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이토록 친밀한 타인

부모라는 이름의 공범, 확증 편향의 비극

by 흔들리는 전문가

안녕하세요 손연입니다.

가족이라는 가장 내밀한 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진실의 왜곡, 그 두 번째 기록을 이어갑니다. 지난 1화에서 우리가 배우자의 침묵을 믿음으로 착각하는 오류를 다뤘다면, 이번에는 조금 더 능동적이고 파괴적인 형태의 배신을 이야기하려 합니다.

바로 자식을 위해서라면 악마와도 손을 잡는, 비뚤어진 모성(혹은 부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괴물을 키워내는 인큐베이터, 그 차가운 풍경을 들여다보겠습니다.


소년범이나 학교 폭력 가해자를 면담하는 과정에서 내가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아이들의 변명이 아니다. 그것은 조사실 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부모들의 항변이다.


"우리 애는 절대 그럴 리가 없어요. 친구를 잘못 만나서 그래요." "집에서는 벌레 한 마리도 못 죽이는 착한 애입니다." "선생님이 오해하신 거예요. 얘가 얼마나 여린데."


그들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고, 목소리에는 억울함이 가득하다. 그들은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진심으로 자신의 아이가 무결하다고 믿는다. 책상 위에 놓인 CCTV 영상 속에서 그 착하고 여린 아이가 친구의 얼굴을 무자비하게 짓밟고 있는 증거가 재생되고 있어도, 부모의 뇌는 그 장면을 거부한다.

내 아이는 선하다. 그러므로 이 증거는 조작되었거나,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부정이 아니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 이것은 부모가 자녀의 범죄를 재구성하여 새로운 현실을 창조해 내는 집단적 망상에 가깝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확증 편향의 비극이라고 부른다.


사건의 문턱 : 피 묻은 교복을 세탁하는 손


몇 년 전, 고등학생 아들을 둔 어머니 C씨의 사례가 기억난다. 아들은 동급생을 특수 상해 입힌 혐의를 받고 있었다. 피해 학생은 전치 8주의 중상을 입었고, 범행 도구에서는 아들의 지문이 나왔다. 모든 정황이 명백했다.

그러나 C씨는 참고인 조사에서 완강하게 혐의를 부인했다. "그날 밤에 아이가 들어왔을 때 제가 깨어 있었어요. 옷도 깨끗했고, 평소랑 똑같이 웃으면서 들어왔다고요. 제가 엄마인데 그걸 모르겠습니까?"


그녀의 진술은 너무나 확신에 차 있어서, 수사관들조차 잠시 헷갈릴 정도였다. 정말 우리가 놓친 다른 용의자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압수수색 결과는 참혹했다. 집 베란다 구석의 세탁기 뒤쪽에서 핏자국이 희미하게 남은 운동화가 발견되었다.


나중에 밝혀진 진실은 이랬다. 사건 당일 밤, 아들은 피가 묻은 채 귀가했다. C씨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본능적으로 상황을 파악했다. 하지만 그녀는 "무슨 일이니?"라고 묻는 대신, 아들의 옷을 벗겨 세탁기에 넣고 돌렸다. 그리고 운동화를 솔로 박박 문지르며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다. '이건 코피야. 넘어져서 묻은 거야. 우리 아들은 사람을 때릴 위인이 못 돼.'


그녀는 경찰 앞에서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그날 밤의 기억은 이미 '깨끗한 옷을 입고 귀가한 착한 아들'로 덮어쓰기(Overwriting)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아들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의 기억을 조작하는 공범이 되기를 선택했다.


이상 지점 포착 : 아이의 침묵과 부모의 소음


이런 사건들에서 관찰되는 공통적인 패턴이 있다. 바로 가해자인 아이는 침묵하고, 보호자인 부모는 시끄럽다는 점이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억울한 누명을 쓴 아이가 가장 먼저 날뛰어야 한다. "난 안 그랬어!", "억울해!"라고 소리치고 부모가 달래는 그림이 나와야 한다. 하지만 '만들어진 무죄'를 주장하는 가정에서는 정반대의 현상이 일어난다.

아이는 조사관의 눈을 피하거나, 무표정하게 바닥을 본다. 감정이 없는 건조한 눈빛. 그 옆에서 부모만이 얼굴을 붉히며 변호하고, 알리바이를 대고, 피해자를 비난한다. "걔가 먼저 원인 제공을 했겠죠!"


이 기이한 불균형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아이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그리고 동시에 학습한 것이다. 내가 입을 다물고 있으면, 부모가 알아서 논리를 만들어내고 상황을 해결해 준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 지점에서 아이의 초자아(Superego), 즉 양심과 도덕성은 성장을 멈춘다. 죄책감을 느껴야 할 타이밍에 부모가 개입하여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면죄부를 쥐여주기 때문이다. 그렇게 괴물은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길러진다.


심리 구조 해부 ① : 나르시시즘의 확장

왜 부모는 명백한 증거 앞에서도 자식의 악을 보지 못할까. 임상적으로 이는 부모의 나르시시즘과 깊은 연관이 있다. 많은 부모들에게 자식은 타인이 아니다. '나의 확장'이자 '나의 작품'이다. 자식이 범죄자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곧 자신의 인생과 양육 방식이 실패했음을 시인하는 것과 같다.


자아 존중감이 아이의 성과에 의존적인 부모일수록, 아이의 결함을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은 아이의 범죄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실패를 부정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방어 기제를 작동시킨다. "내 아이는 완벽해야 한다." 이 강박적인 명제가 현실의 증거를 왜곡하는 필터가 된다. 그들은 아이를 사랑해서 보호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라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흠결 없는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진실을 희생시키는 것이다.


심리 구조 해부 ② : 인지 부조화와 합리화

심리학 용어 중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라는 것이 있다. 자신의 신념(내 아이는 착하다)과 현실(내 아이가 사람을 때렸다)이 충돌할 때 발생하는 심리적 불편함이다. 인간은 이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둘 중 하나를 바꾼다. 행동을 바꾸거나, 믿음을 바꾸거나.


가장 건강한 방식은 믿음을 수정하는 것이다. '내 아이도 실수를 할 수 있고,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라고 인정하고 훈육하는 것이다. 하지만 확증 편향에 빠진 부모는 현실을 왜곡하는 쪽을 택한다. '피해자가 맞을 짓을 했을 거야.' '경찰이 강압 수사를 해서 애가 겁먹은 거야.'


외부 귀인(External Attribution)의 오류다. 모든 원인을 밖으로 돌림으로써, 내 아이의 순수성을 보존하려 한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아이는 세상이 자신을 억압한다고 믿는 반사회적 성격으로 자라나게 된다. 부모의 빗나간 사랑이 아이에게 '세상은 내 마음대로 해도 되는 곳'이라는 잘못된 지도를 쥐여주는 셈이다.


전문가의 딜레마 : 거울을 깨뜨리는 고통

범죄심리나 상담가로서 이런 부모를 마주하는 일은 무척 고통스럽다. 그들의 방어벽은 논리로 쉽게 뚫리지 않는다. 증거를 들이밀면 "당신이 우리 애를 알아?"라며 적대감을 드러낸다.

드라마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에서 장태수(한석규 분)가 훌륭했던 점은, 딸을 의심하는 고통을 기꺼이 감내했다는 것이다. 그는 딸을 사랑하지 않아서 의심한 것이 아니다. 딸이 더 깊은 심연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아버지로서의 본능적인 쉴드(Shield)를 내려놓고 수사관의 차가운 칼날을 쥐었다.


대부분의 부모는 그 칼날을 쥐지 못한다. 내 손으로 내 자식의 환상을 깨뜨리는 아픔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대신 피해자의 가슴에 칼을 꽂는 쪽을 택한다. "합의금 주면 될 거 아니야." 이 말이 아이에게는 어떤 교육이 될까. '돈이면 죄도 덮을 수 있다'는 최악의 가치관을 심어주는 꼴이다.


마치며 : 사랑은 은폐가 아니라 직면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자녀를 얼마나 믿는가. 그리고 그 믿음의 근거는 무엇인가. 만약 당신의 아이가 누군가를 해쳤다는 증거가 당신의 눈앞에 놓인다면, 당신은 그 증거를 믿겠는가, 아니면 아이의 눈물을 믿겠는가.

진정한 부모의 역할은 아이의 알리바이가 되어주는 것이 아니다. 아이가 저지른 짓을 직시하게 하고, 그에 합당한 책임을 지게 하는 것. 그리하여 아이가 자신의 행동이 타인에게 어떤 고통을 주었는지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것. 그것이 진짜 사랑이다.

피 묻은 교복을 빨아주는 손은 아이를 구하는 구원의 손길이 아니라, 아이를 영원히 도덕의 감옥에 가두는 간수의 손길임을 기억해야 한다. 부모가 범죄를 덮을 때마다, 아이의 영혼에는 지워지지 않는 얼룩이 겹겹이 쌓여간다.


다음 화에서는, 이렇게 가정 내에서 왜곡된 진실이 어떻게 밖으로 나와 타인을 조종하는 무기가 되는지, 소시오패스의 대인관계 메커니즘을 분석하려 한다. 괴물은 집 안에서 길러져, 문밖을 나서는 순간 사냥을 시작한다.

[전문가 코너] 조력(Enabling)과 상호의존

중독 심리학이나 범죄 심리학에서 자주 등장하는 개념인 조력(Enabling)은, 겉보기에는 돕는 행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대방의 파괴적인 행동을 지속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알코올 중독자의 술값을 대신 갚아주거나, 사고 친 자녀의 합의금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해결해 주는 부모의 행동이 이에 해당합니다.

이러한 조력자는 스스로를 '희생자'나 '구원자'로 인식하며 도덕적 우월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 이는 공의존(Codependency) 관계입니다. 문제를 해결해 줌으로써 상대방이 나에게 의존하게 만들고, 그 관계 속에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자녀의 범죄를 덮어주는 부모의 심리 기저에는, 아이를 독립된 인격체가 아닌 나의 통제하에 있는 존재로 묶어두려는 무의식적 욕망이 숨어 있을 수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구속, 그것이 조력의 본질입니다.


“이 글은 실제 사례와 자료를 바탕으로 재구성된 기록이며, 특정 개인이나 사건을 단정하거나 평가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다. 범죄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선택이 만들어지는 구조를 이해하려는 시도다.”

매거진의 이전글[4-1] 이토록 친밀한 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