성 A씨의 실종 신고로 시작되었다. 신고자는 그녀의 남편 B씨였다. 현장에 도착한 초동 수사팀이 마주한 B씨의 태도는 모범답안에 가까웠다. 그는 당황해서 횡설수설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지나치게 냉정하지도 않았다. 적당히 떨리는 손으로 형사들에게 따뜻한 차를 내왔고, 아내의 신상 정보와 마지막 착의를 정확하게 진술했다.


"아내가 평소에 우울증이 좀 있었어요. 어제 저녁에 사소한 말다툼을 했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없더군요."


수사팀은 자연스럽게 ‘가출’ 혹은 ‘극단적 선택’의 가능성에 무게를 두었다. 집안에는 침입 흔적이 없었고, 부부 싸움이라는 명확한 동기가 제시되었으며, 무엇보다 신고자인 남편의 태도가 너무나 협조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경찰이 요청하기 전에 아내의 휴대폰 비밀번호를 풀어서 건넸고, 집 주변 CCTV 위치를 먼저 알려주기도 했다.


사건 발생 3일 뒤, 나는 진술 분석 의뢰를 받고 그를 대면했다. 그리고 1시간의 면담 끝에 형사에게 조용히 메모를 건넸다.


[이 사람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말하지 않고 있을 뿐입니다. 수사의 방향을 바꿔야 합니다.]


내가 본 것은 진술의 내용이 아니라, 그 진술이 쌓아 올린 ‘구조적 공백’이었다.


2. 이상 지점 포착 : 기억의 선택적 편집

B씨의 진술서를 분석하면서 나는 기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그의 기억은 마치 정교하게 편집된 영화 필름 같았다.


어제 저녁 7시: 아내와 저녁으로 김치찌개를 먹었다. (찌개에 두부가 없어서 아내가 불평했다는 디테일 포함)

저녁 8시 30분: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웃었다.

밤 10시: 말다툼이 시작됐다.

.... (공백)

다음 날 아침 7시: 일어나 보니 아내가 없었다.

보이는가. 그는 저녁 식사 메뉴와 예능 프로그램의 내용은 분 단위로 기억하면서, 정작 아내가 사라진 것으로 추정되는 밤 10시부터 아침 7시 사이의 기억에 대해서는 "자느라 기억이 없다"는 말로 일관했다.


물론 잠을 잤으니 기억이 없는 것은 당연할 수 있다. 하지만 진술 분석에서 주목하는 것은 ‘기억의 질감’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사라진 비상 상황에서, 인간의 뇌는 무의식적으로 사라지기 직전의 징후들을 필사적으로 복기하게 되어 있다.


"자다가 물 마시는 소리를 들은 것 같다", "새벽에 한기가 느껴졌다"는 식의 불확실한 감각 정보들이 튀어나와야 정상이다.


그러나 B씨의 진술에는 그런 '모호함'이 없었다. 명확한 기억(A)과 명확한 부재(B)만이 벽돌처럼 단단하게 쌓여 있었다. 이것은 회상이 아니다. 알리바이를 위해 불필요한 정보를 소거한 ‘통제된 진술’이다.


3. 심리 구조 해부 ① : 과잉 정상성(Hyper-Normality)의 함정

참고인 조사 과정에서 B씨가 가장 많이 반복한 말은 이것이었다. "형사님도 결혼해 보셔서 아시겠지만, 부부 싸움 흔하잖아요. 저희 사이 정말 좋았거든요."


그는 굳이 묻지 않은 부부 관계의 원만함을 강조했다. 휴대폰 속 다정한 사진들을 보여주고, 지난달 다녀온 여행 이야기를 꺼냈다. 진술 분석에서는 이를 ‘과잉 정상성’이라 부른다.


범죄에 연루된 가족은 본능적으로 가정의 울타리가 무너지는 것을 막으려 한다. 그래서 사건(실종) 자체보다, ‘우리 가족은 정상이다’라는 프레임을 지키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쏟는다.


진짜 억울한 남편이라면 "우리가 얼마나 사이가 좋았는데!"라고 항변하는 대신,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아내를 찾는 게 먼저 아닙니까!"라고 화를 내야 한다.


그가 보여준 지나친 차분함과 예의바름은, 역설적으로 그가 이 상황을 ‘관리(Manage)’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4. 심리 구조 해부 ② : 친밀성 기반 면책 효과

그렇다면 왜 초동 수사팀은 그를 의심하지 못했을까. 그들이 무능해서가 아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진실 기본값 이론(Truth-Default Theory)’ 때문이다. 특히 그 대상이 가족일 때, 이 편향은 강력해진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가족을 ‘범죄의 주체’가 아닌 ‘범죄의 피해자’로 범주화한다. 남편이 아내를, 부모가 자식을 해쳤을 것이라는 가정은 뇌가 받아들이기에 너무 끔찍한 데이터 오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사관조차 무의식적으로 질문의 수위를 낮춘다.

"어디 갔는지 짐작 가는 곳 없으세요?"라고 묻지, "당신이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입니까?"라고 추궁하지 않는다.

B씨는 이 심리적 허점을 정확히 파고들었다. 그는 가장 익숙하고 선량한 가장의 얼굴로, 질문을 받기도 전에 수사관의 신뢰를 선점했다. 배신자는 소리치지 않는다. 가장 안전한 말투로 우리 곁에 앉아 있을 뿐이다.


5. 프로파일러의 고뇌 : 의심은 배신인가

드라마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에서 장태수(한석규 분)는 자신의 딸을 의심하며 지옥을 맛본다. 나 역시 조서들을 보며 비슷한 지옥을 수없이 목격했다. 실종된 아이의 부모를 참고인으로 부를 때, 살해된 남편의 아내를 용의 선상에 올릴 때, 프로파일러는 인간으로서의 윤리와 전문가로서의 직무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다.


"어떻게 가족을 의심합니까?" 사람들이 비난할 때, 나는 속으로 삼키며 대답한다.

"의심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진실에 대한 가장 큰 배신이기 때문입니다."


B씨의 경우, 결국 집 안의 스마트 홈 기기 로그 기록에서 그 '사라진 시간' 동안의 움직임이 포착되어 덜미가 잡혔다. 그는 아내를 살해한 것이 아니라, 부부 싸움 도중 발생한 사고를 은폐하기 위해 아내를 유기했다고 자백했다.


만약 우리가 그의 '친밀한 가면'에 속아 "사이좋은 부부였다"는 전제를 끝까지 의심하지 않았다면, A씨는 영원히 단순 가출인으로 남았을 것이다. 가족이라는 이름이 면죄부가 될 때, 집은 안식처가 아니라 가장 은밀한 범죄의 은신처가 된다.


6. 마치며 : 증거가 아닌 전제가 된 말들

우리는 종종 가족의 말을 ‘증거’가 아닌 ‘전제(Premise)’로 받아들인다. "내 딸은 그럴 리 없어." "내 남편은 절대 아니야."

하지만 진술분석가로서, 그리고 25년을 사람의 마음만 들여다본 기록자로서 감히 조언한다. 당신이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지키고 싶다면, 맹목적인 믿음보다는 차가운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가 말하는 것(What)이 아니라, 말하지 않는 것(Silence)이 무엇인지 들어야 한다.


진정한 신뢰는 "무조건 믿어"라는 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네가 무슨 짓을 했든 나는 진실을 마주할 준비가 되어 있어"라는 단단한 태도에서 나온다.


다음 화에서는, 이렇게 가족이 구축한 알리바이가 어떻게 사법 시스템을 교란하고, 때로는 범죄자를 양성하는 인큐베이터가 되는지, 그 끔찍한 ‘확증 편향의 비극’을 다루려 한다. 부모의 빗나간 사랑이 어떻게 아이를 괴물로 키우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전문가 코너] 진실 기본값 이론 (Truth-Default Theory)

커뮤니케이션 학자 티모시 레빈(Timothy Levine)이 제시한 이론으로, 인간은 기본적으로 타인의 말이 ‘진실’이라고 가정하고 소통한다는 개념입니다. 이는 사회적 진화를 위해 필수적인 생존 본능입니다. 만약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을 의심해야 한다면, 사회는 유지될 수 없을 테니까요.

하지만 이 본능은 수사나 진실 규명 과정에서는 치명적인 약점이 됩니다. 특히 상대방이 나와 친밀한 관계(가족, 연인)일 경우, 뇌는 의심하는 데 필요한 인지적 에너지를 차단해 버립니다. 이를 ‘친밀성 편향(Intimacy Bias)’이라고도 합니다. 사기꾼이나 소시오패스 범죄자들은 바로 이 인간의 본능적인 ‘믿고 싶어 하는 마음’을 해킹하여 자신의 알리바이를 완성합니다. 의심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진실을 찾기 위한 유일한 내비게이션입니다.


“이 글은 실제 사례와 자료를 바탕으로 재구성된 기록이며, 특정 개인이나 사건을 단정하거나 평가하기 위한 목적이 아닙니다. 범죄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선택이 만들어지는 구조를 이해하려는 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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