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당신의 마음에도 상태창이 뜬다면

3화. 샤넬 대신 신라면

by 흔들리는 전문가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진료실 문을 바라보는 제 심박수가 평소보다 조금 높게 뛰고 있었습니다. 손목에 찬 스마트 워치가 징- 하고 울리더니 친절하게도 ‘심호흡을 권장합니다’라는 알림을 띄웠습니다. 참고로 이 알림은 보통 제가 5층 계단을 단숨에 오를 때나, 진료비가 비싸다며 울분에 찬 보호자의 전화를 받을 때나 뜨는 것입니다.

오늘은 아무 일도 없었는데 말이죠.


임상가에게 내담자의 변화를 기다리는 일주일이란, 낚싯대를 드리우고 입질을 기다리는 강태공의 심정과 비슷합니다. 다만 낚이는 것이 월척 붕어가 아니라, 어제까지 자신을 꽁꽁 싸매고 있던 한 사람의 마음이라는 점이 다를 뿐입니다. 그 기다림은 지루하기보다, 묘한 긴장과 기대를 동반합니다.

오후 2시. 예약 시간에 맞춰 정확히 문이 열렸습니다.


“선생님!”


박미주씨였습니다. 그런데… 들어오는 모습이 조금 달랐습니다. 아니, 아주 많이 달랐습니다.

지난주, 그녀의 왼쪽 팔에 마치 신체의 일부처럼 기생하듯 붙어 있던 H사 명품 가방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신 누르스름한 에코백 하나가 어깨에서 덜렁거리고 있었습니다. 브랜드 로고 하나 없는, 사은품으로나 줄 법한 캔버스 천 가방. 그 안에 뭐가 들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건 그녀의 어깨가 중력을 거스른 듯 한결 가벼워 보인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눈에 띈 건 그녀의 표정이었습니다. ‘인생이 180도 바뀌었다’ 수준의 드라마틱한 개벽은 아니었습니다. 딱 ‘복권 4등’에 당첨된 사람의 얼굴이랄까요. 소소하지만 확실한 기쁨. 주변에 자랑하기엔 애매하지만, 혼자 생각할 때마다 자꾸만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 나오는 그런 표정 말입니다.

하지만 제 직업병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제 눈은 자동으로 그녀의 표정이 아닌, 정수리 위 허공을 향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저는 미간을 살짝 찌푸려야 했습니다.

[ 시스템 오류 발생 ] [ 대상 인식 실패... ] [ 데이터 재로딩 중... 50%... 80%... ]

지난주 ‘블루스크린 직전’이었던 그녀의 상태창이 심하게 지직거리고 있었습니다. 마치 시스템이 그녀를 ‘박미주’라고 인식하지 못해 당황하는 눈치였습니다. 화려한 장비템(명품)을 모두 벗어던진 탓에, 시스템조차 그녀의 ‘전투력’을 계산하지 못하고 버벅거리는 꼴이라니.

잠시 후, 노이즈가 걷히고 보기 드물게 안정적인 녹색 창이 띵- 하고 떴습니다.


[ 시스템 알림 ]

• 퀘스트: 동네 편의점 잠입 작전

• 난이도: S (내담자 기준)

• 상태: 완료 (Success)

• 보상 수령: 대기 중


“어서 오세요, 미주 씨. 표정이 좋아 보입니다.”


저는 일부러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너무 반가워하면 그녀가 다시 방어벽을 세울지도 모르니까요.


“숙제는 하셨습니까?”


그녀가 의자에 앉으며 참았던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그 웃음은 지난주 그녀의 얼굴에 가면처럼 붙어 있던 ‘팬암 미소’가 아니었습니다. 눈가에 자글자글한 주름이 잡히고, 광대뼈가 승천할 듯 올라가는, 안면 근육이 100% 참여한 진짜 웃음이었습니다.


“선생님, 진짜요… 저 그날 밤 심장 터지는 줄 알았어요.”


그녀의 머리 위로 지난 일주일간의 로그(Log)가 홀로그램 영화처럼 파노라마로 펼쳐졌습니다. 저는 턱을 괴고, 흥미진진한 다큐멘터리를 감상할 준비를 마쳤습니다.


[ 회상 로그 재생: D-Day 밤 11시 30분 ]


그날 밤, 미주 씨는 자신의 드레스룸 한가운데 서 있었습니다. 그 공간은 여전히 완벽했습니다. 색상별로 그라데이션 정리된 재킷들, 습도 조절 장치가 돌아가는 가방 진열장. 문제는 그녀가 지금 필사적으로 찾고 있는 물건이, 이 우아하고 럭셔리한 생태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질적인 종’이라는 점이었습니다.

무릎 나온 츄리닝.

결국 그녀는 옷장 맨 아래, ‘이사 갈 때나 열어볼 것’이라 다짐했던 구석 서랍을 열었습니다. 5년 전, 헬스장 1년 회원권을 끊을 때 사은품으로 받았던 회색 트레이닝 바지가 구겨진 채 튀어나왔습니다. 그녀의 기억 속에서조차 삭제되었던 비운의 아이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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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과 기억, 진실과 왜곡 사이에서 마주한 이야기들을 저서 《뇌의 배신》, 《흔들리는 전문가》 시리즈를 통해 서사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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