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거대한 암호문이다
1부는 시스템의 결함(하드웨어)에 대해 살펴보았으면, 2부에서는 하드웨어(뇌 구조/발달)의 문제가 아닌, 소프트웨어(데이터 처리 방식)의 오류로 인해 세상이 기이하게 왜곡되어 보이는 이들의 내면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마술적 사고', '관계 사고' 등 난해할 수 있는 정신병리적 개념을, '깨진 거울'과 '오류 난 데이터'라는 비유를 통해 임상적으로 풀어보려합니다.
상담실에 들어선 지은(가명, 28세)의 첫인상은 기묘했다. 그녀는 한여름임에도 두꺼운 벨벳 스카프를 두르고 있었고, 양 손목에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원석 팔찌가 세 개씩 채워져 있었다. 그녀는 나와 눈을 맞추지 않고, 내 어깨 너머의 허공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마치 그곳에 나에게는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서 있는 것처럼.
그녀와의 대화는 마치 주파수가 맞지 않는 라디오를 듣는 것과 같았다. 질문을 던지면 그녀는 한참 동안 침묵하다가, 전혀 상관없는 은유적인 단어들을 나열했다. 그녀에게 세상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 아니라, 해독해야 할 수만 가지 상징으로 가득 찬 거대한 암호문이었다. 그녀는 평범한 우연을 필연적인 계시로 받아들이고 있었고, 그 과도한 의미 부여의 무게에 짓눌려 서서히 질식해가고 있었다.
심리학적 평가보고서: 내담자 J의 기록
의뢰 사유 및 주호소
내담자는 직장 내에서의 부적응과 극심한 대인관계 불안을 호소하며 내원했다. 그녀는 동료들이 자신을 따돌리기 위해 '텔레파시'를 사용하고 있다고 믿고 있었으며, 출근길에 마주친 검은 고양이나 엘리베이터 층수 같은 사소한 징조에 집착하여 지각이나 결근을 반복했다. 그녀는 "사람들의 속마음이 색깔로 보여서 견딜 수가 없다"고 호소했으나, 이는 환시(Hallucination)라기보다는 자신의 주관적 느낌을 시각적 정보로 착각하는 지각의 변형에 가까웠다.
성장 과정 및 생활사
학창 시절 그녀는 '4차원', '외계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다는 타로 카드나 오컬트, 미스테리 현상에 심취했다. 그녀에게는 현실의 친구보다 자신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영적인 친구가 더 리얼했다. 부모는 그녀가 단순히 감수성이 풍부하고 독특한 아이라 생각했지만, 성인이 되어서도 그녀는 사회적 규범이나 상식을 학습하지 못했다. 그녀의 옷차림은 언제나 상황에 맞지 않게 튀었고, 말투는 지나치게 격식 차리거나 혹은 지나치게 모호했다.
주변인의 목소리 (1) 직장 동료
"지은 씨랑 대화하면 좀 무서워요. 어제 제가 기침을 한번 했는데, 갑자기 정색하면서 '나쁜 기운을 뱉어내셨네요'라고 하더라고요. 농담인 줄 알았는데 눈빛이 너무 진지해서... 그리고 혼자서 중얼거릴 때가 많아요. 누구랑 대화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혼잣말인 건지. 같이 밥 먹자고 해도 매번 거절하고, 늘 구석에 숨어 있는 느낌이에요."
행동 관찰 및 사고 특성
면담 중 지은은 갑자기 몸을 움찔거리거나, 허공을 향해 미소를 짓는 등 상황에 맞지 않는 정서(Inappropriate Affect)를 보였다. 웩슬러 지능검사 결과 지능은 평균 범위였으나, '이해' 소검사 점수가 현저히 낮았다. 이는 사회적 관습이나 상식을 이해하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그녀의 사고 과정은 논리적 인과관계가 아닌, '마술적 사고(Magical Thinking)'에 의해 지배되고 있었다. "내가 오늘 아침에 빨간 컵을 썼기 때문에, 주식 시장이 폭락했다"는 식의 비논리적 연결이 그녀에게는 명백한 사실로 받아들여졌다. 뇌의 필터링 기능이 고장 나, 무의미한 정보(Noise)를 유의미한 신호(Signal)로 잘못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사고 및 정서 영역
그녀의 가장 큰 고통은 '관계 사고(Ideas of Reference)'였다. 뉴스 아나운서가 하는 말이 자신에게 보내는 비밀 메시지라고 느끼거나, 지나가는 사람들이 웃으면 자신의 험담을 한다고 확신했다. 망상(Delusion)처럼 굳어진 믿음은 아니어서 반박하면 "그럴 수도 있겠네요"라고 물러섰지만, 돌아서면 다시 의심의 늪에 빠졌다. 그녀에게 타인은 언제나 자신을 주시하고 평가하는 위협적인 존재였기에, 그녀는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방식으로 자신을 보호하고 있었다.
주변인의 목소리 (2) 어머니
"우리 애는 점집이나 타로 같은 걸 너무 맹신해요. 부적을 몇십만 원어치 사 오기도 하고... 그냥 재미로 보는 게 아니라 진짜라고 믿으니까 걱정이죠. 한번은 꿈자리가 사납다고 3일 동안 방 밖으로 안 나온 적도 있어요. 쟤가 보는 세상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랑 다른 것 같아요."
확진 이전의 순간 : 시스템이 멈췄어야 할 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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