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당신의 마음에도 상태창이 뜬다면

4화 명품관 앞의 망부석과 덧칠해진 자화상

by 흔들리는 전문가

3달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임상가에게 ‘종결’이란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단어입니다. 시원섭섭하다는 상투적인 표현으로는 부족합니다. 마치 다 자란 자식을 독립시키는 부모의 마음과, 세입자를 내보내고 도배를 새로 해야 하는 집주인의 마음이 7:3 정도로 섞여 있다고나 할까요.

마지막 상담을 앞둔 제 책상 위에는 박미주 씨의 차트가 놓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반쯤 식어버린, 이제는 ‘아메리카노’라기보다 ‘카페인 섞인 검은 물’에 가까운 액체가 담긴 머그잔이 있었습니다.

오후 2시. 똑똑. 노크 소리가 경쾌했습니다.


“네, 들어오세요.”


문이 열리고 박미주 씨가 들어왔습니다. 순간, 저는 그녀를 알아보지 못하고 “누구…시죠?”라고 물을 뻔했습니다. 이것은 과장이 아니라 임상가로서 겪는 아주 드문 인지 부조화 현상입니다.

그녀의 트레이드마크였던 H사 가방은 없었습니다. 9cm 킬힐도 없었습니다. 지난주에 입었던 츄리닝도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헐렁한 흰색 리넨 셔츠에, 무릎이 적당히 찢어진 청바지, 그리고 캔버스화를 신고 있었습니다. 머리는 대충 묶은 듯하지만 계산된 ‘꾸안꾸(꾸민 듯 안 꾸민 듯)’ 스타일로 질끈 동여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큰 변화는 제 눈앞에 펼쳐진 홀로그램이었습니다.


[ 시스템 알림 ]

• 대상 인식 완료

• 닉네임: 박미주 (Lv. 33 / 전직 완료)

• 현재 직업: [Lv.1 초보 화가]

• 장착 아이템: 앞치마에 묻은 유화 물감 (자부심 +20)


“선생님, 저 왔어요.”


그녀가 털썩, 소파에 몸을 던지듯 앉았습니다. 예전처럼 각을 잡고 앉아 ‘나는 교양 있는 여자야’를 연기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습니다.


“스타일이… 아주 자유분방해지셨습니다.”


“아, 이거요? 학원에서 바로 오느라 갈아입을 시간이 없었어요. 그리고 뭐 어때요. 선생님은 제 쌩얼에 츄리닝 차림도 다 보셨는데.”


그녀가 씩 웃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표정을 굳히며 몸을 앞으로 숙였습니다.


“근데 선생님. 저 사실… 지난주에 ‘요요’ 왔었어요.”


“요요요? 다이어트 말씀이십니까?”


“아니요. ‘지름신’ 요요요.”


그녀의 머리 위로 붉은색 경고등이 잠깐 반짝였습니다.


[ 회상 로그: D-3 백화점 앞 ]

• 위험 수치: 충동구매 욕구 Lv. 85

• 상황: 신상 가방 출시일 문자 수신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흔들리는 전문가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감정과 기억, 진실과 왜곡 사이에서 마주한 이야기들을 저서 《뇌의 배신》, 《흔들리는 전문가》 시리즈를 통해 서사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손연

399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8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42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03화4-3 당신의 마음에도 상태창이 뜬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